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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비 피해 걱정? 산막서 행복 누린 대가라 생각하죠

기자
권대욱 사진 권대욱

[더,오래] 권대욱의 산막일기(35)  

 
무슨 이런 일이 있나 모르겠다. 잡목들이 집 오른편 도로를 가려 참 답답하다 여겼는데, 도로와 하천 사이가 푹 꺼져 보기도 불안했다. 어디서 흙 한삼테기 푹 퍼 메우면 좋겠다 싶었다. 아 글쎄, 오늘 그런 일이 정말 벌어지고 있다.
 
개울 위 사방댐 공사하면서 나온 토사를 사토장으로 쓰니 공사하는 사람들 좋고, 나는 힘 안 들이고 시야 확보에 터 골라 좋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상황이다. 꽤 오래전부터 이런 일이 자주 생기니 무얼 바라기가 두렵기도 하다.
 
바퀴의 위용은 대단하다. [사진 권대욱]

바퀴의 위용은 대단하다. [사진 권대욱]

 
이 세상엔 공짜 없다  
옮기기 힘들었다. 산막의 원탁 테이블. 원목으로 정성 들여 깎고 밀고 다듬어 만들었지만 엄청 무거워 자리라도 옮기려 치면 세 사람이 들어도 힘들었다. 지지대가 없어 상판을 들면 지탱 못 하고 곧 부서질 듯 해 그간 마음을 써 왔다. 어제 정 박사 불러 바퀴 4개 달아 놓으니 손가락 하나로도 움직이겠다. 누군가, 이 멋진 바퀴를 발명한 사람은.
 
한낮의 땡볕을 본 곡우가 그냥 있을 리 없다. 그릇이며 이불이며 다 내놓고 말린다. 그간 미뤄오던 세미나실 에어컨(온풍기 겸용)도 천정형으로 질렀다. 겨울이든 여름이든 쾌적한 세미나가 가능하겠다. 효율과 경제를 외면하는 산막스쿨? 글쎄다. 길게 보고 멀리 보자.

 
햇볕이 좋은 날이면 빨랫감, 이불, 그릇 할 것 없이 모두 마당에서 일광욕을 즐긴다. 이게 바로 자연 소독이다. [사진 권대욱]

햇볕이 좋은 날이면 빨랫감, 이불, 그릇 할 것 없이 모두 마당에서 일광욕을 즐긴다. 이게 바로 자연 소독이다. [사진 권대욱]

 
늘 이야기하지만, 세상에 공짜도 없고 마냥 좋기만 하거나 마냥 나쁘기만 한 일은 없다. 산막에 진객들을 초대해 놓고 이번 비가 걱정돼 아랫동네 임씨 아저씨께 연락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엄청난 비에 도로(비포장 진입로)가 패여 통행 불가란다.

 
급히 사람을 수배해 걸어라도 들어가 상황을 알려달라 했다. 다른 곳보다 연못이 넘쳐 야외 부엌에 피해가 있을까 걱정이다. 손님들은 힘든 환경에서 추억을 만드는 것, 더 좋은 시간을 위해 기다리는 것 모두 좋다고 하지만 나는 다소 어렵더라도 예정대로 했으면 한다. 좋은 추억 만들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만일 이 글 읽고 어느 누가 산막이 없었다면 비 걱정, 홍수 걱정 따윈 안 해도 좋을 거라 이야기한다면 남산 기슭에서 불타는 도시를 바라보며 “봐라. 불 날 집이 없으니 우린 얼마나 다행이냐” 했다는 어느 거지 부자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얻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잃는 것도 있다. 그걸 인정하지 않으면 탐욕이 되고 교만이 되고 불안이 된다. 그걸 인정해야 호호하고 당당하고 담담할 수 있는 거다. 
 
그래 홍수가 났구나. 부엌에 모래가 한마당이나 쌓였구나. 길이 다 패였구나. 부엌 모래는 퍼내면 되는 거고, 길은 나라 도움 좀 받아 고치면 되는 거고. 이 모두 그동안 산막에서 느꼈던 행복의 당연한 대가라 생각하면 되는 거지 이미 벌어진 일로 마음 쓸 것 없다! 그래야 마음이 편한 거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어젯밤 꿈이 걸리기는 하지만 어쨌든 정 박사의 보고를 기다려보자. 호호 당당 담담.

 
시원하게 내려라 비야. [사진 권대욱]

시원하게 내려라 비야. [사진 권대욱]

 
오늘도 새 아침이 밝았다. 달빛 선연한 산막의 새벽. 행복하세요, 건강하세요 이런 습관적 덕담에 더해 묵직한 화두 하나를 던지고 싶다. 내게, 그리고 여러분들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
 
지극히 평범하고 순탄하고 그래서 끔찍한 삶, 똑똑하고 진중하며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잘 알고 있고 적당히 순수하고 적당히 타산적이며 적당히 도덕적이고 적당히 방탕한 삶, 적당히 인맥을 쌓고 적당히 돈을 모으고 적당한 여자 만나 결혼을 하고 신혼 초의 사랑은 아니지만 아들딸도 잘 자라 외관상 별 탈 없는 가정, 승진도 하고 집도 넓혀가고 그런대로 잘 살아왔다 생각하는 그런 삶.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 나오는 어떤 삶이다.
 
카잔차기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의 화자 역시 다르지 않다. 크레타 출신의 젊은 지식인. 머리에 먹물을 뒤집어쓰고 살고, 행동하지 않는 인간, 창백한 지식인이라 조롱받는 그의 삶 또한 소위 무언가 이뤘다 착각하는 우리들의 삶 아닌가 싶다. 
 
죽을병에 걸려 병상에서 이반이 느끼는 고통은 두 가지다. 하나는 그 누구도 자신을 동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이고, 또 하나는 그가 그토록 혐오하는 사람들, 누군가를 진심으로 위로해 본 적 없는 그 사람들이 바로 자신의 모습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가 임종하기 직전 그의 어린 아들 바사가 다가와 손잡고 울었던 울음을 통해 그는 그토록 갈망하던 위로를 얻는다. 그 순간 그는 그토록 미워했던 가족들이 안쓰러워졌고 혐오했던 모든 사람이 불쌍해졌다. 죽음을 통해 자신의 삶과 화해한 것이니, 죽는 게 끝난 게 아니라 끝난 건 죽음이었다. 나의 바샤는 누구인가? 바샤를 찾을 수 있는 한 우리 모두는 늦지 않았다. 
 
한편 이런 삶은 또 어떤가? 벌떡벌떡 뛰는 심장, 푸짐하고 풍성한 언어, 야성이 넘치는 영혼, 예순을 훌쩍 넘은 나이에도 마음껏 사랑하고 누구에게도 무엇에게도 구속되지 않으며 세상의 시선 따위는 저 멀리 지워버린 당당한 자유인 조르바. 관념적이고 정신적인 것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현대사회. 사람들은 실패가 두려워 시도조차 못 하고 생각이 너무 많아 행동에 족쇄를 채우며 무겁게 짓눌려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하여 진정 자신을 사랑할 줄도 진정한 자유를 누릴 줄도 모른다. 어떤가?

적막한 산속에서 동트기를 기다리는 나는 누구인가? [사진 권대욱]

적막한 산속에서 동트기를 기다리는 나는 누구인가? [사진 권대욱]

 
 

조르바 흉내를 내 봤지만  

비록 내가 보탤 말 뺄 말도 없어 강신장의 『고전 결박을 풀다』에서 통째로 이 문장들을 베껴왔더라도 그 감흥과 느낌은 오히려 내가 더 절절하니 나는 떳떳하다. 나름 조르바 흉내를 낸답시고 채워진 족쇄를 끌고 에워싼 그물을 걷어내며 이리저리 다녔다만 바라던 삶은 아니었다. 여전히 족쇄를 차고 생각이 많고 행동하지 않는다. 자신을 사랑하지도, 남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끼지도 못한다.
 
무책임하지 않은 자유를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자유로워지고 싶다. 이 모든 것으로부터.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고 싶다. 나는 안다. 언젠가는 내가 이 길을 갈 것임을. 그리고 또한 안다. 죽을 때까지 가지 못할 수도 있음을. 가지 못하더라도 꿈속에서나마 그리워할 것을.
 
권대욱 ㈜휴넷 회장·청춘합장단 단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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