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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 논설위원이 간다] 공안 수사로 몸 바쳤다…그 국가와 지금 국가는 다른가

공안검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지난달 실시된 검찰 인사에서 공안검사 출신은 단 한명도 검사장으로 승진하지 못해 ‘공안학살’ 논란이 일었다. [연합뉴스]

지난달 실시된 검찰 인사에서 공안검사 출신은 단 한명도 검사장으로 승진하지 못해 ‘공안학살’ 논란이 일었다. [연합뉴스]

“특수통은 옷 벗으면 돈이라도 많이 벌죠. 우리는 뭘 보고 일했던 걸까요.”

 
최근 검찰에 사표를 낸 ‘전직’ 중견 공안검사는 분노를 억누르며 말했다. 그러다가 ‘돈 얘기’까지 내뱉고 말았다. 그는 “스스로 쪼그라드는 기분이다. 한마디로 자조(自嘲)적인 상황”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공안검사로 몸 바쳐 일한 선·후배의 (좌천성) 인사를 보며 자괴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나라에 헌신하는 소명으로 일했는데…내 소명이 다 했다고 생각하려 한다”고 말했다.

 
공안이 사라지고 있다. ‘사라진다’는 표현이 가능한 건 검찰 직제상의 ‘공안’이라는 간판이 ‘공공수사’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도 꾸준히 논의됐다가 흐지부지됐던 일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지난해 법무부 산하 법무·검찰개혁위원회가 ‘개명’을 권고했다. 관련 규정(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 개정안)은 지난달 입법예고된 뒤 6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1963년 탄생 이후 검찰 엘리트의 산실로, 권위주의 정권의 서슬 퍼런 칼로 날렸던 이름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찬밥’ 된 공안

 
존재감도 미약해진 공안의 변화가 입길에 오른 건 지난달 검찰 인사에 ‘공안 학살’이라는 비판이 일면서다. ‘공안통’ 검사가 줄줄이 ‘물을 먹었다’는 게 검찰 안팎의 평가다. 고검장·검사장 승진 인사(18명 승진)에서 단 한 명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차장·부장 검사 인사에서도 정통 공안의 요직에 비(非) 공안통이 입성했다. 자리를 잃은 중견 공안검사들이 줄줄이 사직 대열에 합류했다.

 
공안은 왜 최악의 위기 상황에 처했을까. 우선은 대공 수사와 선거·노동 사건을 전담하는 공안부 스타일이 진보 정부의 ‘시대정신’과 맞지 않는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남북 화해 모드로 대공 수사는 ‘찬밥’ 신세가 됐고, 지난 정부 때의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수사’ ‘통합진보당 해산’ 등 현 정부와 코드가 맞지 않은 업무를 대부분 공안부가 처리한 것도 요인이다. 그러다 보니 특수·기획·공안이 겨루는 검찰 내부 파워게임에서도 완패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영화 제목처럼 공안의 영광은 허무하게 사라지고 있다. 그 ‘바람’은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공안수사의 공포를 경험한 현 정부 파워엘리트의 ‘포비아’일 수도 있고, 윤석열 검찰총장이 이끄는 특수통의 약진일 수도 있다. 공안검사 스스로는-노예제에 집착한 미국 남부의 대농장주처럼-시대를 읽지 못하고 과거 스타일에 안주한 실수를 인정해야 한다.

  
공안검사의 자조(自嘲)

 
사표를 낸 공안검사, 과거 공안 요직을 지낸 공안통 출신 변호사 등은 익명 인터뷰를 전제로 참담한 심경을 나타냈다. 최근 사표를 낸 중견 공안검사는 “옛날 같았으면 집단항명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무기력하다”고 했다.

 
왜 옷을 벗었나.
“조직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생각과 분위기 때문이다. 계획보다 5년 정도 일찍 떠나게 된 것 같다.”
 
자괴감이 든다고 했는데.
“특수부 검사는 나가면 돈이라도 많이 번다. 공안부는 그런 것과 거리가 멀다. 나라 위해 헌신하는 소명의식으로 일했는데 뭐가 남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너무 보수적인 게 문제였을까.
“나는 평등보다 자유와 인권을 우선으로 생각한다. 그걸 보수라고 한다면 받아들인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흔히 말하는 보수로 구분되는 데엔 동의할 수 없다.”
 
공안은 ‘자폐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남들이 모르는 것을 많이 알게 된다. 분단의 현실, 사회질서의 위기와 관련해서다. 그러다 보니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더 염려하게 되고 소명감도 강해진다.”
 
공공수사부라는 명칭엔 찬성하나.
“기능에 가장 적합한 이름이 공안이어서 계속 썼던 것이지만, 이름이 중요하지는 않다. ‘언어유희’ 아닌가. 형식이 정신까지 바꿀지는 모르겠다.”
 
앞으로의 계획은.
“광야에 홀로 선 느낌이다. ‘변호사로 잘 먹고 잘살아야겠다’는 생각만 든다.”
  
이름 바꿔도 기능 지켜야

 
검찰 내부에서는 10여 년 넘게 공안 기피현상이 진행돼 왔다. 공안통 출신의 변호사는 “의사로 치면 돈 안 되고 위험한 산부인과·외과를 지원하지 않는 현상”이라며 “안타깝다”고 했다.

 
공안검사의 고충은 뭔가.
“불안감이다. 일의 보람이 소멸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인데 위험하고 힘들기만 하다. 국가를 유지하는 ‘기능’을 했는데, 정권이 바뀌면 비판받는다. 이전의 국가와 지금의 국가가 다른가.”
 
검사들이 사직 이후도 고민하나.
“그게 안타깝다는 거다. 공안 수사를 비롯해 여성·아동 성폭력, 다단계 판매 등의 수사도 기능이다. 다단계 수사가 (특수부의) 재벌 수사보다 가치가 적은가. 오늘날의 마약청정국을 만든 과거 마약 전담 검사 중에 출세한 사람이 있는가. 기능에 따른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특수통은 변호사 개업을 해도 대기업이나 유력 인사 등 ‘돈 되는’ 사건을 주로 맡는다. 검찰에 남은 특수부 선·후배도 도움이 된다. 검찰 조직 문화도 그런 ‘돈의 논리’에 영향을 받는 게 현실이다. 국가는 그걸 막아줘야 한다.”
 
권위주의 시대엔 우대받지 않았나.
“지나친 우대도, 홀대도 문제다. 그것이 조직의 기능을 왜곡하면 안 된다.”
 
대검 공안부장 등 정통 공안검사 경력을 바탕으로 지난 4월 재·보궐 선거에서 국회에 입성한 자유한국당 정점식 의원은 “공안검사는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지키는 일에 대한 평가에서 보람을 느끼며 산다. 정부와 장관, 검찰총장의 평가가 보람이다.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데 참담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정 의원은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에서도 공안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공안을 개조하려 했으나 적합한 용어를 찾지 못했다. 두 정부 모두 초기에 노동절 폭력 시위, 화물연대 파업 등 공안 기능이 필요한 사건이 터졌다”고 회고했다. 그는 “후배 공안검사들이 힘들더라도 끝까지 소명의식을 갖고 일해 주길 바랄 뿐”이라면서도 “잘 견뎌줘야 하는데…”라고 한숨지었다.

  
특수부 ‘패거리 문화’가 적폐

 
공안 요직을 지낸 또 다른 변호사는 “과거 공안수사가 문제는 있었지만, 지금은 공안부만의 문제가 아니다”고 했다. 그러면서 “특수부야말로 ‘내로남불’의 전형이다. 사실상 적폐다. 검찰 내부에 위화감을 준다. 자의적 수사, 패거리 문화 등 검찰의 잘못된 관행과 문화에 상당 부분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수부도 설움을 겪었다. 정치검찰의 오명을 쓰고 특수수사의 상징이던 대검 중앙수사부가 폐지(2013년) 된 경험이 있다. 과거의 대검 중수부는 ‘반부패·강력부’로 남았고 직접 수사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위상으로 볼 때 현재 공안부의 박탈감과는 비교되지 않는다는 게 공안검사들의 생각이다.

  
내일의 태양은 뜰까

 
공안의 미래는 있는가. 대검 고위 관계자는 “아직 공개할 단계가 아니지만, 체계적으로 준비 중이다. 조만간 공안의 미래상을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사 불이익 주장에 대해서는 “인사에 문제가 있다는데 동의 못한다. 공안수사 능력을 갖춘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했다”고 했다. 공안부는 공공수사부로 바뀐다. 대검 공공수사부 아래 과거의 공안 1~3과가 각각 ▶공안수사지원과(대공·테러 담당) ▶선거수사지원과 ▶노동수사지원과가 된다.

 
공안 요직을 지낸 변호사는 “앞으로의 공안은 공동체의 미래를 위협하는 것이 무엇인지 장기적으로 준비하는 일을 해야 한다. 미국의 헤이트 크라임(hate crime·증오범죄)이 남의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통합에 약하다. 남녀·세대·계층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의 일본과의 경제전쟁도 주시해야 한다”면서 “공안검사를 비롯한 법조인이 과거만 파헤치다 미래를 생각하지 못하는 한계를 벗어나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퍼블릭 시큐리티(Public Security·공공의 안녕)’를 지키는 검찰의 소명은 어떤 모습으로 바뀔까. 그걸 담당할 검사들에게 ‘내일의 태양이 뜰지’ 지켜볼 일이다.
 
공안의 영욕 56년
공안부는 1963년 서울지검에, 1973년에 대검찰청에 생겼다. 1963년까지는 대검 중앙수사국이 공안 업무를 담당해 이를 공안의 시초로 보기도 한다. 당시 공안 사건 중엔 작곡가 고 윤이상 등을 간첩으로 몬 동백림사건(1967년)처럼 조작으로 판명 난 사건이 적지 않다.

 
공안검사의 전성기였던 전두환·노태우 정부 때는 대검에 4개의 공안과가 생겨 검사의 10% 이상이 공안검사인 적도 있다. 대표 공안검사인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검찰총장이던 1988년 공안회의에서 “좌경 세력은 무좀과 같아서 약을 바르면 일시적으로 치유된 듯하다가도 다시 나타나곤 한다”고 주장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에는 인권을 중시하는 ‘신공안’ 개념이 등장했다. 당시 송두율 교수 구속 문제(2003년)로 정권과 검찰이 정면충돌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공안검사 중용으로 공안이 새로운 전성기를 맞기도 했다.
 
김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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