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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리의 시선] 여당·청와대 눈엔 지금이 일제 시대인가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오늘(2일) 일본의 화이트 국가 리스트 배제 여부 결정을 앞두고 여당이 과격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표창원 의원에 이어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1일 “(일본이 화이트리스트를 배제하면) 제2 독립운동인 경제·기술 독립운동이 불처럼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고순도 불산 등 3대 핵심 소재 수출 규제로 우리 산업의 일본 의존도가 드러나긴 했지만 식민 치하도 아닌 상황에서 ‘제2 독립운동’은 과격한 선동 언어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도 넘은 “제2 독립운동” 발언
당·청은 “대통령 사랑해” 농담
반일몰이 말고 어떤 전략 있나

이런 여당의 극렬한 반응 와중에도 눈에 띈 사진도 있다. 북한이 엿새 만에 다시 탄도미사일 두 발을 쏘고, 화이트 리스트 배제 결정까지 이틀을 앞둔 지난달 31일 주요 일간지 1면에 등장한 문재인 대통령의 경남 저도 방문(30일) 사진 얘기다. 청와대는 불과 사흘 전 "일본 이슈로 문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여름휴가를 취소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문 대통령이 그 직전 주말 제주도를 ‘개인일정으로’ 비공개 방문한 사진이 SNS를 통해 퍼진 데 이어, 휴가를 취소한 상황에서도 일반 개방에 맞춰 당초 휴가로 갈 예정이던 저도를 최측근인 김경수 경남도지사와 함께 찾았다. 연이틀 신문을 장식한 문 대통령의 휴양지 사진엔 여당 의원들의 과격함과 달리 위기감이 묻어나지 않는다.
 
미·중 무역분쟁에다 일본 도발까지 겹쳐 IT 반도체 업종은 부진에 빠졌고, 러시아 군용기가 우리 영공을 침범해 한·일·중·러 전투기 수십 대가 독도 하늘에 엉키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져 구한말의 악몽을 떠올리는 사람마저 적지 않다. 이 와중에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개도국 혜택 박탈”을 압박해 당장 우리 농가의 보호막이 깨질 위기에 맞닥뜨렸다. 이 정부 들어 자영업자는 무너진 지 오래고, 실질 청년 실업은 연일 최악을 갱신하는 데다 주력 제조업 등 10개 업종 일자리는 올 하반기에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줄어들 것(한국고용정보원)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등 고용 참사도 이어지고 있다. 차분하고 치밀한 대응이나 정책 전환이 필요한 상황에 여당에서 전쟁이니 침략이니 하는 과격한 수사가 연이어 나오는 것도 마뜩잖지만 대통령의 행보 역시 국민 눈높이와는 거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위기 대응 차원에서 휴가까지 취소한 마당에 문 대통령은 야당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북한 미사일 발사로 지난 31일 긴급 소집한 국가안보회의(NSC)를 직접 주재하지 않았다. 모든 사안에 대통령이 시시콜콜 나설 수도, 또 그럴 필요도 없지만 대통령 공개 일정 자체가 고도의 정치적 메시지를 던진다는 점에서 최근 행보를 의아하게 바라보는 국민이 적지 않다.
 
일본의 핵심 소재 규제 강화 발표로 온 나라가 뒤집어진 7월 1일 이후 한 달 내내 그랬다. 참석한 공식 행사만 보면 분명 국민 체감과는 온도차가 있다. "과연 우리에겐 어떤 무기나 대응책이 있는가”라는 궁금증이 증폭되던 지난 2일 국무회의에선 북·미 판문점 회담을 "적대관계 종식 선언”으로 평가하면서 일본 이슈엔 침묵했다. 대통령은 같은 날 건강보험보장성강화대책 2주년 성과 보고대회에 갔다. 5일에도 대한민국 사회적경제 박람회를 찾아 어린이의 슈가클레이 수업 등을 참관했다. 8일이 돼서야 처음으로 "한국 기업 피해 땐 대응을 안 할 수 없다”고 발언했다. 하지만 그 다음날 대통령이 주재한 건 자화자찬식 공정경제 성과보고대회였다. 10일 30대 기업 총수를 청와대로 불러 장기전을 각오하면서도 현실적 전략은 찾기 어려웠다. 대신 12일 전남도청을 찾아 "이순신 장군이 12척 배로 나라를 지켜냈다”고 발언했고, 이어서 조국 당시 민정수석과 여당이 ‘죽창가’를 외치며 비판 언론을 토착왜구와 매국, 이적으로도 모자라 신(新) 친일로 규정하며 반일(反日)몰이에 나섰다. 이후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몇몇 대일 발언을 내놨지만 대통령이 직접 간 건 민심 이반 징후가 뚜렷한 부산의 ‘거북선횟집’이었다.
 
그런 면에서 23일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과의 오찬간담회가 불편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청와대와 여당 주요 인사가 모여 앉아 "부인이 대통령에게 ‘사랑한다’고 전해 달라고 해 질투를 느꼈다”느니 하면서 국가적 위기 앞에 속 타들어 가는 국민 마음도 모르고 아부성 농담을 주고받았으니 말이다.
 
이러니 문 대통령 복심이라는 양정철 원장이 이끄는 민주연구원이 만든 ‘한·일 갈등이 총선에 유리하다’는 보고서가 드러나기 전부터 적잖은 국민들이 ‘청와대와 여당은 나라가 총체적 위기에 빠져도 총선에만 올인한다’는 의구심을 보낸 것 아니었겠나.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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