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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돈의 비명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주식시장이 크게 뒷걸음친 월요일, 증권 고수 몇 사람에게 전망을 물었다. “바닥을 알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백약이 무효, 사면초가, 겪어보지 못한 위기란 말도 나왔다. 김군호 에프앤가이드 대표는 “외환위기 전야 같다”며 “돈의 소리를 제대로 들어야 할 때”라고 했다. 그는 “위기 때 금융의 본성이 나온다. 꼬리(금융)가 몸통(산업)을 흔드는 것이다. 금융이란 꼬리는 제아무리 첨단 기술과 튼튼한 산업도 단숨에 허물 수 있다”고 했다.
 
돈의 소리는 어떻게 듣나. 움직임을 봐야한다. 돈은 늘 움직이다. 대개는 조용하고 은밀하지만, 떠도는 돈(부동 자금)이 많아지면 비명을 지르기도 한다, 이때가 제일 위험하다. 순식간에 한곳으로 쏠려 대형 사고를 내기 쉽다. 외환위기·금융위기의 트라우마가 살아있는 우리 시장엔 충격이 더 클 수 있다. 부동자금은 최근 1200조원까지 불어났다. 올해에만 머니마켓펀드(MMF)로 30조원 넘게 이동했다. 채권·달러·금을 찾는 돈도 크게 늘었다.
 
부동 자금은 당장 한국을 탈출할 기세다. 외국인 돈은 말할 것도 없다. 이유도 분명하다. 한국 증시만 최악이다. 벌써 근 10년째다. 2011년부터 올 6월 말까지 전 세계 주가가 58% 오르는 동안 코스피지수는 고작 4% 올랐다. 물가 오른 것을 빼면 사실상 마이너스다. 미국 S&P500은 134%, 일본 닛케이지수는 108%가 올랐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성적은 더 나쁘다. 세계 주가는 평균 16% 올랐는데 코스피지수는 14% 하락했다. 미국 기업실적 전문조사기관 IBES가 예상한 올해 한국 증시 수익률은 -26%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저다. 그것도 일본 악재, 미·중 환율 전쟁 전 예측이다.
 
그렇다고 돈을 욕할 수는 없다. 돈은 본래 의(義)보다 이(利)다. 잘 되는 쪽, 안전한 쪽을 좇는다. 돈을 머물게 하려면 종합 처방이 필요하다. 반기업 친노동 정책의 즉각 폐기는 물론 시장친화적 규제 완화가 필수다. 그래야 과거 정부가 구조개혁을 오래 미뤄 생긴 만성질환과 이 정부의 법인세 인상, 최저임금 과속 인상, 주 52시간제 졸속 시행이 부른 복합골절을 동시에 치료할 수 있다.
 
돈의 비명은 건강검진의 이상 신호와 같다. 조기 발견하면 죽을 병도 막을 수 있다. 위기설이 위기를 막는 최고의 처방인 것과 같다. 하지만 정부 인식은 딴판이다. “펀더멘탈은 튼튼하다”며 “위기설은 가짜뉴스”라고 몰아친다. 위기보다 위기설을 막는 데 더 힘을 쓰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어떻기에 (금융시장이) 불안하다는 단어를 쓰느냐”고 되묻고, 정부·여당은 “경제 위기설을 언론이 확대 재생산하는 건 일본의 의도에 말려드는 것”이란 ‘반일 프레임’까지 동원한다. 그러니 반일로 경제 실패를 가리려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그나마 반일 싸움 실력도 못 미덥다. 청와대와 정부는 “일본이 금융 공격을 할 가능성은 없다”고 자른다. 설사 돈을 빼 나가도 충격이 크지 않다고 장담한다. 순진한 소리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제일 먼저 만기 연장을 안 해준 게 일본이다. 그게 외국 자본의 한국 탈출 신호탄이 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하자 한일 통화스와프부터 끊었다. 돈줄 죄는 게 가장 아프다는 걸 일본이 누구보다 잘 안다. 당장은 아니겠지만, 싸움이 커지면 일본은 반드시 돈으로 공격할 것이다. 하필 미·중 환율전쟁으로 원화값이 급락하고 엔화가 세지는 터라 더 불길하다.
 
그래도 대책 없이 돈의 비명에 귀 막고 ‘총선 승리=기승전 반일’만 외치는 이들에게 증권시장 종목 토론방 방문을 권한다. 2년 전과는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그땐 어쩌다 한 사람이 대통령 욕하는 글을 올리면 “헛소리 말라”며 왕따를 당했다. 지금은 다르다. “북한만 챙기는 대통령” “대통령이 확 바뀌어야 한다” “내년 총선에서 보자” 같은 원성이 쏟아진다. 7월 말 현재 주식 활동계좌 수는 2877만개로 사상 최대다. 그들이 벼르고 있다. 내년 총선, 돈의 비명을 반일로 물타기 하지 말라. 백전필패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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