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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일본 사람들의 마음을 사자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필자는 이번 여름 방학 기간에 학생들을 인솔하여 일본 교토의 리쓰메이칸(立命館) 대학을 방문할 계획이었다. 국제학생 워크숍도 개최하고 문화탐방도 한다는 아이디어였다. 그러나 일본 아베 신조 정부의 무도한 경제보복 도발로 한일 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일본제품 불매 및 일본여행 보이콧 운동이 불붙기 시작하면서 고민이 생겼다. 우리 측 참여 학생 수가 예상보다 줄어들기 시작했고, 학생들의 우려 목소리도 들려왔다. 이 시점에 학생들을 단체로 이끌고 일본에 가면 뭔 소리를 들을지 신경도 쓰였다.
 

일본 사람의 마음을 사는 노력은
일본산 불매운동만큼이나 중요
항의의 대상은 일본인이 아니며
일본의 양심 세력들과 연대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 시민사회의 항의 물결에 동참하고 싶었다. 장고 끝에 리쓰메이칸대 측 상대 교수에게 미안하지만, 방문을 연기하겠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조만간 한국에 올 기회가 있으면 같이 만나 다음번 국제 워크숍을 다시 기획해보자는 제안도 했다. 이메일을 보낸 지 3주가 됐지만, 아직 답장이 없다. 뭔가 찜찜했다. 우리로선 정당한 항의 표시를 한다고 했지만, 과연 그 효과는 있었는지, 이 일로 우리에 대한 반감만 늘어난 건 아닌지, 향후 상호 우호 관계를 돈독히 할 기회를 놓쳐버린 건 아닌지 여러 생각이 들었다.
 
과연 어떻게 항의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고 바람직할까. 필자는 이번 경험을 통하여 ‘일본제품을 사지 않는 운동’만큼이나 ‘일본 사람들의 마음을 사는 운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일본인들에게 반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면서 그 정당성은 인정받을 수 있는 항의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는 얘기다. 현재 국내 곳곳에서 수많은 자발적 일본제품·여행 보이콧 운동이 일어나는가 하면 지금까지 전국 226개 기초지자체 중 150여 곳이 일본 정부의 부당한 경제보복 조치를 규탄하는 실천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기본은 우리의 항의 대상이 일본과 일본인이 아니라 아베 정부와 극우세력임을 확실히 알리는 것이다. 또한, 일본제품과 여행은 거부할지언정 일본 사람들과의 친선과 교류는 소중히 여긴다는 점을 보여야 한다. 사실 우리 시민사회는 이미 이러한 지혜롭고 성숙한 모습으로 항의의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 최근 서울 중구청이 관내에 ‘노 재팬(No Japan)’ 깃발을 내걸자 아베 정권에 반대해야지 일본인을 반대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 강하게 제기돼 결국 하루 만에 깃발을 내리게 한 에피소드가 대표적이다. 비록 일본제품은 안 쓰지만, 주변의 일본인과 더 잘 지내려 노력하거나 일본여행은 안 가지만 우리를 방문한 일본인 여행객들에게 예의를 지키고 친절한 모습을 보여주는 방식도 이에 해당한다.
 
다음으로 아베 정권의 경제보복 조치와 극우 역사관에 반대하는 양심적 일본인들과 연대하고 이들을 우리의 우군으로 삼는 방식이다. 현재 ‘강제동원 문제 해결과 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의 이름으로 한·일 양국 시민단체들이 함께 평화적 연대 운동을 이끌고 있으며, 일본 내부에서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등 5,000여 명에 이르는 일본의 양식 있는 지식인들이 ‘한국은 적인가’라는 성명서를 내고 아베 정부의 수출규제 철회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다.
 
나아가 인권과 민주주의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평화적 국제주의에 뜻을 같이하는 전 세계적 시민사회 세력과 함께 갈 수 있다면 더 큰 힘이 될 수 있다. 일본 최대 규모 국제예술제인 ‘아이치 트리에날레 2019’의 ‘평화의 소녀상’ 검열과 ‘표현의 부자유’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전 세계로 퍼지면서 SNS를 통해 소녀상을 재현한 사진을 올리는 ‘내가 소녀상이다’ 퍼포먼스가 잇따른다. 국제정치학에서는 이러한 항의 방식을 초국적 옹호 네트워크(transnational advocacy network)의 ‘부메랑 전략’이라 부른다. 한마디로 이들 일본 내·외부의 국제적 동지들과 연대하여 아베 정부에 우회적으로 압력을 행사한다는 개념이다. SNS에 익숙한 우리 젊은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소녀상 퍼포먼스처럼 발랄하고 유쾌하면서도 개념 있는 온라인 콘텐츠를 제작·유포하여 아베 정권의 비행을 폭로하고 일본 및 전 세계 신세대의 공명을 끌어내는 ‘창피 주기 방식(naming and shaming)’은 또 어떤가.
 
일본에 대한 우리의 강점은 기업과 정치가 아니라 한류로부터 촛불집회에 이르기까지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모습을 보여온 시민사회에 있다. 일본이 우리를 얕잡아보지 못하고 부러워하는 우리만의 매력의 근원이라 생각한다. 일제 불매운동, 평화의 소녀상처럼 입술을 굳게 다물고 단호하게 지속하자. 하지만 우리 시민사회의 포용적이고 평화로운 항의 방식으로 일본인의 마음도 사보자는 얘기다.
 
돌이켜 보건대 이번 일본 방문을 취소한 데 대해선 아쉬움이 많다. 리쓰메이칸대는 일본의 대표적인 진보적 대학이자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로서의 일본 역사를 전시해 전쟁 반대와 평화를 지향하는 국제평화뮤지엄으로도 유명하다. 양국의 젊은 대학생들이 진솔하게 생각을 나누고 마음을 모을 좋은 기회였을지 모른다. 대신 대만을 방문해 대만정치대생들과 국제워크숍을 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아쉬운 대로 부메랑 전략이다!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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