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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신성 분석한 네이처 논문…해답 준건 500년 전 세종실록

대전 한국천문연구원 본관 앞 터에는 연구진들이 복원한 조선시대 천문관측기기들이 전시돼 있다. 지난달 30일 김상혁(왼쪽) 고천문연구센터장이 연구원과 함께 간의에 올랐다. 프리랜서 김성태

대전 한국천문연구원 본관 앞 터에는 연구진들이 복원한 조선시대 천문관측기기들이 전시돼 있다. 지난달 30일 김상혁(왼쪽) 고천문연구센터장이 연구원과 함께 간의에 올랐다. 프리랜서 김성태

[최준호의 사이언스&] 조선왕조실록, 세계 천문학계 보물됐다 

별은 현재이면서 과거다. 지구와 아무리 가까워도 수 광년은 떨어져 있다는 점도 그렇지만,  각자의 궤도를 가진 별의 움직임 또한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다리다. 태양계 밖 머나먼 곳의 별의 움직임은 과거의 과거를 찾아보는 작업이다. 어떻게 이걸 알 수 있을까. 방법이 있다. 역사서가 바로 그것이다.
 

고려사·삼국사기 등 옛 사서
태양흑점·혜성·일식 등 상세 기록
승정원일기는 숨겨진 천문 보고
간의·앙부일구 등 천문기기의 힘

2017년 8월31일 세계적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고유운동을 이용한 서기 1437년 전갈자리 신성 후예의 나이 결정’이란 제목의 논문이 실렸다. 미국 뉴욕 자연사박물관 천체물리학부의 마이클 섀러 박사가 이끈 국제 공동연구팀이 쓴 이 논문은 15세기 당시 전갈자리 신성의 기록으로 폭발 시점을 정하고, 이런 추정을 바탕으로 신성이 1000년 단위의 기간 동안 연속적으로 폭발하면서 왜소신성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밝혀냈다.
 
580년 전 발생한 천문현상을 21세기의 서구 천체물리학자들이 어떻게 분석할 수 있었을까. 그 답은 논문 안에서 찾을 수 있다. 논문은 ‘한국(Korea) 왕실 천문학자들이 기록한 옛 신성 중 하나가 1437년 3월11일 폭발했다’고 적고 있다. 이 내용의 원전은 조선왕조실록의 세종 19년 2월5일(음력)의 기록이다.
 
‘유성이 하늘 가운데에서 나와서 동북쪽으로 향하여 들어갔는데, 꼬리의 길이가 4, 5척이나 되었다. 햇무리를 하였는데 양쪽에 귀고리를 하였고, 객성(客星)이 처음에 미성(尾星)의 둘째 별과 셋째 별 사이에 나타났는데, 셋째 별에 가깝기가 반 자 간격쯤 되었다. 무릇 14일 동안이나 나타났다.’(流星出自天中, 向東北入, 尾長四五尺。 日暈, 兩珥。 客星始見尾第二三星間, 近第三星, 隔半尺許, 凡十四日。)
 
인공지능으로 승정원일기 번역 작업 
 
한국의 고천문(古天文)이 세계 천문학의 보고(寶庫)로 등장하고 있다. 전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상세한 기록문화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와 고려사·조선왕조실록·승정원일기가 대표적이다. 사서 속에는 일식과 월식은 물론 혜성과 신성, 태양의 흑점 등이 기록돼 있다. 아직 번역 작업이 20% 정도에 불과한 승정원일기는 금맥(金脈)의 존재는 알지만 아직 파보지 못한 노다지 광산과 같다. 다양한 천체의 기록을 보여주고 있는 조선왕조실록이 바로 승정원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양천문학사국제회의와 같은 국제천문학계는 승정원일기라는 보물상자가 활짝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중국은 한국보다 더 오랜 역사서를 보유하고 있지만, 왕조가 단명하면서 역사기록의 일관성과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조선 왕조 519년, 고려도 475년을 존속했다. 조선왕조실록과 고려사는 이런 긴 왕조 역사의 기록이다.
 
우리 역사 속 천문기록.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우리 역사 속 천문기록.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세계적 과학사학자인 영국의 조셉 니덤(1900~1995)은 “한국(조선) 천문학은 동아시아 천문학 전통의 독창적인 민족적 변형이었고, 한국 천문학이 만들어낸 각종 천문의기와 기록은 세계 과학사의 귀중한 유산”이라고 평가했다.
 
이상근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은“우리 역사에 있어 천문은 중국과 일본의 일식 기록에 비해 고구려·백제의 기록이 더 정확했다는 것이 역사서에 기록될 정도로 세계 최고의 수준”이라며“세계적으로 귀중한 기록으로 평가받는 세종실록의 1437년 전갈자리 신성과 선조실록의 1604년 케플러초신성 등을 남겼을 정도로 정확한 관측 능력을 보유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중앙일보가 찾아간 대전 유성 화암동 한국천문연구원의 고천문연구센터는 이 같은 우리 땅 고천문 연구의 산실이다. 연구원 캠퍼스 안쪽 전파천문대가 자리 잡은 야산에 올라서니 ‘이원철 홀’이라는 이름표를 단 3층 건물이 나타났다. 우리나라 최초의 이학박사 겸 천문학자인 이원철(1896~1963) 박사의 이름이다.
 
① 태양의 흑점 활동을 기록한 고려사. ② 세종 19년(1437년) 3월11일 전갈자리 신성의 폭발을 기록한 조선왕조실록. ③ 하늘의 별과 행성의 모습을 담은 천상열차분야지도는 1247년에 만들어진 중국 쑤저우의 천문도에 이어 세계에서 둘째로 오래됐다. [사진 한국천문연구원]

① 태양의 흑점 활동을 기록한 고려사. ② 세종 19년(1437년) 3월11일 전갈자리 신성의 폭발을 기록한 조선왕조실록. ③ 하늘의 별과 행성의 모습을 담은 천상열차분야지도는 1247년에 만들어진 중국 쑤저우의 천문도에 이어 세계에서 둘째로 오래됐다. [사진 한국천문연구원]

지난해 4월 문을 연 고천문연구센터는 옛 천문기기를 복원하고 역사적 관측기록을 수집·분석하며, 이런 자료가 현대 천문현상에 활용될 수 있도록 정보화하는 등의 연구를 하고 있다. 지난 5월 천문연구원은 ‘고전 속 천문과 기상 기록으로 태양활동과 기후변화를 알아내다’라는 제목의 발표자료를 통해 고천문연구센터의 연구활동을 알렸다. 양홍진 박사가 이끄는 연구진이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에서 흑점에 대한 55군데 기록을 찾아, 태양의 활동주기를 연구한 보고서다. 이 연구를 통해 현재까지 잘 알려진 태양활동의 주기인 11년과 60년 외에 240년의 장주기가 있음이 확인됐다.  또 이런 태양의 장주기 활동이 과거 기후변화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했다.
 
천문연 고천문연구센터 연구 주도 
 
천문연구원에 고천문 연구의 싹이 튼지는 더 오래됐다. 2008년 고천문연구그룹이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현재 센터장을 맡고 있는 김상혁 박사가 옛 천문기기 복원의 임무를 받고 천문연에 들어오면서부터다. 이원철홀 1층 ‘전통천문기기복원실’이라는 조그만 방에 들어섰다. 사진으로만 봤던 혼천의·간의 등의 축소모델과 조선왕조실록, 한창 복원 작업 중인 역사 속의 물시계 등이 복잡하게 놓여있었다.
 
김상혁 고천문연구센터장은 “최근에는 인공지능을 이용해 승정원일기 등의 고천문 기록을 번역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며 “사람의 힘으로 승정원일기를 번역하려면 앞으로도 35년이 걸릴 일이지만 인공지능은 번역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승정원일기 중 아직 번역되지 않은 80%에서 어떤 천문기록 쏟아져 나올지 헤아리기 어렵다”며 “아마도 조선왕조실록보다 최소 4배 이상의 천문기록이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우리 민족은 어떻게 이런 천문기록을 남길 수 있었을까. 혼천의와 간의 등 조선 세종대왕(1397~1450년) 시절에 쏟아져 나온 천문 관측기기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서구 천문학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천체망원경도 아직 발명되지 않던 시절이다. 세종은 1432년부터 1438년까지 조선의 독자적 역법(曆法) 체계를 완성하기 위해 천문의기 제작과 시계 제작 사업을 펼쳤다. ‘천손(天孫)’인 왕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일식과 월식을 정확히 예측해야 했다. 백성의 일상생활과 농사를 위해 시계와 달력도 필요했다. 하지만 매년 한차례 중국에서 받아오는 역서는 조선의 하늘과 차이가 있었다.
 
천체를 관측하고 시간을 파악할 수 있는 간의를 소형화한 소간의.

천체를 관측하고 시간을 파악할 수 있는 간의를 소형화한 소간의.

민병희 박사는 “천체의 위치를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간의는 원래 중국에서 개발한 것이었는데 조선의 과학자들은 한양의 위도에 맞도록 간의를 개량했다”며 “여기에 더해 실용성과 이동성을 겸비하도록 새로운 형태의 소간의도 제작했다”고 말했다.
 
한민족 천문 연구 꽃 피운 세종대왕 
 
해시계 앙부일구(仰釜日晷)와 물시계인 자격루(自擊漏)·옥루(玉漏) 등은 천체관측 기기를 바탕으로 태양과 별의 운행을 살펴보고 이런 규칙적 움직임을 통해 시간을 파악해 만들어낸 작품이다. 조선의 선비들은 요즘의 스마트폰보다 작은 크기의 시계도 가지고 다녔다. 직육면체의 모양에 나침반과 초소형 앙부일구를 담은 것이다. 나침반으로 방향을 맞추고 앙부일구에 떨어지는 해 그림자를 통해 시간을 읽었다.
 
그러나 500여년 전 꽃을 피웠던 우리 민족의 천문학은 현대 학문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천문학 역사의 연결고리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김상혁 센터장은“전통 관측기기와 같은 수많은 천문 유산들이 소실되고 해외로 반출됐다”며“70여 년 동안 분단국가로 남게되면서 북한의 실태가 정확히 파악되지 못한 것도 한국 천문학의 아픔”이라고 말했다. 이런 아픔은 고천문연구센터의 동력이기도 하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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