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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정의 인권'은 어디까지…"여론재판" "실체 파악 도움"

“살인죄로 긴급 체포합니다.”

“왜요? 그런 적 없는데. 제가 당했는데.”

 
지난 28일, 전 남편을 살해한 뒤 유기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고유정(36)씨의 목소리가 전 국민에 공개됐다. 한 경찰이 그의 체포 영상을 언론에 유출했기 때문이다. 영상 속 고씨는 슬리퍼를 신고 쓰레기를 버리러 가던 참이었다. 그가 범행을 저지른 뒤 보인 어리둥절한 표정에 국민들은 공분했다.
 

고유정 체포 영상 공개 두고 갑론을박

경찰청은 영상 유출 경위 파악에 나섰다. 피의자의 사생활 등을 함부로 공개하는 건 수사 공보 규칙에 위반된다고 판단해서다. 경찰이 체포 영상을 공개한 건 부적절했을까. ‘시민의 알 권리’와 ‘피의자의 인권’ 사이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지난 6월 1일 긴급체포 당시 고유정. [경찰이 촬영한 영상의 캡처=연합뉴스]

지난 6월 1일 긴급체포 당시 고유정. [경찰이 촬영한 영상의 캡처=연합뉴스]

"여론재판에 유리…수사기관이 악용할 수도"

법조계에서는 수사기관의 영상 공개가 피의자의 방어권을 제약하는 쪽으로 흐를 가능성을 경계한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개된 영상은 피의자가 전혀 뉘우침이 없다는 식의 불리한 서사를 강화시켜주는 성격”이라며 “그걸 수사기관이 공개를 하는 건 피의자로 하여금 이미 여론 재판을 받게 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언론사가 피의자의 사진이나 행적 등을 발굴해 공개할 수도 있지만, 나중에 형사 재판의 당사자가 되는 국가(경찰)가 피의자의 사생활을 직접 공개하는 건 차원이 다르다”며 “이를 제제하지 않으면 수사기관이 재판을 유리하게 끌고 가는 데 지속적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경찰이 영상을 특정 언론에 제공한 행위가 ‘공무상 비밀 누설’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양홍석 변호사는 “해당 영상은 고씨가 처음부터 범행을 부인했다며 나중에 재판에서 증거로 제출될 수도 있는 자료이며 수사 기밀”이라며 “이를 공판 시작도 전에 수사기관에서 공개하는 건 공무상 비밀 누설죄가 성립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영상 유출에 대해 피의사실 공표죄가 성립되긴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피의사실 공표죄는 아직 사건이 재판에 넘겨지지 않았을 때 한해서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적극 공개하고 책임지면 돼…언론 스스로 발 묶지 말아야"

처음 수사기관이 신상공개를 결정한 이후 고유정의 모습. 당시 긴 머리로 얼굴을 가린 걸 두고 "경찰이 적극적으로 신상 공개를 하지 않는다"는 비판 여론도 일었다. [연합뉴스]

처음 수사기관이 신상공개를 결정한 이후 고유정의 모습. 당시 긴 머리로 얼굴을 가린 걸 두고 "경찰이 적극적으로 신상 공개를 하지 않는다"는 비판 여론도 일었다. [연합뉴스]

영상 공개의 공익적 측면을 강조하는 의견도 있다. 이진로 영산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는 “이 사건은 국민적 관심사가 크고 고유정이 범행을 계속 부인하고 심지어는 왜곡된 진술을 한다는 의심이 제기되는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일괄적으로 수사 관련 자료 공개를 반대할 게 아니라 사건의 특수성을 따져서 그때마다 달리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논란이 언론의 보도 자유를 옭아매는 방향으로 가는 데 대한 우려도 나온다. 이현곤 변호사(법무법인 새올)는 “지난 2004년 서울 서래마을 영아 살해 사건 때 프랑스 언론들은 체포된 프랑스인 부부의 얼굴을 즉각 보도했는데 정작 우리나라 사람들은 누가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며 “우리나라는 언론이 그런 부분에 대해 지나치게 소극적이며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 한 명이 돌발적으로 영상을 공개해버린 데 대한 절차상 문제를 삼을 수는 있으나, 영상 공개 자체를 금기의 영역으로 몰아가는 건 언론이 스스로 발을 묶는 것“이라며 “외국에서도 피의자 체포 사진 등이 많이 공개되지만 그렇다고 무죄추정의 원칙을 우리나라보다 소홀히 하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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