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지방유일 자체 독립선언서 하동 ‘대한독립선언서’,국가문화재되나

지방 유일의 자체 독립선언서인 하동 '대한독립선언서'. [사진 하동국]

지방 유일의 자체 독립선언서인 하동 '대한독립선언서'. [사진 하동국]

경남 하동군과 경남 독립운동연구소는 독립기념관이 소장하고 있는 하동 ‘대한독립선언서’를 국가 문화재로 등록해 줄 것을 문화재청에 요청했다고 1일 밝혔다. 또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12명 중 최근 행적이 확인된 6명을 포함한 미포상자 9명의 서훈을 국가보훈처에 신청했다. 
 
하동 ‘대한독립선언서’는 하동군 적량면장으로 있던 박치화 등 12인이 지방에서 유일하게 자체 작성하고 서명한 한 독립선언서다. 1919년 3월 18일 하동 장날 장터에서 처음 낭독되고 배포되면서 영·호남 주민 1500여명이 만세 운동을 펼쳤다. 지금까지 지방에선 최남선이 기초한 ‘기미 독립선언서’가 배포돼 사용됐고, 도쿄·만주·하와이·연해주 등 해외에서만 독립선언서가 자체 작성돼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동 독립선언서는 가로 30㎝, 세로 21㎝이다. 서명인 이름을 포함해 총 329글자로 돼 있고, 다른 선언서와 달리 ‘대한독립’을 첫 글자로 명기하고 연호도 ‘단군개국’을 사용하는 등 민족주의 사상을 강조했다. 또 세계평화회의의 ‘민족자결’ 여론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독자적인 독립 쟁취 의지를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최후의 1인과 최후의 일각까지 폭동과 난거는 행치 말고 인도와 정의로 독립문으로 전진합시다’라며 비폭력과 정의로운 만세운동도 표방했다. 
 
2015년 국가지정 기록물 제12호로 지정되긴 했으나 2016년 국가 문화재로 등록된 ‘기미 독립선언서’와 달리 아직 국가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고 있다. 현재 독립기념관이 소장하고 있다.
 
정재상 경남독리분동연구소장.

정재상 경남독리분동연구소장.

또 하동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12인 중 박치화(건국훈장)·정낙영(대통령표창)·이범호(대통령표창) 3인은 정부 서훈이 추서됐으나 나머지 9명은 미포상 상태다. 이 가운데 6명은 3·1운동 100년 만인 최근 행적이 확인됐다. 하동군과 경남 독립운동연구소가 적극적으로 행적을 발굴한 덕분이다. 
 
최근 행적이 확인된 6명은  ▶이성우(李聲雨·1894∼1958, 횡천면 횡천리 271) ▶박종원(朴宗源·1898∼1974, 횡천면 월평리 516) ▶이병홍(李炳鴻·1896∼1919, 양보면 박달리 611) ▶정희근(鄭禧根·1888∼?,금남면 대치리 139) ▶이보순(李輔淳·1897∼1976, 하동읍 두곡리 994) ▶김두순(金斗淳·1897∼1938, 하동읍 읍내동 897) 선생이다. 행적이 확인되지 않은 나머지 3인은 ▶정인영(鄭寅永) ▶김응탁(金應鐸) ▶황학성(黃學成) 선생이다.
 
이 가운데 정낙영·이범호·정희근 선생에 대해 국가보훈처 공훈록에는 “1919년 3월 20일 남해군 남해읍 장날에 독립 만세 시위운동을 계획하고 독립선언서를 다량 등사하는 등 시위준비를 한 후 장터에 모인 수백 명의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 만세를 고창하는 등 시위를 주도했다”고 기록돼 있다. 
 

하동군과 독립운동연구소는 “하동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12명 중 최근 행적이 확인된 6명을 포함한 미포상자 9명의 서훈을 국가보훈처에 신청한 것은 국가가 나서서 이들의 신원과 행적을 확인해 예우해달라는 뜻이다”고 밝혔다.  
 
정재상(53) 경남 독립운동연구소장은 “하동 독립선언서 작성·배포를 계기로 하동에서 만세시위가 총 17회가 일어났으며, 인근 전남 광양시와 경남 남해군 등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는 기록을 최근 확인했다”며 “당시 독립선언서에 이름을 올리는 것 자체가 목숨을 거는 일이다. 이들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예우받아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하동=황선윤 기자 suyohwa@joongang.co.kr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