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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농법 복숭아, 못생겨도 단맛·신맛 환상의 조화

[이택희의 맛따라기] 양평 ‘혜림원’의 과일·채소

김주진 혜림원 대표(오른쪽)와 이문웅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가 대풍을 이룬 복숭아를 살펴보고 있다. 혜림원은 땅을 갈지 않고 비료와 농약을 안 쓰는 자연농법으로 작물을 키운다. 신인섭 기자

김주진 혜림원 대표(오른쪽)와 이문웅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가 대풍을 이룬 복숭아를 살펴보고 있다. 혜림원은 땅을 갈지 않고 비료와 농약을 안 쓰는 자연농법으로 작물을 키운다. 신인섭 기자

오전 9시에 도착한 농장에는 농기계가 보이지 않았다. 축구장 29개와 맞먹는 20만6612㎡(6만2500평) 넓은 농장인데 엔진이 있는 기계는 아무리 봐도 자동차와 예초기뿐이다.
 

『기적의 사과』 읽고 관심 갖게 돼
무역회사 접고 산 일군 지 8년
생태계 순환 믿고 기다리며 길러

축구장 29개 넓이에도 예초기뿐
과일나무 사이 산나물·약초 지천

납작한 S자를 그리며, 차도 숨이 찰 듯한 비탈길을 올라가 산 중턱에 서니 산속에 평지가 훤히 열렸다. 농장은 해발 250~300m 사이 평지와 둘레 산자락에 들어앉았다.
 
농장을 둘러보았다. 평지 밭에는 고추·토마토·고구마부터 아스파라거스까지 각종 채소류가 잡초들과 키를 다투며 자라고, 산비탈은 나무를 베어 내고 심은 과수들이 차지했다. 나무도 자라기 어려운 바위 비탈에는 바위솔(와송)이 저절로 난 것처럼 틈마다 뿌리를 내렸다. 숲으로 보이는 산지 2만6000㎡에는 산양삼을 심었다. 한 골짜기에는 닭 100마리를 키우는 양계장이 있다. 닭은 낮엔 산을 헤매며 먹이활동을 하고 밤엔 알아서 돌아온다.
  
비료·거름·약 한 방울 안 줘도 잘 익어
 
자연농법으로 키운 각종 채소. 신인섭 기자

자연농법으로 키운 각종 채소. 신인섭 기자

오가는 길가와 산자락 과수 아래에는 저절로 난 산나물과 약초들이 땅을 덮었다. 쑥은 지천이고, 각시원추리·산도라지·더덕·잔대·취나물·고사리·다래·참옻·두릅·오가피·둥굴레·마·바디나물·고들빼기·왕고들빼기·뽕잎·국수나무·엉겅퀴 같은 나물들 사이로 약으로 쓰는 백선(봉삼)·구절초·인동·산딸기가 뒤섞여 천연 밭을 이뤘다.
 
여기는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상망길에 자리 잡고 8년째 자연농법을 고집스레 실천하는 국내 최대 자연농업 농장인 혜림원(농업회사법인)이다.
 
원추리 꽃대에 하얗게 진딧물이 붙어 있지만 바로 옆 복숭아나무에는 없다. 신인섭 기자

원추리 꽃대에 하얗게 진딧물이 붙어 있지만 바로 옆 복숭아나무에는 없다. 신인섭 기자

자연농업(Natural Farming)은, 거칠게 정의하면 작물을 심기만 하고 인위적 관여를 하지 않은 채 결실을 수확하는 농법이다. 모든 식물은 자연에서 스스로 살아갈 힘이 있으므로 작물도 자연의 원리대로 야생식물들과 어울려 자라도록 믿고 기다리자는 것이다. 그래서 혜림원은 작물에 어떠한 농약·비료·퇴비도 주지 않는다. 땅을 갈지도 않으며, 제초도 하지 않고 풀과 작물을 어울려 키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 순환을 믿고 따르면서 기다린다는 철학이 그 바탕에 있다.
 
농장주 김주진(69) 박사는 이런 원칙으로 2011년부터 산의 나무를 베어 바닥을 덮고 과수 묘목을 심었다. 과일이 열릴 때까지 사람이 해준 일은 ▶주위에서 썩은 낙엽을 긁어모아 묘목 아래 깔아주고 ▶작은 묘목이 주변 풀에 치이지 않도록 둘레 풀을 깎고 ▶쓸데없이 자라는 가지(徒長枝)를 잘라준 게 전부다. 그가 2009년 일본 기무라 아키노리의기적의 사과를 읽고 자연농에 관심을 갖게 됐기 때문에 과수에 주력했다. 첫해부터 사과 2000주, 복숭아 600주, 매실·블루베리 각 1500주, 아로니아 200주, 오미자 1000주, 포도 100여 주를 심었다.
 
농장 입구에 들어서자 산비탈에 기대 주렁주렁 빨갛게 익어가는 복숭아가 반겼다. 너무 많이 열어 가지가 땅에 닿을 만큼 늘어진 것도 많다. 나무 밑엔 떨어진 복숭아가 가지에 달린 것만큼이나 나뒹굴고 있다. 벌레 먹거나 새들이 쪼아 떨어진 것이라 한다.
 
자연농법으로 키운 양파. 크기가 제각각이고 볼품은 없지만, 맛은 강하다. 신인섭 기자

자연농법으로 키운 양파. 크기가 제각각이고 볼품은 없지만, 맛은 강하다. 신인섭 기자

농장 관리사 앞 수돗가에는 복숭아가 무더기로 쌓여 있다. 떨어진 걸 주워 모아 식초와 잼을 만들 거라 한다. 맛을 보라 권하기에 겉이 깔끔한 걸 하나 골라 먹어봤다. 크기는 작고 볼품은 떨어져도 조직이 치밀해 과육이 질긴 듯 단단해 씹는 맛이 있다. 단맛과 신맛은 거칠지만 기분 좋은 균형을 이루고 있다. 단맛은 묵직하고, 신맛은 초저녁 산바람처럼 상큼하게 침샘을 자극했다. 농장을 오가며 따 먹어본 블루베리도 단맛에 더해, 시중 블루베리에서 맛보기 어려운 힘찬 신맛이 미각을 일깨웠다. 달기만 한 포도를 먹다가 머루를 먹었을 때 느낀 신맛이 이랬다.
 
김 박사가 8년 만에 대풍을 이룬 복숭아에 감격해 지난달 6일 SNS에 올린 글이 떠올랐다. “복숭아가 익어가고 있다. 비료도 거름도 주지 않고 약 한 방울 도움 없이 자연 그대로 익어가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복숭아 자연농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는데 이제 살아나고 있는 것 같다. 솎아주지도 않고, 봉지도 싸지 않고… 기가 막힌 일이 일어나고 있다. 이보다 가슴 설레는 일이 또 있을까! 응원하고 애정으로 지켜보고 계시는 이문웅 교수님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바른 농사, 자연농은 맛으로 보답할 것으로 믿는다.”
 
취재에 동행한 이문웅(78)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는 문화인류학자의 눈으로 20년 가까이 자연농 현장을 찾아다녔고, 정년퇴임 후 13년 동안은 자연농업 사례연구와 전파에 주력하고 있다.
  
“기적의 사과보다 내 과일이 더 기적”
 
무농약과 제초작업을 하지 않자 약재로도 사용되는 바위솔이 혜림원 곳곳에서 자라고 있다. 신인섭 기자

무농약과 제초작업을 하지 않자 약재로도 사용되는 바위솔이 혜림원 곳곳에서 자라고 있다. 신인섭 기자

2011년 이 교수가 일본 ‘기적의 사과’ 농장을 다녀와 신문 인터뷰를 했다. 기사를 본 김 박사가 찾아왔다. 혜림원을 막 시작할 무렵이다. 이후 이 교수는 한 달에 한두 번은 혜림원을 꼭 방문한다. 자연농 현장을 기록한 사진·동영상이 1만2400여 건(155GB)에 이른다. 그걸 유튜브 채널에 계속 올리고 있다.
 
섬유공학과 출신 사업가로 한 해 1500만 달러의 섬유무역을 하던 농장주는 2009년 임원에게 회사를 맡기고 주주로 물러앉았다. 『기적의 사과』 책을 2시간 만에 다 읽고, 다음날 회사에 나가서 내린 결단이다. 그리고 건국대 대학원에 진학해 자연농의 이론과 철학을 다진 ‘관행농업·유기농업·자연농업으로 재배된 배추 및 김치의 성분분석 및 기능성 연구’라는 논문으로 2014년 8월 생명자원식품공학과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자신의 농사에 대해 “먹는 것이 몸이 되고, 그걸로 생명을 지탱한다. 몸은 자연의 일부이므로 몸에 좋은 걸 생각한다면 자연농업이 최선이다. 맛도 훨씬 좋다. 요즘 밥 못 먹고 사는 사람은 없다. 어떤 밥을 먹고 사느냐가 문제다. 산삼과 인삼의 관계를 생각해보라”고 설명했다.
 
지난 8년의 성과에 대해서는 “일본 기무라의 ‘기적의 사과’에서 착안했지만 기적의 사과를 뛰어넘었다. 그는 과수에 식초 희석액을 한 해 10~13회 치지만 나는 아무것도 안 친다. 그러니 내 과일이 더 기적이다. 이런 먹거리야말로 최고의 약이고 최고의 병원”이라고 자평했다.
 
혜림원은 지금까지 블루베리·계란·과일잼·된장 등을 조금씩 판매했다. 내년에는 수확 작목도, 양도 훨씬 늘 것으로 기대한다.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만 있다면 생산을 늘릴 준비는 충분히 돼 있다.
 
이택희 음식문화 이야기꾼 lee.tackhee@joins.com
전직 신문기자. 기자 시절 먹고 마시고 여행하기를 본업 다음으로 열심히 했다. 2018년 처음 무소속이 돼 자연으로 가는 자유인을 꿈꾸는 자칭 ‘자자처사(自自處士)’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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