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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동맹 청구서’ 키워드는 호르무즈·지소미아·방위비

정경두 국방장관(오른쪽)과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이 9일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손을 굳게 맞잡고 있다. [뉴시스]

정경두 국방장관(오른쪽)과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이 9일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손을 굳게 맞잡고 있다. [뉴시스]

8~9일 마크 에스퍼 신임 미국 국방장관의 방한으로 ‘트럼프발 한·미 동맹 청구서’는 공식 접수됐다. 9일 에스퍼 장관의 외교부-국방부-청와대 면담 을 통해서다. 요지는 한·일 갈등에도 불구하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재연장하고, 내년도부터 적용될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올리며, 이란에 맞서 미국이 추진 중인 중동 호르무즈 해협 호위 연합체에 참여해 달라는 것이다.
 

에스퍼 신임 미 국방장관 방한
호르무즈 해협 호위 연합체 파병
지소미아 연장 강력 희망 내비쳐
방위비 분담금 증액은 언급 안 해

“두 가지 요구 수용해 카드 확보 후
방위비 협상 원칙적 접근” 의견도

이날 취임 후 첫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에스퍼 장관은 사실상 호르무즈 해협 호위 연합체 파병을 요청했다. 국방부 관계자에 따르면 에스퍼 장관은 호르무즈 해협에서 ‘항행의 자유’ 필요성을 강조하며 한국 정부의 협조를 당부했다. 이에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우리 국민과 선박도 (해협을) 이용하고 있으니 다양한 대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지소미아 연장 역시 테이블에 올랐다. 정 장관은 “일본이 최근 한국을 ‘화이트국가(안보우호국)’에서 배제하면서 한·미·일 안보 협력에 악영향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에스퍼 장관은 “한·미·일 3국 협력이 필요하다”는 원칙론을 언급하며 에둘러 지소미아 ‘유지’ 입장을 전달했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 이슈는 외교부나 국방부에서 언급되지 않았다고 한다. 에스퍼 장관이 이날 오전 첫 일정으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만난 직후 외교부 당국자는 “방위비 관련 이슈는 언급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의 주무 부처는 외교부다. 국방부 당국자도 “에스퍼 장관이 회담에서 방위비 분담금 얘기는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현지시간) “부자 나라인 한국이 방위비를 올리기로 했다. 협상이 시작됐다”고 밝혔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에스퍼 장관 자신도 사안의 민감성을 고려했는지 이날 신중한 행보를 보였다. 외교부 청사에 도착한 에스퍼 장관은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에 대해 강 장관과 얘기할 계획이냐’는 기자들 질문에 미소만 머금었다. 강 장관을 만난 뒤에도 간단한 입장 표명도 없이 청사를 떠났다. 국방부에선 양국 장관의 첫 상견례임에도 불구하고 약식 기자회견조차 하지 않았다.
 
청와대도 극도로 신중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후 2시부터 30분 동안 에스퍼 장관을 접견했는데, 이후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이 발표한 서면 브리핑엔 3대 한·미 동맹 현안에 대한 언급은 없었고 주로 덕담만 담겼다. 브리핑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에스퍼 장관이 안보 분야 최고 전문가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다고 들었다”며 취임을 축하했다. 그러면서 “에스퍼 장관은 공고한 한·미 동맹을 이어갈 적임자라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에스퍼 장관은 삼촌이 과거 한국전에 참전한 사실을 언급하며 “공동의 희생을 기반으로 하는 한·미 관계가 앞으로 더욱 발전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에스퍼 장관의 방한을 계기로 한·미 동맹의 미래를 결정한 중대 현안이 또 한 번 테이블 위에 올랐다고 평가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추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확대 ▶이라크 파병 등 ‘부시발 청구서’가 한·미 동맹의 현안으로 떠올랐던 것처럼 말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당시엔 한·일 관계가 지금처럼 최악은 아니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동맹 인식도 역대 미국 대통령과는 사뭇 다르다. 물론 두 측면 모두 협상을 앞둔 우리에게 긍정적 요소라고 할 순 없다.
 
전문가들은 국익을 극대화하는 현실적 접근을 당부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호위 연합체 참여와 지소미아 연장 등을 통해 미국의 희망사항을 들어주되 이를 기반으로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원칙적으로 접근해 보자는 주문이다.
 
위성락 서울대 객원교수는 9일 중앙SUNDAY에 “호르무즈 해협은 우리의 주된 원유 수송로라는 점에서도 어떻게든 미국을 도와줄 필요가 있다”며 “노무현 정부 때 이라크 파병 사례처럼 이를 기반으로 다른 국익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요구에 일본과 호주가 다소 부정적이라는 점도 한국의 전략적 지위를 높이고 있다. 이와 관련, 국방부는 현재 다국적 연합체에 참여할지, 단독으로 활동할지를 놓고 고심 중이라고 한다.
 
미국이 강하게 희망하는 지소미아 연장도 대미 및 대일 협상 카드가 될 수 있다. 조태용 전 외교부 차관은 “우리도 한·미·일 안보 협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로 한·일 관계가 나빠지면서 국민을 설득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여러 면에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문했다. 조 전 차관은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일본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보다 우리가 1년 먼저 시작한다는 불리한 점은 있지만 이 같은 카드를 최대한 활용해 미국의 압박을 덜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차세현·이철재·이유정 기자 cha.se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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