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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의 직격 인터뷰] "깔보지도 겁내지도 않으면서 공부해야 일본 넘습니다"

지일·극일 외치는 ‘기부왕’ 이종환

이종환 삼영화학그룹 명예회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혜화동의 ‘관정 이정환 교육재단’ 사무실에서 ‘일본을 알고 이기는 법’에 대해 말하고 있다. 1923년생인 그는 4년 뒤에 100세가 된다. 우상조 기자

이종환 삼영화학그룹 명예회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혜화동의 ‘관정 이정환 교육재단’ 사무실에서 ‘일본을 알고 이기는 법’에 대해 말하고 있다. 1923년생인 그는 4년 뒤에 100세가 된다. 우상조 기자

일본을 능가하는 나라를 만들자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행동으로 그 애국심을 보여주는 이는 드물다. 이종환(96) 삼영화학그룹 명예회장. 그는 일본을 뛰어넘는 세계 초일류 국가를 이루자고 외치며 개인 재산의 거의 전부를 기부해 장학재단을 만들었고, 그 재단은 아시아 최대 규모(기금 약 1조원)로 컸다. 그가 2000년에 설립한 ‘관정(冠廷) 이종환 교육재단’은 지금까지 약 1만 명에게 2300억원의 장학금을 수여했다. 주로 기초 과학과 산업 기술을 공부하는 학생이 수혜자다.
 

일류 국가 염원해 장학재단 설립
수천억원 기부, 재단 기금 1조원
서울대 일본연구소 지원 끊기자
최근 연구비 2억5000만원 쾌척

이 명예회장은 지난달 이 재단이 서울대 일본연구소에 1년 치 연구 지원금으로 2억5000만원을 보내도록 했다. 이 연구소에 대한 정부 지원금이 1년 전에 중단됐다는 중앙일보 보도(7월 15일 24면, ‘말로는 지일·극일 … 서울대 일본연구소도 지원 끊겼다’)가 결심의 계기가 됐다. 이 명예회장은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강제 징집을 당했고, 태평양 전쟁에서 생사의 고비를 넘었다. 기업을 일구고 제품을 개발할 때는 일본 업체와 경쟁했다. 그가 ‘캐퍼시터 필름’이라는 첨단 소재를 개발하지 않았다면 이것 역시 일본의 수출 규제 품목에 올랐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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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여러 차례 “일본을 잘 알아야 일본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연구소 지원도 그런 맥락에서 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100년 가까이 산, 한국 현대사의 생생한 증언자이기도 한 그를 지난달 30일에 만났다.
 
올해 한국 나이로 아흔일곱인데, 여전히 정정하십니다.
“의사 말로는 앞으로 10년은 더 살 것이라고 합디다. 오래 살아도 건강하게 살아야 하고, 어떤 보람 있는 일을 하고 가느냐가 중요하겠지요.”
 
관정 재단이 서울대 일본연구소에 연구비로 2억5000만원을 지원했습니다. 어떤 뜻이 담겨 있는 것인가요?
“상대를 이기려면 지피지기해야 합니다. 일본을 뛰어넘으려면 일본을 제대로 알아야죠. 일본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역사적·도덕적 우월감에서 일본을 깔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일본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을 이기려면 일본의 과거·현재·미래를 철저히 연구해서 일본보다 한 수 앞서가야 합니다. 서울대 일본연구소가 그런 역할을 해야 하는데, 정부 지원이 끊겼다기에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도운 것입니다.”
 
서울대 일본연구소에 무엇을 바라십니까?
“당면한 문제에 대한 대책도 궁리해야 하지만 일본 문제를 극복할 중·장기적 전략을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연구에 집중하기를 기대합니다.”
 
7월 15일 자 중앙일보 24면.

7월 15일 자 중앙일보 24면.

이번 지원은 1년 치 연구비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계속 지원할 의향이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계속 돕는 것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단 1년간 연구 활동을 잘 지켜보겠습니다.”
 
그동안 산업 현장에서 일본 기술력과의 싸움도 많이 하셨을 텐데, 일본을 뛰어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일본인은 남의 것을 보고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보다 나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데 소질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보면 한국인이 일본인보다 뛰어납니다. 그런데 일본인은 무엇인가 하나에 천착해 연구하고 그 연구를 산업 생산에 활용하는 것을 잘합니다. 그것이 집단적 힘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본의 동향을 잘 파악해야 산업에서도 뒤처지지 않습니다.”
 
삼영화학도 산업 소재들을 만들어 왔습니다. 일본 업체와 경쟁한 적도 있지 않으셨습니까?
“삼영화학은 석유에서 플라스틱 바가지 등의 생활용품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캐퍼시터 필름(Capacitor Film·전자 제품의 핵심 소재로 쓰이는 축전 및 절연용 필름)이라는 극초박막 필름을 만들어 냈습니다. 일본 회사가 그걸 만들 움직임이 있다는 것을 알고 미국의 초기 기술을 재빨리 도입해서 일본 업체와 대등하게 개발을 해냈습니다. 삼영화학이 일본의 도레이와 독일의 트라우판과 함께 세계 3대 메이커입니다. 일본이 소재 수출 규제에 돌입했지만 캐퍼시터 필름 같은 것은 해 봐야 소용이 없어요. 우리가 이미 생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게 더 많아져야 합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강제 징병도 겪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장학 사업도 그런 경험과 관계가 있는 것인가요?
“1942년에 일본 메이지(明治)대 상경과로 유학을 갔습니다. 당시 어린 마음에도 일본 사람을 능가하려면 일본 사람보다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다가 태평양 전쟁 말기인 44년에 강제 징집이 됐습니다. 간토(關東)군에 소속돼 소련군과 대치한 만주로 보내졌습니다. 그곳에서 대포를 끌다가 45년 8월에 일본 오키나와로 부대가 이동하기 위해 한반도로 내려왔는데, 그때 해방을 맞이했습니다. 오키나와로 갔다면 목숨을 지키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것이지요. 그 뒤 나라가 잘 살아야 국민이 고생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내내 하게 됐습니다. 나라가 잘 살려면 똑똑한 청년들이 돈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요즘 나라 상황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요즘의 한반도 정세를 구한말 같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근 100년을 산 사람입니다. 우리 국력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습니다. 이제 누구든 우리에게 함부로 못 합니다. 지금 주변국들이 으르렁거리는 이유는 한반도 문제의 해결 과정에서 서로 무시당하거나 배제당하지 않고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데 있다고 봅니다. 우리의 지정학적 위치가 그만큼 중요합니다. 상황에 끌려다니지 않고 잘 대처하면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한·일 갈등은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
“양국 모두 하루빨리 상호의 국익을 위한 실용주의로 돌아가야 합니다. 상대가 먼저 물러서기를 바라며 마주 달리는 ‘치킨 게임’을 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의 싸움은 둘 다 나빠지는 마이너스 섬 게임입니다. 일본이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앞으로 세계사를 이끌어 나가는 나라 중 하나가 되겠다는 꿈은 접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도 언젠가 일본을 앞서게 되는 날, 일본 스스로가 먼저 와서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긴 역사적 안목을 가져야 합니다.”
 
관정 재단은 주로 이공계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해 왔습니다. 장학금 수여자 중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길 기대한다는 말을 하신 적도 있습니다. 재단이 설립 뒤 19년이 흘렀지만 아직 그 희망이 실현되지는 못했습니다. 답답하십니까?
“내 생전에 노벨상 수상자가 한 사람이라도 나왔으면 하는데, 10년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장학금을 받은 해외 유명 대학의 박사학위 취득자가 10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해 이제 600명 정도가 됩니다. 노벨 과학상 수상자는 오랜 연구 결과 또는 평생 연구 결과로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늦어지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일본에서는 지금까지 20여 명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나왔는데 우린 아직 한 사람도 없어서 안타깝습니다. 우리가 계속 분발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5년 전에도 했던 질문입니다. 거의 모든 재산을 내놓으신 것에 후회 없으십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무한한 기쁨과 행복을 느낍니다. 저는 재산의 약 97%를 내놓았습니다. 알프레드 노벨은 94%를 기부하고 기뻐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내가 더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재산 기부와 관련해 법률적 문제로 소송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몇 년 전에 내가 가진 주식을 다 팔아 그 돈을 재단에 넘겼습니다. 우리나라 법이 주식을 그대로 기부하기 어렵게 돼 있기 때문에 그렇게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양도세 문제가 있다고 국세청에서 나를 고발했습니다. 재판 중이어서 더 자세히 설명하기 곤란한 부분이 있습니다. 나는 그 돈을 단 한 푼도 만져본 적이 없습니다. 내가 돈 욕심 때문에 세금을 일부러 피했겠습니까? 현재의 기부 관련 법과 제도가 잘 정비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소송에 임하고 있습니다. 잘 해결되리라고 믿습니다.”
 
세월이 조금 흐른 뒤에 다시 한번 인터뷰할 기회가 생기면 좋겠습니다. 꼭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습니까?
“요즘 우리 청년들 어려 면에서 고생하는 것 압니다. 좋은 일자리 더 많이 만들지 못해 어른으로서 미안합니다. 그런데, 부모 세대가 적어도 먹고 살게는 나라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합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포기하지 말고 힘껏 도전하면 어느 날 꽉 막힌 문이 열릴 것입니다. 100년 가까이 살아 보니 세상이 그렇습디다.”
 
◆관정(冠廷) 이종환
1923년 경남 의령에서 부농의 아들로 출생. 마산중(중·고 통합과정)을 졸업하고 일본 메이지(明治)대로 유학. 1944년 학병으로 징병. 1959년 플라스틱 바가지 등을 만드는 삼영화학공업사 창업. 2000년에 개인 재산으로 ‘관정 이종환 교육재단’ 설립. 2009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훈. 현 삼영화학그룹 명예회장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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