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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기] 살아 있는 전설 윤경신 감독이 전하는 핸드볼 인생


꿈의 무대인 올림픽을 다섯 번이나 밟은 선수가 있다.
 
1990년 17살의 나이로 국가대표가 된 뒤 20년이 넘게 태극마크를 달며 ‘핸드볼의 신’으로 불린 윤경신(46)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독일 핸드볼 분데스리가 무대를 누비며 리그 역대 최다 득점, 단일 시즌 최다 득점, 득점왕 여덟 번에 올랐다. 국내보다 유럽에서 더 큰 명성을 얻었다. 키 2m 3cm에서 뿜어 나오는 고공 폭격으로 유럽 선수들을 꼼짝 못하게 하였다. 많은 핸드볼 팬들이 기억하는 윤경신의 트레이드마크다.
 
 

현재 그는 두산 남자 핸드볼팀 사령탑이다. 2018~2019시즌에 사상 최초로 정규리그 22연승 전승과 통합 우승을 이끌었다. 세계 핸드볼 무대를 평정했던 선수에서 후배 양성을 위해 물심양면 노력하는 지도자로 거듭났다. 한국 핸드볼의 살아 있는 전설 윤경신의 이야기가 JTBC3 FOX SPORTS 사담기(사진에 담긴 숨은 이야기)를 통해 공개된다. 독일 생활 뒷이야기와 선수 생활 중 가장 억울했던 국제 대회에 대해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1980년대 독일 축구 분데스리가에 차범근이 있었다면 1990년대와 2000년대 독일 핸드볼 분데스리가엔 윤경신이 있었다. 소속팀 굼머스바흐와 함부르크에서 스타 플레이어로 활약하며 국위선양에 앞장 섰다.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언어, 문화, 생활 방식 등 배우고 적응해야 할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코트에서도 힘겨웠다. 독일어를 알아 들을 수 없었기 때문에 감독의 지시에 그저 끄덕거릴 수밖에 없었다. 어떤 내용이든 고개를 끄덕이는 윤경신을 보고 동료 선수들은 ‘닉’이라는 애칭을 붙여줬다고. 이는 독일어로 ‘고개를 끄덕이다’라는 의미다. 처음에는 동양에서 온 낯선 선수에게 볼을 주지 않는 등 텃세에 시달렸다. 그러나 점차 인정받았고 이후 주장까지 맡으며 팀에서 없어선 안 될 선수로 성장했다.
 
윤경신의 큰 키는 그의 대표 정체성 가운데 한 가지다. 핸드볼 선수 가운데서도 큰 편에 속한다. 중학교 2학년 때 급격하게 키거 컸다. 강원도 삼척으로 전지훈련을 떠난 뒤 보낸 2주 동안 10cm가 컸다고. 하루에 약 0.5cm씩 키가 자란 셈이다. 단시간에 성장을 했기 때문에 주변에선 병을 의심했다. 정밀 검사 결과 병이 아닌 정상적인 성장과정으로 밝혀졌다.
 
집안 내력도 꼽힌다. 육상 선수 출신 아버지, 핸드볼 선수 출신 어머니는 키도 크다. 남다른 재능도 물려받았다. 큰 키와 넘치는 재능 덕분에 축구, 농구 등 다른 종목에서도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핸드볼에 대한 애정으로 지금까지 핸드볼 ‘외길 인생’을 걷고 있다.

 

윤경신의 독특한 이력 중 하나는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서 모두 기수를 경험한 것이다. 윤경신은 지난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과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기수로 나섰다. 두 번째 기수였던 런던 올림픽에서는 카메라에 어떻게 찍히면 좋을지 태극기 각도와 포즈를 연구해 기수로 나서기도 했다고. 그러나 막상 입장을 할 때는 주경기장에 바람이 심하게 불어 태극기가 제대로 펴지지 않아 애를 먹었다고 한다. 결국 태극기가 돌돌 말린 채 입장했고, 자신의 사진에는 네티즌들의 원성 어린 댓글이 달렸다고 추억했다.

수많은 메달을 획득한 딴 윤경신이다. 그런 그도 가장 아픈 손가락으로 기억하는 대회가 있다. 편파 판정으로 얼룩졌던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이다. 유일하게 금메달을 따지 못한 아시안게임이자 취재진과 상대 감독 앞에서 가장 크게 화를 냈던 대회였다. 선수 인생을 통틀어 가장 억울했던 도하 아시안게임. 그곳에선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윤경신 감독과 함께한 사담기는 오는 8월 8일 목요일 밤 11시 JTBC3 FOX Sports를 통해 방송될 예정이다.
 
안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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