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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역사는 정치의 시녀가 아니다

정문헌 한국외대 글로벌안보협력센터 선임자문위원, 전 국회의원

정문헌 한국외대 글로벌안보협력센터 선임자문위원, 전 국회의원

역사는 집단의 기억이다. 그 기억은 집단정체성의 근거를 이룬다. 정치가 역사를 쥐락펴락하면 국가와 사회의 기억은 결국 오락가락하고 만다. 이어 국민의 정체성마저 흔들려 마침내 국가와 사회의 분열을 낳는다.
 

건국절 논란은 불필요한 소모전
통합적 안목으로 역사 계승해야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주인공은 당의 명령에 따라 역사를 지우고, 기록을 새로 고쳐 쓴다. 당은 이런 식으로 사람들의 기억까지도 관리하고 감시하며 통제한다.
 
이 소설이 1949년에 발표됐으니 올해로 70주년이지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지금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 역사 교과서 기술이 달라지는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건국절 논란만 해도 그렇다. 1919년 임시정부 수립 이래 올해가 건국 100주년이 맞느냐, 아니면 1948년 정부 수립 이래 지난해가 건국 70주년이 맞느냐의 문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건국절 논란은 일부 보수와 진보의 쓸데없는 신경전이자, 보수 내부의 무의미한 소모전이다. 우리 역사, 우리 민족의 기억을 통제해보겠다는 정치의 만용일 뿐이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30년 7월 27일’이라 표기된 1948년 이승만 대통령의 취임사, ‘대한민국 30년’으로 기록했던 대한민국 『관보(官報)』 제1호는 대한민국의 건국을 임정으로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제헌 헌법 전문에서도 대한민국은 ‘1919년 건립’과 ‘1948년 재건’을 분명히 하고 있다. 지금의 우리 헌법에서도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라 명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정치는 역사를 시녀로 부려왔다. 1948년을 대한민국 건국 시점으로 잡고 앞장섰던 정치였다. 노태우 대통령의 ‘건국 40주년’, 김대중 대통령의 ‘건국 50주년’ 혹은 ‘제2의 건국’, 이명박 대통령의 ‘건국 60주년’ 등의 표현들은 결국 역사를 수단으로 동원했던 결과다. 올바른 역사가 아니라 정치적 의미를 담아내기 위한 이벤트성 수사(修辭)에 치중했기 때문이다.
 
진보 진영의 논리도 극히 제한적이다. 임시정부의 정통성에만 집착하다가 그 울타리 밖에 있었던 모든 세력들의 공헌과 기여를 인정하지 않는 오류를 저지른다. 대한민국 정부 출범에 실질적으로 기여했던 모든 세력을 배척함으로써 역사적 독선으로 기우는 착오를 범하고 말았다.
 
역사는 계승이다. 앞의 것을 뒤로 이어가는 일이다. 1919년의 임시정부는 대한민국의 ‘명분’을 이뤘고, 1948년의 정부 출범은 그를 ‘실행’으로 뒷받침하며 이었다. 그 30년 사이에 역사의 공백은 없었다. 대일항쟁이 간극을 분명히 메우고 있었다. 단지 뒤에 등장한 정치가 그 역사의 요소를 통합적인 안목으로 계승하며 발전시키는 작업에 둔감했다.
 
건국절을 따로 고집하는 것은 1919년 이후 자연스레 이어졌던 역사의 계승과 발전에 관한 흐름을 축소시키는 일이다. 임시정부는 일찌감치 고조선을 최초 국가로 보고 개천절을 국경일로 지정했다. 그 개천절이 있는데 따로 건국절을 만드는 것은 이치에도 맞지 않는다.
 
장차 남북 통일을 고려해도 그렇다. 북한은 1926년 김일성이 열네살 나이에 항일 조직을 결성했다는 이른바 ‘타도제국주의 동맹(ㅌ·ㄷ)’을 노동당의 기원이자 현대사의 기점으로 삼는다. 따라서 우리의 1948년 건국절 주장은 통일과정에서 북한의 억지 주장에 빌미가 될 뿐이다.
 
우리 역사는 대한민국 정체성의 공통분모다. 공유하는 역사가 국민화합의 기초다. 있었던 그대로의 역사마저도 축소시키고 다르게 해석하면 국민 분열의 씨앗만 키운다. 올해 광복 74주년을 맞으면서도 같은 논란이 또 불거진다. 역사 앞에 정치가 군림할 때 늘 반복되는 현상이다. 끊고 닫는 단절(斷絶)보다는 받아서 잇는 계승의 역사에 정치가 이제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정문헌 한국외대 글로벌안보협력센터 선임자문위원,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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