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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돌 판매길 열어준 대법···'성기구' 24번 언급에 이유있다

리얼돌을 판매중인 국내 한 업체의 홈페이지 모습. [인터넷 캡쳐]

리얼돌을 판매중인 국내 한 업체의 홈페이지 모습. [인터넷 캡쳐]

"법원도 이런 논란을 예상하긴 쉽지 않았을 겁니다"
 

法 "리얼돌 음란물 아닌 성기구, 국가개입 최소화해야"

여성 형상을 본뜬 리얼돌(real doll) 판매를 두고 여성계의 반발이 거세다. 리얼돌에 연예인이나 지인 얼굴을 맞춤 제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리얼돌 수입을 금지해달라"는 청와대 청원 참여자는 20여일만에 22만명을 돌파했다. 
 
검사 출신인 오선희 변호사(법무법인 혜명)은 "지난 6월 대법원이 리얼돌 수입을 허가했을 당시 맞춤 제작은 쟁점이 아니었다"며 "단 몇개월만에 법원이 예상치 못한 새로운 논란이 터져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1심 "풍속 해치는 음란물" 2심 "개인적 성기구" 

리얼돌 논란은 2017년 7월 20일 인천세관이 리얼돌을 '풍속을 해치는 물품'으로 규정해 수입통관을 보류하며 시작됐다. 현행 관세법에 따르면 정부는 헌법질서를 문란하게 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 풍속을 해치는 물품의 수입은 금지할 수 있다. 
 
리얼돌 수입업자는 "개인의 성적 결정권에 국가가 간섭해 헌법상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반발해 소송을 냈다. 법적 다툼은 2년간 이어졌다. 인천세관은 1심에서 승소했으나 2심에서 패소했다. 
 
대법원이 해당 사건을 상고 기각해 지난해 6월부터 리얼돌 수입이 허용됐다. 상고기각은 2심 판결에 적법한 상고이유가 없을 때 내려지는 결정이다. 
 
2017년 4월 5일 인천세관본부 조사관이 인천 중구 항동 인천세관본부 강당에서 성인용 전신인형(리얼돌)의 수입을 제한하며 관련 사건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는 모습. [뉴스1]

2017년 4월 5일 인천세관본부 조사관이 인천 중구 항동 인천세관본부 강당에서 성인용 전신인형(리얼돌)의 수입을 제한하며 관련 사건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는 모습. [뉴스1]

1·2심 판결의 핵심 쟁점은 리얼돌을 무엇이라 정의하느냐였다. 1심은 리얼돌을 풍속을 해치는 '음란물'이라 판단해 수입을 제한했다. 하지만 2심은 리얼돌을 성기구라 정의해 수입을 허용했다. 법원은 음란물과 성기구에 대한 국가의 개입 범위를 다르게 판단한다. 
 

1심 판결문에 없던 '성기구' 2심 판결엔 24번 등장

2018년 9월에 내려진 1심 인천지방법원(정성완 부장판사)의 4페이지 판결문에는 '성기구'라는 표현이 등장하지 않는다. 
 
재판부는 당시 인천세관의 손을 들어주며 "리얼돌이 실제 여성의 신체 부위와 비슷하게 형상화되어 있고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왜곡하였다고 평가할 정도로 특정 성적 부위를 적나라하게 묘사했다"며 풍속을 해치는 음란물이라 판단했다.
 
수입업자가 주장하듯 리얼돌을 자위행위에 사용하는 성기구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올해 1월 서울고등법원(김우진 부장판사)의 판단은 달랐다. 수입업자가 승소한 2심 8페이지 판결문에 '성기구'라는 단어가 24번이나 등장한다. 
 
리얼돌 판매 금지 청와대 청원. 참여자가 22만명을 넘어섰다. [인터넷 캡쳐]

리얼돌 판매 금지 청와대 청원. 참여자가 22만명을 넘어섰다. [인터넷 캡쳐]

2심 재판부는 리얼돌을 개인적 성기구라 규정하며 "성기구를 일반적인 성적 표현물인 음란물과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2013년 헌법재판소 결정을 인용했다. 
 
또한 "성기구는 인간의 은밀한 성적행위에서 사용된다"며 "이런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에는 국가가 되도록 개입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실현하는 길이 된다"고 판단했다. 
 
리얼돌이 인간의 인격과 존엄을 훼손한다는 1심과 달리 리얼돌 수입 허용이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실현한다는 반대되는 판결을 한 것이다. 대법원은 지난 6월 사건을 상고기각하며 원심을 확정했고 한국 시장에 리얼돌 판매가 시작됐다. 
 

리얼돌 논란, 단 한번의 대법원 결정으로 끝나지 않을듯

양홍석 변호사(법무법인 이공)는 "인간의 사적 영역에 국가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법원 결정에 동의한다"면서도 "이는 최근 음란물의 정의를 폭넓게 해석해왔던 대법원의 판결 경향과 다른 자가당착적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양 변호사의 말대로 대법원은 최근 음란물에 대한 정의를 점점 더 넓혀오는 판결을 내려왔다. 
 
지난 2월 16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https 차단정책 반대시위'에서 참가자들이 피켓과 촛불을 들고 있다. 당시 정부가 새로 도입한 음란물 차단 기술을 두고 검열 논란이 불거졌었다. [연합뉴스]

지난 2월 16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https 차단정책 반대시위'에서 참가자들이 피켓과 촛불을 들고 있다. 당시 정부가 새로 도입한 음란물 차단 기술을 두고 검열 논란이 불거졌었다. [연합뉴스]

지난해 5월 대법원은 여자 아동·청소년이 남성과 성관계를 맺는 만화·동영상을 음란물로 규정하며 이를 유포한 피고인에게 실형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사회 평균인의 시각에서 애니메이션의 여성 캐릭터가 명백하게 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요지였다. 
 
지난달 29일 대법원은 파일 공유 사이트에 토렌트로 음란물 영상이 아닌 다운로드 링크(메타 파일)를 올린 피고인도 음란물 유포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오선희 변호사는 "법원에서 애니메이션은 음란물로, 리얼돌은 성기구로 나눈 기준이 명확지는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리얼돌이 사회적 맥락에서 사람들에 의해 어떻게 소비되며 그 과정에서 여성의 존엄과 초상권, 정신적 고통 등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에 대한 충분히 논의가 없었다는 것이다. 
 
오 변호사는 "리얼돌 논란은 단순한 남녀간 대결 문제를 넘어 AI(인공지능) 로봇이 성적 도구로 활용될 때도 논쟁이 이어질 수 있는 매우 어려운 문제의 출발점"이라고 지적했다. 
 
리얼돌 수입을 허용해야 한다는 청와대 청원. 리얼돌 판매 금지 청원에 맞서 지난달 31일부터 청원이 진행되고 있다. [인터넷 캡쳐]

리얼돌 수입을 허용해야 한다는 청와대 청원. 리얼돌 판매 금지 청원에 맞서 지난달 31일부터 청원이 진행되고 있다. [인터넷 캡쳐]

"리얼돌 왜곡돼 소비될 것" vs "개인의 자유 존중해야" 

일부 여성 단체 등에선 리얼돌이 단순한 성기구를 넘어 여성 혐오의 소재가 될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부대표는 "많은 여성이 리얼돌에 대해 큰 두려움을 갖고 있다"며 "리얼돌의 소비가 또다른 여성 혐오로 번지지는 않을까 우려가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원의 결정처럼 개인의 성생활에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간통죄 역시 2015년 국가 개입의 최소화라는 맥락에서 위헌 결정이 내려졌다. 
 
지난해 2월 정부가 https 관련 신기술을 도입하며 음란물 사이트를 차단하자 남성들이 "성적 자유권이 침해당했다"며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양홍석 변호사는 "리얼돌 논란은 수입 금지와 허용 차원을 넘어 사회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개인의 성적 자유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논의로 확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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