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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회사가 혁신하는 법…IT 업계의 장점을 찾아라

글로벌 패션 브랜드 '몽클레르'가 페이스북, 구글 등 정보 기술(IT) 업계에서 활용하는 아이디어 회의 방식인 '해커톤'을 도입, 혁신 실험을 했다. [사진 몽클레르]

글로벌 패션 브랜드 '몽클레르'가 페이스북, 구글 등 정보 기술(IT) 업계에서 활용하는 아이디어 회의 방식인 '해커톤'을 도입, 혁신 실험을 했다. [사진 몽클레르]

 
지난 7월 4일(현지시각) 이탈리아 밀라노 토르토나 지역의 한 산업단지. 연일 계속되는 무더위에 행인조차 드문 한적한 거리에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한 창고로 줄지어 들어가는 사람들을 따라가 보니 대낮인 밖과는 딴판이다. 조명을 켜지 않고 창문을 가려 어둑어둑한 내부에는 테이블과 의자들이 그룹을 지어 도열해있고, 정면에는 커다란 디스플레이 화면과 작은 무대가 마련되어 있다.  

‘몽클레르 2019 해커톤’ 행사 현장
전 세계서 모여서 24시간 끝장토론
“집단지성에 의한 혁신 전략 필요”

 
밀라노 기반의 글로벌 패션 브랜드 ‘몽클레르’의 혁신 실험 현장이다. 디자이너를 영입하고,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이는 여느 패션 브랜드의 혁신 시도와는 다른 모습. 전 세계 직원 수백 명이 한 데 모여 24시간 동안 잠을 자지 않고 회의를 했다. 바로 ‘몽클레르 해커톤(hackathon) 2019’다.  
 
해커톤은 주로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사용하는 아이디어 채굴 방식이다. 해킹(hacking)과 마라톤(marathon)의 합성어로 일정한 장소와 시간에 참여자들이 모여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행사를 말한다. 주로 24시간 혹은 48시간 동안 현장에서 한 가지 목표(프로그램 개발)를 구상부터 완성까지 하는 경우가 많다. 해커톤이 널리 알려진 것은 페이스북이 해커톤을 열면서부터다. 페이스북은 개발자와 디자이너를 비롯해 인사·마케팅·재무 등 모든 구성원에게 밤새 음식과 간식을 제공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도록 독려하는 행사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24시간 내내 이어지는 '끝장토론' 아이디어 회의는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열광적인 분위기로 전개됐다. 유지연 기자

24시간 내내 이어지는 '끝장토론' 아이디어 회의는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열광적인 분위기로 전개됐다. 유지연 기자

 
4일 정오에 시작한 2019 몽클레르 해커톤 행사는 정확히 24시간 후 5일 정오까지 이어졌다. 그룹별로 한 가지 주제를 정한 뒤 아이디어 구상에서 견본 제작, 실행 및 프레젠테이션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수행했다. 장장 24시간, 하루의 시간이 주어졌다고 해서 쉬엄쉬엄 자유롭게 회의가 이어진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작게는 5분부터, 길게는 3시간까지 시간을 쪼개 사용하도록 중간 미션이 주어진다. 화면에선 초시계가 돌아간다. 예를 들어 그룹별 첫 번째 질문을 정하는데 20분의 시간이 주어졌다. 초시계가 돌아가고 20분이 지나면 그룹의 모든 구성원이 하던 것을 멈추고 손을 들어야 한다. 진행자 몇몇이 그룹을 돌면서 성과를 점검하고 결과가 잘 만들어졌는지 체크한다. 이런 과정이 24시간 내내 지속한다고 보면 된다. 미션이 끝날 때마다 각 팀이 그 자리에서 자신들의 결론을 발표한다. 좋은 아이디어에 대한 환호는 열광적이다. 회의는 생각보다 치열하게 진행됐다.  
 
약 10명 내외로 구성된 팀원은 각각의 역할을 맡는다. 그룹 리더, 시간을 체크하는 타임 키퍼, 노트 필기 담당, 사진 찍는 사람, 칠판 필기 담당 등이다. 해커톤을 진행할 때는 지켜야 할 몇 가지 규칙이 있다. 일단 지정된 장소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 ‘안돼(No)’라는 부정적인 말도 금물이다. 잠을 자서도 안 된다. 중간 미션별로 시간 초과 알림이 울리면 움직임을 멈춰야 한다. 원한다면 다른 팀과 협업할 수 있다.
 
흥미로운 건 장시간 회의를 하는 동안 식사 외에도 중간중간 명상을 하고, 요가를 하며, 디제잉 타임 등 쉬는 시간도 있다는 점이다. 회의장 한편에는 푹신한 빈백과 운동용 실내 자전거가 놓여있다. 회의하다 지치면 개별적으로 쉬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참석자는 주어진 미션을 제시간에 달성해내는데 거의 모든 시간을 썼다. 5일 오전 아침 식사를 마치고 약 몇 분간 빈백에서 쉬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많은 사람이 회의 테이블을 떠나지 못했다. 한 참가자는 “따로 마련된 명상 시간을 빼고는 단 1초도 눈을 붙이지 못했다”며 “시간별로 주어지는 미션을 해결하느라 24시간이 정신없이 지나갔다”고 소감을 밝혔다.
 
 회의장 한편에는 빈백, 실내 자전거, 음식 등이 놓여있어 틈틈이 휴식도 취할 수 있었다. 유지연 기자

회의장 한편에는 빈백, 실내 자전거, 음식 등이 놓여있어 틈틈이 휴식도 취할 수 있었다. 유지연 기자

 
이번 몽클레르 해커톤에는 전 세계 450여명의 직원이 참석했다. 유럽 여러 나라를 비롯해 한국·중국·일본·미국·중동 등 유럽 외 지역까지 모두 37개 팀이 그룹을 지어 진행했다. 몽클레르의 전체 직원 4000여명 중 약 10%가 참석한 셈이다. 한국에서는 10여명의 직원이 해커톤을 위해 밀라노에 왔다. 특이한 점은 제품 개발이나 기획 담당 직원뿐 아니라 물류·매장 서비스·영업 등 다양한 분야의 직원들로 구성됐다는 점이다. 이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이유는 이번 해커톤에서 다루는 주제가 비단 제품 개발이나 기획에만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미래의 다운재킷 등 제품에 관한 주제도 있지만, 미래의 매장, 디지털 회의실, 지속가능성 등 물류부터 매장 서비스, 기업 철학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주제를 다뤘다.  
 
해커톤을 시작한 지 20여 시간이 흐른 5일 오전, 22팀이 연단에 나와 20시간 동안 치열하게 고민했던 프로젝트의 결론을 발표했다. 각 팀에는 디자이너가 배정돼 결론에 맞춰 실제 제작물을 만들기도 했다. ‘미래의 매장 디자인’이라면 매장 모형을 만들고, ‘미래의 재킷’이라면 재킷 형태를 직접 그리거나 그래픽으로 보여주는 식이다. 평가는 혁신, 사업 효과, 실현 가능성, 타당성 등 네 가지 기준에 따른다. 발표 후 22팀 가운데 최종적으로 4팀이 선발됐다. 이 4팀의 결과물은 사내 사이트에 올려 전 세계 직원들의 투표로 최고를 가려낼 예정이다. 오는 12월 선정되는 최고팀은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창업자 양성기관인 싱귤래리티 대학에서 교육받을 기회가 주어진다.  
 
패션 업계에서 공식적으로 해커톤 행사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몽클레르는 업계에서 ‘혁신하는 패션 브랜드’로 통한다. 보통 패션 브랜드는 매해 두 번 봄·여름 시즌과 가을·겨울 시즌 정기 컬렉션을 발표한다. 주로 한 명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혹은 디자이너가 컬렉션을 진두지휘하며 브랜드의 디자인 정체성을 만들어간다. 하지만 몽클레르는 지난해 2월부터 정기 컬렉션 대신 ‘몽클레르 지니어스’ 컬렉션을 수시로 발표하고 있다. ‘몽클레르 지니어스’ 프로젝트는 ‘하나의 하우스, 다양한 목소리’라는 모토로 시작한 혁신 시스템이다. 한 명의 디자이너가 봄·여름, 가을·겨울 두 차례에 나눠 신제품을 출시하는 것이 아니라, 개성 있는 여러 명의 외부 디자이너와 협업해 여러 개의 라인을 만들고 매월 신제품을 출시한다. 
 
이번 해커톤 역시 몽클레르의 새로운 시도다. 한 명이 아닌 집단 지성에 의한 혁신을 꿈꾼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레모 루피니 몽클레르 회장은 혁신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해커톤에서 다양한 경험과 관점을 교환하다 보면 아주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것”이라며 “몽클레르의 주요 전략인 독창성을 만드는 데는 여러 사람의 창의적이고 강력한 아이디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래의 매장 위해선 '옴니채널' 구축 필요
-'몽클레르' 회장 레모 루피니
레모 루피니 회장

레모 루피니 회장

해커톤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디지털 기반의 회사에서는 일반적인 시도지만 패션 회사에선 없었던 프로젝트라 새로웠다. 몽클레르에서는 여러 나라 사람들이 여러 지역에 나뉘어서 일하고 있다. 해커톤은 이 모든 사람이 모여서 한 번에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었다. 시장은 늘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전 세계 몽클레르 직원들이 모이면 뭔가 새로운 것이 나올 것 같았다.”
 
해커톤을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는.
“평소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서 사업 아이디어와 영감을 얻는다. 실현 가능한 좋은 아이디어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만나 관계를 쌓는 일도 중요하다. 같이 회의를 하면서 무려 24시간 동안 함께 한다. 한국·중국·이탈리아에서 온 사람들이 만나 시너지를 냈으면 한다.”
 
지난해 2월 시작한 ‘몽클레르 지니어스’ 전략은 혁신적이었다.  
“강력한 아이디어고 전략이었다고 생각한다. 지니어스 프로젝트 전에는 다른 패션 회사처럼 우리도 고전적인 시스템이었다. 지니어스 프로젝트는 몽클레르의 전환점이었다. 새로운 고객이 유입되었다는 결과 외에도 우리의 태도와 감정, 직원들의 에너지가 변화했다. 회사 전체가 바뀐 느낌이다.”
  
이번 해커톤에서 다루는 프로젝트 중 ‘미래의 매장’이 눈에 띈다.
“전 세계에 200개의 매장이 있지만, 이것만 매장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 무엇이든 다 우리 매장이 될 수 있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접속할 수 있는 옴니채널(omni-channel·온·오프라인을 넘나들 수 있는 구매 서비스)을 구축할 생각이다.”
 
디지털 혁신을 강조하는데.  
“IT 업계에서 활용하는 해커톤을 적용한 이유도 디지털 혁신을 하고 싶어서다. 패션 업계에서 고객 동향, 통계, 전자 상거래 등 데이터를 활용하는 일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앞으로 패션 업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도전 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밀라노=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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