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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처칠의 연설만으로 영국이 승리할 수 있었나

김원배 사회부에디터

김원배 사회부에디터

2차 세계대전 때 영국 총리를 지낸 윈스턴 처칠은 명연설로 국민의 사기를 높였다. 하지만 단호한 의지만으로 영국의 생존과 승리를 보장할 수는 없었다.
 
영화 ‘다키스트 아워’엔 처칠이 당시 미국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스벨트에 지원을 요청하는 장면이 나온다. “낡은 구축함 50척을 빌려달라. 40척도 좋다”는 처칠의 요청에 루스벨트는 “중립법 때문에 안 된다”며 거절한다. 심지어 영국이 구매한 전투기를 캐나다 국경 근처에 둘 테니 말로 끌고 가라고 했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인명 피해를 본 미국을 다시 유럽의 전장으로 끌어들이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현 영국 총리인 보리스 존슨이 쓴 책 『처칠 팩터』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처칠은 ‘사랑에 빠진 어떤 사람도 내가 프랭클린 루스벨트에게 한 만큼 세심하게 애인의 변덕을 맞추려 노력하지 않았다’고 서술했다.” “우리는 해안에서, 육지에서, 들판에서, 거리에서, 언덕에서 싸울 것이며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처칠의 연설은 너무도 유명하다. 덩케르크 철수 작전 직후인 1940년 6월 4일 영국 의회에서 한 것이다. 하지만 연설의 마무리는 명백하게 미국을 향한 메시지였다.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언젠가 신세계(미국)가 전력을 다해 구세계에 구원과 자유를 안길 때까지 말입니다.”
 
존슨은 이 책에서 “미국이 처칠의 교묘한 책략과 매력과 솔직한 아부에 끌려들어 갔다…. 다른 영국 지도자는 미국을 전쟁에 끌어들인다는 전략 목표를 세우지 못했을 것이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처칠처럼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전력 질주하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썼다.
 
일본의 무역 보복이 시작된 후 문재인 대통령은 4일 “우리는 다시는 일본에게 지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결의를 다졌다. 처칠의 연설을 참고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5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선 “일본 경제가 우리 경제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경제 규모와 내수 시장입니다. 남북 간 경제협력으로 평화경제가 실현된다면 우리는 단숨에 일본의 우위를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일본과의 무역전쟁에 대처하는 전략 목표라면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북한 인구는 한국의 절반, 경제 규모는 50분의 1정도에 그친다.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이 남북한을 합한 것보다 인구가 많고 강하다는 게 문제다. 여기에 북한은 한미훈련을 구실로 단거리 미사일을 계속 쏘고 있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용감한 병사, 성능 좋은 무기, 병참 지원도 필수다. 무역전쟁의 최전선엔 한국 기업이 있다. 과도한 반기업 정서와 규제는 기업을 질식시킨다. 당장 당근 몇 개 주는 것에 그치지 말고 병사의 사기를 높일 실질적 대책이 있어야 한다. 우리에겐 원전 기술이란 좋은 무기도 있는데 폐기될 운명이다. 에너지는 산업의 기반이다. 신재생 에너지의 효율성이 입증되기 전에 탈원전을 서두르는 것은 엄청난 실책이 될 수 있다. 구형 원전을 폐기하더라도 신형 원전을 지어야 기술 우위가 유지된다.
 
정부는 9일 사회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소재·부품·장비 분야의 인재 양성을 위해 대학에 융합과정을 신설하고 연말까지 이공계 분야 혁신 인재 양성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런 대책은 꾸준히 추진돼야 한다. 하지만 최근 자율형사립고 폐지 논란에서 보듯 고교 교육 체계에 대한 합의조차 못하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 정책도 뒤집어진다. 무역전쟁의 대상이 꼭 일본만은 아닐 것이다. 미래를 내다보는 전략 목표와 경쟁국보다 효율화된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면 나락으로 빠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우리는 충분한 준비를 하고 있는가.
 
김원배 사회 부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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