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단추는 공식 양자 협의 요청서 발송이다. 사실상 WTO 제소 첫 단계다. 요청서 자체가 제소장 역할을 하게 된다. 산업부 관계자는 “소장을 중간에 수정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일본의 법 위반 증거를 최대한 확보한 이후 제소를 해야 할 것”이라며 "시기는 전략적으로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WTO 분쟁해결기구(DSB) 제소 절차.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WTO 분쟁해결절차에 들어가면 한일 양국은 길게는 수년이 걸리는 최종 결정까지 치열한 ‘법리 다툼’을 벌일 것으로 예상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일본의 대 한국 수출규제 강화에 대한 국제통상법적 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양측이 날 선 공방을 벌일 부분은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 조문 가운데 5개 조항이다. 이 가운데 3개 조항은 한국의 ‘창’으로, 2개 조항은 일본의 ‘방패’로 쓰일 논거가 될 전망이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일본은 ‘수출 규제가 아닌 개별 수출허가제로 전환한 것’이라고 반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맞받아치기 위해서는 일본의 규제로 실제 우리의 수입 물량이 감소했고, 이것이 일본의 조치에 의한 것이라는 인과관계를 입증할 필요가 있다.
1조1항도 한국이 활용할 수 있다.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대우를 받지 않는 최혜국대우를 규정한 조항이다. 일본은 특혜를 부여하다 보통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예외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 한 특정 국가에 계속 특혜를 주다가 취소하는 것도 1조1항에 위배된다.
WTO 회원국 간에 ‘일관적이고 공평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통상 관련 제도ㆍ법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10조3항도 한국에 유리하다. 일본이 한국만을 ‘타깃’으로 제재를 가했기에 이 조항을 어긴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 일본은 21조로 한국에 맞설 것으로 보인다. 21조는 WTO 회원국이 자신의 필수적 안보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GATT 상의 의무를 위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그간 WTO 분쟁에서 다른 조항을 무력화시키는 최상급 ‘카드’였다. 그래서 미국 정부가 보호무역주의를 지키기 위해 이를 자주 활용해왔다.
하지만 일본은 아직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는 것을 증명할 어떤 구체적 증거도 내세우지 못했다. 이 때문에 되려 일본이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천기 KIEP 부연구위원은 “우리 정부는 이번 수출허가 강화가 사실상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조치로서 또는 외교ㆍ정치적 마찰을 이유로 부과됐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해야 한다”며 “아베 총리가 선거 유세 과정에서 일본의 공식입장인 ‘국가안보 위협’과는 맞지 않는 언급이 있었는데, WTO 제소 시 이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했다.
일본의 또 다른 방패막이는 전략물자 수출통제 실효성 확보를 위한 예외조치를 인정한 20조다. 그러나 조치를 취하기 전에 이해 당사국 간 합의 도출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단서가 달려 있다는 점에서 일본이 이를 입증할 책임이 크다.
세종=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