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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게 살아야 해"라며 웃던 환자, 다음 날 출근해보니…

기자
김명희 사진 김명희

[더,오래] 김명희의 내가 본 희망과 절망(17)

 
나는 김명희 작가의 딸이다. 난 간호대학 4년을 마치고 올봄 대학병원 암 병동 간호사로 입사했다. 간호사라는 직업을 나의 인생 진로로 정한 후 실습 때나 현재의 병원에서 라운딩 때 만난 몇 분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학교 재학 중 실습 나간 암 병동에서 만난 내 아버지 또래의 남자 환자분은 무척이나 얼굴이 밝고 긍정적인 분이셨다. 그분은 암 말기 환자였는데, 자주 엄습하는 통증을 견디면서도 항상 영어단어를 외우고 병상 머리맡엔 희망이 담긴 문구를 구호처럼 걸어두곤 하셨다.
 
실습 나간 딸자식 같은 내게 소소한 간식들을 챙겨주시면서 ‘인생이라는 시간은 절대 영원하지 않으니 꼭 매 순간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날 그렇게 씩씩하고 밝은 얼굴을 뵙고 다음 날 출근해보니 그분이 보이지 않았다. 병실에 가보니 누워계셨던 베드가 텅 비어있었다.
 
출근하니 전날까지도 밝은 얼굴로 맞이해주시던 환자분의 베드가 텅 비어있었다. [중앙포토]

출근하니 전날까지도 밝은 얼굴로 맞이해주시던 환자분의 베드가 텅 비어있었다. [중앙포토]

 
선배님께 그 환자분 어디 가셨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간밤에 하늘나라로 가셨다고 했다. 어제 본 그 모습이 마지막이었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대화라도 들어 드릴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때 아직 세상을 다 모르는 어린 나이였지만, 삶과 죽음이란 것이 결코 우리 문밖에 있거나 남의 이야기가 아니구나 하는 충격을 받았었다.
 
또 어느 날은 구십이 넘은 할머니 환자분이 입원하셨다. 비록 환자복을 입고 누워 계셨지만 웃는 모습이 아기처럼 순수하고 다소곳한 분이셨다. 그분은 간밤에 아무리 통증에 시달렸어도 간호사들에게 ‘고생한다’ ‘수고가 많다’ ‘선생님들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하루하루 버틴다’라면서 칭찬과 격려를 해주곤 하셨다.
 
물론 환자분들 중에는 밀려드는 극한의 고통으로, 지친 간호사를 배려할 여력이 없는 분들이 더 많이 있다. 그러다 보면 우리 간호사들에게 참지 못할 욕을 하기도 하고 뭔가를 집어던지기도 한다. 송곳처럼 파고드는 고통 속에서 남을 배려하기가 어디 쉬울까. 아픈 분들이니 다 이해하고 수없이 다가가 등을 어루만져 주고 그분들의 고충을 덜어주려 노력한다. 마라톤 뛰듯 병원 복도를 달리다 보면 어느새 몸은 녹초가 되고 발이 퉁퉁 부어 퇴근 땐 신발을 신기 힘들 정도다.
 
병원에 입원하면 환자들은 여간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같은 병실에 입원한 환자들이 처음에는 서먹서먹하다가도 얼마 안 가서 다 친구가 되고 이웃이 되는 이유다. 그러다 보면 집안 호구조사 하듯 서로 묻고 이야기하며 자식 자랑도 한다. 개중에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보호자도 있고, 경제력이 넉넉해 병원비나 고가의 검사비 걱정을 하지 않는 보호자도 있다. 형편이 어려운 보호자나 자녀들은 검사 하나하나에도 비용 걱정부터 앞선다.
 
입원이 길어지면서 지쳐가는 모습을 가까이서 볼 때마다 나도 참 가슴 아플 때가 많다. 경제적 여력이 있는 분들은 모든 검사를 자처하며 적극적이다. 이렇게 양극적인 모습들을 보며 근무하는 나는 일찍부터 참 다양한 우리 이웃들의 모습을 접했다. 어떤 경우는 보호자들이 거의 방문하지 못하고 환자를 돌보지 못하는 분들도 있다. 또 어떤 경우는 비록 경제적 형편은 넉넉지 못해도 매일  찾아와 자신의 아픈 부모를 살피고 돌아가는 자식들도 있다.
 
매일 근무를 하다 보면, 간호사들도 힘든 일이 참 많다. 그중 누군가의 죽음을 지켜보더라도 감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가장 힘들다. [중앙포토]

매일 근무를 하다 보면, 간호사들도 힘든 일이 참 많다. 그중 누군가의 죽음을 지켜보더라도 감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가장 힘들다. [중앙포토]

 
아픈 환자들 곁에서 매일 근무를 하다 보면, 우리 간호사들도 참 힘들 때가 많다. 환자들의 모든 것을 체크하고 관찰하고 처방해야 할 우리 업무도 물론 힘들다. 그러나 그중 가장 힘든 경우는, 매일 사랑하는 어느 가족의 죽음을 밥 먹듯 지켜보고도 밀려드는 슬픔과 허망함에 빠져도 안 되는 점이다.
 
자칫 감정이 흔들리면 의료사고로 직결되거나 어떤 환자의 점검을 누락시키는 실수가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병실에서는 수시로 방금 저세상으로 떠난 가족을 잃은 슬픔으로 통곡 소리가 들려와도 우리는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치밀하고 냉철하고 속도감 있게 처리해야 환자들에게 실수가 생기지 않는다.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해야 응급실에 대기 중인 다급한 환자들이 입원해 치료받고 회복되기에 당연한 수순이지만 어떤 때는 간호사인 우리도 종종 우울증과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함께 웃고 대화하고 창밖을 보던 환자분이 갑자기 위독해지다가 끝내 흰 천에 덮여 영안실로 내려갈 준비를 할 때 우리는 그다음 업무를 위해 무수한 업무를 처리해야 하고 그러다 오 분 십 분을 쪼개 식사하고 달려와야 한다는 현실에서 참 ‘인간의 삶과 죽음이란 무엇일까.
 
‘삶과 죽음 앞에서 우리가 이렇게 무감각해져도 괜찮은 것인가….’ 퇴근하는 길에 오래도록 내게 질문하게 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내가 몸담은 이 속에서 누군가는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회복되고 퇴원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을.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이곳에서 최대한 환자의 안전을 위해 밤낮 등불을 밝히는 것이 내 임무임을 안다. 오늘 건강한 당신의 삶을 축복하며 이 글을 마친다.
 
김명희 시인·소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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