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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일본, 한·미·일 틀에서 한국을 내치려 한다

장부승 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 미 존스홉킨스대 국제정치학 박사

장부승 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 미 존스홉킨스대 국제정치학 박사

한·일관계가 근저에서 흔들리고 있다. 서울 중구청장이 ‘No Japan’ 깃발을 서울 한복판에 내걸었다가 하루 만에 철거했다고 한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 열기로 전국이 폭염만큼이나 뜨겁다. 일본에 관광 가는 한국인들에게 “분위기 파악 못 한다”고 손가락질하는 분위기다.
 

한·일 관계, 근저에서 흔들려
일본, 한·일 관계 재구성 노려
이게 갈등의 본질임을 알아야
미래는 우리 선택에 달려 있어

몇 달 전만 해도 언론은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다. 지난 3월 한 언론은 당시 외교가의 분위기를 인용해 “일본의 보복 조치가 당장 현실화할 가능성은 작다”고 전망했다. 수출 규제 등의 조치는 세계무역기구(WTO) 규정 위반 소지가 있고 일본 경제에도 피해가 간다는 취지였다. 일본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국인 교수로서 일본에 거주하는 필자에게 당시까지만 해도 “한·일 관계가 나빠지면 한국에 뭐가 안 좋은가”라고 궁금해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7월 1일 일본이 수출 규제 조치를 발표하자 분위기가 급반전했다. 아베 신조 총리가 7월 21일 참의원 선거 승리를 위해 정권의 선거용으로 조치에 나섰다는 분석이 한국에서 봇물 터지듯 했다. 참의원 선거가 끝났지만, 상황은 오히려 악화하고 있다. 일본은 지난 2일 전략물자 수출관리 체제상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국가다. 만약 국민이 진정으로 원한다면 국교 단절을 포함해 한·일 관계 재정립 모색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결단 전에 상황의 거죽만 따라갈 것이 아니라 한·일 갈등의 저변에 있는 구조적 의미가 무엇인지, 대안은 무엇인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한·일 국교정상화는 단지 돈 문제가 아니었다. 돈 때문이라면 당시 미국이 국교 정상화를 그렇게 다그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미국에 한국은 냉전의 최전선이었다. 한국이 강해져야 했다. 이를 위해 미국은 한국을 국제안보·무역 체제에 편입하기로 한다. 한국에 자본과 기술이 들어가 경제가 성장하면 중산층이 생겨나 민주주의로 발전한다는 것이 미국의 기본 구상이었다.
 
한국의 파트너로 미국은 일본을 선택한다. 한국에 투자할 최적임자는 일본이었다. 일본은 한국을 잘 알았으며, 전후 부흥을 통해 경제 여력도 있었다. 미국은 일본을 설득한다. 반공의 보루, 한국이 강해져야 일본도 이득이다. 국교를 정상화하고 성장을 촉진하라고 촉구한다. 안보에서도 미국은 한·미·일을 하나로 묶는다. 한국군과 일본 자위대의 협조가 중요하다.
 
냉전 후 미·일은 ‘가치동맹’이라는 새로운 구호를 만든다. 민주국가들이 중국을 공동 견제하자는 것이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만든 오부치 게이조 총리는 보수파였지만 김대중을 환대했다. 일본 보수세력은 민주투사 출신인 김대중에게서 중국에 대항하는 가치동맹의 가능성을 본 것이다. 일본의 속내를 간파한 김대중은 이를 역이용해 전후 최초로 일본의 공식 사과를 문서로 받아냈다.
 
미국은 중국이 부상하자 ‘인도-태평양 전략’을 채택한다. 일본·인도·호주와 함께 ‘광역 중국 견제망’을 구축하려 한다. 미국인가, 중국인가, 아니면 중간인가 선택하라는 것이다. 일본의 수출규제는 단지 강제 징용 문제에 대한 불만 표시가 아니다. 한국에 부여해 온 특수 지위를 철회하고 한국을 인도-태평양 전략과 중국 중간에 있는 국가 정도로 대우하겠다는 것이다.
 
개별 부품이 북한으로 갔느니 하는 논란은 그 자체로는 무의미하다. 그런 논란 제기 자체가 일본이 미국에 날리는 시그널이다. 한국을 못 믿겠다는 것이다. ‘당신 소속이 어디냐’고 묻고 있다. 그런 의혹에 한국이 증거를 대며 대북제재를 잘하고 있다고 강조하는 순간, 일본의 덫에 걸려든다.
 
일본은 지금 한·일 관계를 뿌리에서부터 재구성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한·미·일’ 틀에서 한국을 내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한국 역시 한·일관계 뿐 아니라 ‘1965년 체제’의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직면한 도전의 실체다.
 
1965년 체제에서 한국은 일본의 하위 파트너로서 국제무역체제에 편입됐다. 대일 무역에서 계속 적자만 본 것은 그런 선택의 결과였다. 안보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의 안보는 한·미 동맹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한·미 동맹은 한·미·일이라는 중간 구조, 냉전이라는 거대 구조의 하위 요소였다.
 
일본이 한·미·일에서 한국을 배제하려 하면 한국은 미국에 입장 표명을 요구해야 한다. 만약 미국이 일본을 선택한다면, 한국은 지금 미국 없이도 스스로 안보를 지킬 힘이 있다고 말할 준비가 돼 있는가. 그런 결기 없이 이 거대한 싸움에서 승리하기는 어렵다.
 
미국은 향후 점차 동아시아에서 발을 빼며, 자신의 역할을 일본에 위임하려 할 것이다. 이 경우 한국에 선택은 세 가지다. 일본, 중국, 아니면 독자 억지력 확보의 길을 가는 것이다. 이 위기는 언제든 올 것이었다. 구조의 균열이 동아시아의 약한 고리인 한·일 관계에서 먼저 온 것에 불과하다. 다가오는 선택의 무게를 진지하게 느끼고 한국이 나아갈 바를 정확하고 치밀하게 직시해야 한다. 미래는 우리 선택에 달려 있다.
 
장부승 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미 존스홉킨스대 국제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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