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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가해자의 적반하장' 발언···아베는 이 말에 뒤집어졌다"

‘아름다운 나라, 일본’
 

"수출규제와 화이트국가 배제 원점은 위안부"
과거사 프레임 결별 통한 '강한 일본'의 꿈
위안부 합의 동요와 징용 배상 문제로 흔들
수출규제로 급소치며 "과거사 논쟁 끝내자"
'아메리카 퍼스트',시진핑의 중국몽에 이어
아베의 강한 일본까지 한반도에서 각축
"韓,공세적 그림 없으면 수비만 하게 될 것"

2006년 전후 최연소(52세)총리에 등극한 아베 신조(安倍晋三)의 꿈이었다. 
 
2007년 9월 12일 긴급 기자회견에서 사임을 발표한 직후의 아베 신조 일본 총리[중앙포토]

2007년 9월 12일 긴급 기자회견에서 사임을 발표한 직후의 아베 신조 일본 총리[중앙포토]

그는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전 세계로부터 신뢰를 받고, 존경을 받고, 우리의 아이들이 일본에서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아름다운 나라, 일본을 만들어 가겠다"고 다짐했다.
 
메이지 유신의 주축이던 조슈번(長州藩·지금의 야마구치현)출신인 아베에게 ‘아름다운 나라’는 ‘강한 일본, 그레이트(Great) 닛폰’이다.  
 
그러나 제1차 아베 내각은 각종 불상사가 끊이지 않으며 1년 만에 단명했다. 아베의 야심 찬 꿈도 함께 산산조각이 났다. 
 
그는 극적으로 2012년 말 정권을 되찾은 뒤 다시 칼을 갈았다. 7년 가까운 장기 집권을 이어가며, 아베 독주의 시대를 열었다. 
 
서두르다 화를 불렀던 1차 집권 때의 경험을 살려 "한 걸음 앞서가려 하지 말고 국민보다 반걸음만 앞서가자"(아베 총리 본인)는 자세로 속도 조절을 했다. 군사 대국의 꿈도, 개헌의 야망도 조금씩 조금씩 전진시켰다.  
 
문재인 대통령이 6월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환영식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와 8초간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6월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환영식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와 8초간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한국을 패닉으로 몰고 있는 수출 규제 강화도 아베의 야망인 ‘아름답고 강한 일본’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분석이 일본 내에서 나오고 있다.  모든 것이 그의 큰 그림과 관련돼 있다는 것이다. 
 
2015년 12월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이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 방안과 관련한 회담을 시작하고 있다. [중앙포토]

2015년 12월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이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 방안과 관련한 회담을 시작하고 있다. [중앙포토]

자민당 내 사정에 밝은 도쿄의 한인 단체 관계자는 "이번 사태를 부른 아베의 원점은 2015년 체결된 한·일 위안부 합의가 흔들리면서부터"라며 "자신의 지지기반인 '우익'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정부 예산 10억엔을 지출하면서까지 만들어낸 합의가 무너지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요미우리 신문도 3일 자에서 양국 관계 악화의 계기를 "한국이 위안부 합의를 휴짓조각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이라고 썼다. 
 
신문은 "합의 당시 자민당 보수파들은 ‘어차피 또 사과해도 (한국이) 또 뒤집을 것’이라고 반대했지만, 아베 총리는 미래지향적 관계구축을 위해 반대론을 물리쳤다"며 "그래서 아베 총리의 주변에는 한국에 대한 불신감이 강하다"고 했다. 
2012년 11월 당시 야당이던 자민당의 아베 신조 총재(왼쪽)가 민주당의 노다 요시히코(오른쪽에서 세번째) 총리에게 “가까운 시일에 중의원을 해산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라고 추궁하고 있다. 노다 총리가 “16일 해산하겠다’고 밝히면서 총선이 치러졌고, 아베는 압승을 거두고 권좌에 복귀했다. [지지통신]

2012년 11월 당시 야당이던 자민당의 아베 신조 총재(왼쪽)가 민주당의 노다 요시히코(오른쪽에서 세번째) 총리에게 “가까운 시일에 중의원을 해산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라고 추궁하고 있다. 노다 총리가 “16일 해산하겠다’고 밝히면서 총선이 치러졌고, 아베는 압승을 거두고 권좌에 복귀했다. [지지통신]

 
뒤돌아보면 위안부 합의가 탄생한 2015년은 아베 총리가 ‘강한 일본’이란 큰 그림을 위한 기초작업에 몰두했던 해였다.
 
패전 70주년이던 그 해에 그는 '아베 담화'를 발표했다. 전후 70년 동안 일본인들이 짊어졌던 ‘전쟁 책임의 부채의식’에 종지부를 찍고자 했다. 
 
"전쟁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우리 아이들과 손자, 그리고 그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계속 사죄의 숙명을 짊어지게 해선 안 된다"는 담화 속 한 문장이 그의 핵심 메시지였다. 그해 12월 한국과 체결한 위안부 합의도 그 연장 선상이었다.  
 
‘최종적ㆍ불가역적’으로 과거사 프레임에 종언을 찍어야 세계의 리더로서 일본을 재부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일본 유력 신문의 간부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위안부 합의가 사실상 공중에 떠버렸고, 여기에 징용 문제까지 겹치면서 아베의 구상이 엉망이 돼버렸다"고 했다.  
 
대법원의 징용 판결 뒤 8개월 만에 한국의 급소를 내려찍은 수출규제 강화와 화이트국가 배제 조치엔 '이번 만큼은 과거사의 걸림돌을 확실히 치우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한국으로선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과거사 논쟁에 영원히 종지부를 찍겠다는 아베 총리와 결투를 벌이게 됐다.   
 
2일 일본의 각의에서 '화이트국가 배제' 시행령이 처리된 뒤 문재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가해자인 일본이 적반하장"이라고 했다. 
 
이날 일본 정부는 공식 반응을 내지 않았지만, 총리관저와 외무성에선 특히 '가해자'표현에 불쾌감을 터뜨렸다고 한다.  
 
도쿄의 일본 소식통은 "이번 조치의 핵심은 피해자-가해자 틀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인데, 문 대통령이 그 의미를 아직 잘 모르는 것 같다는 게 일본 정부 내 기류"라고 했다.
지난달 21일 참의원 선거가 끝난 뒤 아베 총리가 당선자의 이름 옆에 장미꽃을 붙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21일 참의원 선거가 끝난 뒤 아베 총리가 당선자의 이름 옆에 장미꽃을 붙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아베 정권은 지난달 21일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인 참의원 선거의 고비를 잘 넘겼다. 개헌 세력이 개헌안 국회 통과를 위한 3분의 2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지만, 아베 총리는 야당을 끌어들여서라도 개헌을 시도하겠다는 입장이다. 
 
국내적으로는 ‘개헌’,그리고 외교적으로는 ‘자유롭고 열린 인도ㆍ태평양’ 구상이 향후 아베 정권의 핵심 키워드다. 
 
정리하자면 ^과거사 논란과 전범국의 멍에를 벗고 ^자위대의 헌법 명문화를 통해 정상국가로 가는 길을 열고 ^미국의 압박을 핑계로 동북아지역 내 군사적 역할 공간과 존재감을 키우고 ^중국에 맞설 수 있는 인도ㆍ태평양 해양 라인의 맹주로 다시 태어나는 게 아베 총리가 그리는 '4대 그랜드 디자인'이다. 
 
아베 총리는 올 11월 일본 헌정사상 최장 총리 자리에 올라선다. 그런 그가 2021년 9월까지 남은 임기 2년여 동안, 또는 임기를 연장해서라도 달성하고픈 큰 그림의 도입부에 한국과의 역사 전면전이 자리한 모양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베 일본 총리(왼쪽부터). [로이터=뉴스1]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베 일본 총리(왼쪽부터). [로이터=뉴스1]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중국몽(위대한 중화 민족의 부흥)’에 이어 일본 아베 총리의 ‘강한 일본’까지 가세하며 한반도는 강대국 담론들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최근 도쿄를 방문했던 전직 외교부 고위 관리는 한국 외교의 현실에 대해 “주변 강대국들과는 달리 한국엔 국가 운영과 외교의 큰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며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 중에 아마도 그런 나라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외교의 원칙과 큰 방향이 있어야 공세적인 외교를 펼 수 있는데, 그런 담론이 없으니 동네축구처럼 사안에 따라 몰려다니며, 수세적으로 공 지키기와 걷어내기에만 몰두하게 된다"고 말했다. 
 
일본 내 국제정치학 권위자인 나카니시 히로시(中西寬)교토대 교수가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한국엔 외교의 기본이 대미, 대중, 대일외교일텐데, 정권과 사안에 따라 극단적으로 바뀌는 게 문제”라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동북아시아 전체를 조망하는 시각과 우리만의 큰 그림이 없기 때문에 중국(사드문제), 미국(동맹유지와 무역), 일본(역사·경제 갈등)과의 외교에서 사안이 생길 때마다 수세적·사후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들이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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