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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살리려 연료도 버려…기장은 10년전 기억에 다급했다

‘긴급회항’ 차명호 선임기장 인터뷰

 
아시아나항공 A380 항공기. A380은 다른 비행기와 함께 있으면 동체가 고래처럼 커 보인다는 의미에서 '고래 제트기(whale jet)'로 불린다.  [사진 아시아나항공]

아시아나항공 A380 항공기. A380은 다른 비행기와 함께 있으면 동체가 고래처럼 커 보인다는 의미에서 '고래 제트기(whale jet)'로 불린다. [사진 아시아나항공]

 

8세 아이 구한 아시아나의 긴급회항

“응급상황(Medical emergency)! 회항을 요청한다(Request divert)!”
 
지난달 8일 저녁 7시 30분(미국 뉴욕시간 기준) 3만6000피트 상공. 뉴욕에서 인천으로 향하는 아시아나항공 OZ221의 차명호(49) 선임기장이 캐나다 에드먼튼 관제탑에 긴급회항을 요청했다. 이 비행기에 타고 있던 8살 어린이 최 모 양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다.
 
차 선임기장은 총비행경력 23년의 베테랑 조종사다. 1만500시간의 비행 경험이 몸에 밴만큼 이날 비행도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시작했다. 장거리 비행은 통상 2명의 기장과 2명의 부기장이 번갈아가면서 운항한다. 다른 기장이 항공기를 이륙하는 동안 차 선임기장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교대시간이 되어서 항공기 조종석(cockpit)에 나왔더니 승무원이 이륙 후 지금까지 상황을 전달했다. 탑승한 어린이가 약 1시간30분 전부터 고열과 복통에 시달렸다는 내용이었다. 아들 하나와 두 딸을 키우는 아빠로서 가슴이 아팠다. 마음속으로 아이가 무사히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기를 기도했다.
 
본인의 세 자녀와 함께 포즈를 취한 차명호 아시아나항공 선임기장(왼쪽에서 세 번째). 그는 비행기에 탑승한 어린이가 위급하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을때 본인의 자녀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사진 차명호 선임기장]

본인의 세 자녀와 함께 포즈를 취한 차명호 아시아나항공 선임기장(왼쪽에서 세 번째). 그는 비행기에 탑승한 어린이가 위급하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을때 본인의 자녀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사진 차명호 선임기장]

 
승무원이 ‘의료지식을 보유한 승객을 찾는다’는 내용의 기내방송을 실시했다(doctor paging). 불행 중 다행으로 승객 한 명이 의료전문지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 승객은 승무원과 함께 어린이의 상태를 살피고 간단한 응급처치도 진행했다.
 
1시간 정도 지났을까. 의료지식을 보유한 승객은 ‘감염에 의한 발열이나 경련일 가능성이 있다’며 ‘최대한 이른 시간에 진료·약물치료가 필요하다’는 소견을 승무원에게 전달했다. 승무원은 즉시 의사의 판단을 기장에게 전달했다. 기장은 통상 조종석에서 이탈할 수 없다.  
 

기름 2만 파운드 공중에 뿌려

 
아시아나항공 A380 항공기. [사진 아시아나항공]

아시아나항공 A380 항공기. [사진 아시아나항공]

 
눈앞이 아찔해지면서 10여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에는 부기장 자격으로 일본 나리타공항에서 미국 로스앤젤레스(LA)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를 조종했다. 이 비행기에는 당뇨·고혈압이 있는 할아버지 한 분이 타고 있었는데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륙 30분만에 벌어진 일이라서 즉시 나리타공항으로 회항했지만, 병원으로 이송하는 과정에서 유명을 달리했다는 비보를 전해 들었다.
 
가슴 아픈 사건이 또다시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이미 비행기가 북극항로(polar route)에 접어들었다는 점이었다. 북극의 극지방 상공을 비행하는 이 항로 인근에는 공항이 많지 않다.  
 
게다가 그가 몰고 있는 비행기는 유럽연합(EU)의 에어버스사가 제작한 2층 구조의 초대형 항공기(A380)였다. 동체가 워낙 거대해서 착륙이 가능한 공항이 많지 않았다.
 
일단 기상상황을 체크하고, 북극항로 북위 74도에서 가장 가까우면서 A380 항공기가 착륙할 수 있는 공항을 찾았다. 다행히 앵커리지공항에서 착륙할 수 있다는 회신을 받았다.  
 
지난 8일 아시아나항공 OZ221에 탑승했던 조한주 아시아나항공 수석사무장(하단 한가운데 남성). 그는 의료지식을 가진 승객의 의견을 기장에게 전달하고 응급치료를 실시했다. [사진 아시아나항공]

지난 8일 아시아나항공 OZ221에 탑승했던 조한주 아시아나항공 수석사무장(하단 한가운데 남성). 그는 의료지식을 가진 승객의 의견을 기장에게 전달하고 응급치료를 실시했다. [사진 아시아나항공]

 
위성전화를 통해 한국 아시아나 본사에 응급상황 정보를 공유하고 앵커리지공항에 회항을 요청했다. 관제기관은 최단거리 비행항로를 알려줬다. 앵커리지공항은 북위 60도가량에 있었다. 비행기 방향을 좌측으로 꺾고 약 1200마일을 이동해야 했다.
 
다음에 할 일은 연료를 버리는 작업(fuel dumping)이었다. 항공기는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제동거리가 길어진다. 문제는 제동할 때 브레이크에서 발생하는 열이다. 최대이륙중량이 무려 124만파운드나 되는 거대한 동체가 안전하게 제동하려면 최대한 무게를 줄여야 했다. 착륙할 때 비행기의 브레이크 온도는 최대 600도 정도인데, 동체가 너무 무거워서 900도 이상으로 온도가 상승하면 바퀴에서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 만약 이 화재가 기체로 옮겨붙으면 심각한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뉴욕에서 이륙할 때 40만파운드 가량의 항공유를 싣고 출발했는데, 북극항로로 접어들면서 13만파운드 정도의 기름을 소비한 상황이었다. 앵커리지공항까지 이동거리와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는 항공기의 총무게를 고려하면 약 2만파운드 정도의 기름을 버려야했다. 항공유의 가격으로 따지면 1700만원 어치에 해당하는 기름이다.
 
차명호 선임기장은 “고도 3만6000피트 상공에서 마하 0.84로 비행하는 상황에서 항공유를 버렸다”며 “관제기관이 다른 비행기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상황에서, 고도 6000피트 이상에서 항공유를 버리면 공기중에서 휘발하기 때문에 지상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지연도착했는데…470명 일제히 박수

 
도색하는 아시아나항공 A380 항공기. [사진 아시아나항공]

도색하는 아시아나항공 A380 항공기. [사진 아시아나항공]

 
1200마일을 평균시속 800km로 이동해서 앵커리지공항 상공에 도착했다. 다행히 당시 앵커리지공항은 교통량이 많지 않았다. 관제기관도 비행기가 활주로를 즉시 사용할 수 있는 우선권을 부여했다. 안전하게 비행기가 활주로에 착륙했다. 착륙 당시 동체 총무게는 96만파운드였다.
 
이미 교신한대로 비행기가 도착한 게이트 앞에는 아시아나항공 앵커리지 지점 직원이 대기 중이었다. 이들은 의료진과 앰뷸런스에 무사히 최 양을 인계했다. 최 양은 앰뷸런스에서 응급처치를 받으면서 최 양의 어머니와 함께 즉시 병원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긴급회항으로 건강을 되찾은 8살 어린이 최 모 양이 아시아나항공에 감사인사를 전하면서 직접 그린 비행기 그림. [사진 아시아나항공]

긴급회항으로 건강을 되찾은 8살 어린이 최 모 양이 아시아나항공에 감사인사를 전하면서 직접 그린 비행기 그림. [사진 아시아나항공]

 
차명호 선임기장은 항공기에 다시 기름을 채우고 앵커리지공항에서 이륙했다. 예정보다 4시간 정도 늦게 인천공항에 도착했지만 470여명의 승객 중 누구도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차 기장이 항공기 지연도착을 사과하는 방송을 하자 대부분의 승객은 손뼉 치며 응원했다.  
 
4명의 기장·부기장과 25명의 승무원, 그리고 승객 470명의 도움으로 최 양은 무사히 위기를 넘기고 건강을 되찾았다고 한다. 최 양의 아버지는 “아시아나항공의 도움으로 아이가 웃는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게 됐다”며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물론 모든 승객에게 깊이 감사한다”며 최 양이 직접 그린 그림을 전달했다.  
 
차 선임기장은 “뉴욕→인천 구간은 14시간이 걸리는 장거리 비행인데, 최 양이 건강하게 그림을 그렸다는 소식을 듣고 힘든 기억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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