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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머리까지…'섬마을 의사'가 청진기를 애용한 이유

기자
조용수 사진 조용수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클리어(25)

나는 외딴 섬에서 첫 진료를 시작했다. 진료가 미숙하다보니 어르신을 보다가도 책을 들추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어르신들은 나를 믿어주었고, 나중에는 속마음까지 털어놓는 사이가 됐다. 사진은 경북 의성군보건소 한방진료실에서 한 공중보건의가 환자를 진료하는 모습. [중앙포토]

나는 외딴 섬에서 첫 진료를 시작했다. 진료가 미숙하다보니 어르신을 보다가도 책을 들추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어르신들은 나를 믿어주었고, 나중에는 속마음까지 털어놓는 사이가 됐다. 사진은 경북 의성군보건소 한방진료실에서 한 공중보건의가 환자를 진료하는 모습. [중앙포토]

 
내 첫 진료실은 섬 한가운데 있었다. 사방이 막혀 오갈 곳 없는 이들이 나를 찾았다. 환자를 보는 건 가슴 설레면서도 두려운 일이었다. 학교에서 책으로 공부한 것과 실제 질병은 너무나 달랐고, 병원 실습에 참관한 것과 실제 환자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환자 앞에서 말문이 막히기 일쑤였고, 그럴 때마다 멋쩍은 웃음으로 상황을 모면해야 했다. 고역이 따로 없었다. 나는 밤마다 환자들 차트를 펼쳐 놓고 책을 뒤적였다. 실수는 쉴 새 없이 발견됐고, 나는 후회와 자책으로 긴 밤을 지새워야 했다.
 
진료실은 섬에 있는 유일한 의료기관이었다. 환자들은 달리 갈 곳이 없었다. 좋든 싫든 계속 내 진료를 받아야 했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덕분에 나는 부족한 처방을 바로 잡을 수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멍청한 짓을 계속할 수는 없었다. 나는 내 모자람을 솔직히 인정하기로 했다. 진료실 책상에 여러 종류의 교과서를 쫙 펼쳐놓고, 진료 중간에도 모르는 것이 나오면 찾아보기 시작했다.
 
"어머님 잠시만요. 이거 제가 확실하지 않은데, 책 좀 찾아볼게요."
"이거네요. 보세요. 아버님 피부에 난 거랑 똑같이 생겼죠?"
 
환자들은 그런 나를 질책하지 않았다. 미숙한 주치의가 원망스러울 법도 했건만, 그들은 어린 의사의 성장을 묵묵히 기다려주었다. 그래서 나는 하루하루를 버텨낼 수 있었다. 무더위가 지나갔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언제부턴가 책 없이도 진료가 가능해졌다. 실수도 저지르지 않았다. 환자 앞에서 초조한 기색을 보이지도 않았고, 모르는 상황에 부딪혀도 당황하지 않았다. 진료실에서 환자와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가 되었다.
 
어릴 적 꿈꿨던 의사의 모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환자와 더욱 가까워지고 싶었다. 환자의 혈압을 한명 한명 손으로 직접 쟀다. 외국처럼 삼십 분 진료는 못 했지만 십분 진료라도 해보려 애를 썼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흐르자, 환자들은 거리낌 없이 속말을 털어놨다. 십 년 전에 입은 상처까지 상의해 올 정도였다.
 
어르신들은 의사가 보이는 작은 정성과 관심에도 큰 기쁨을 느꼈다. 나는 통증을 호소하는 곳마다 청진기를 대며 증상을 살피고 말씀을 듣곤 했다. [중앙포토]

어르신들은 의사가 보이는 작은 정성과 관심에도 큰 기쁨을 느꼈다. 나는 통증을 호소하는 곳마다 청진기를 대며 증상을 살피고 말씀을 듣곤 했다. [중앙포토]

 
어느 날은 사소한 단서에 포착해 환자의 묵은 불편을 해결해냈다. 나는 완전히 고무되었다. 급기야는 환자가 오면 여기저기 청진을 하기 시작했다. 머리가 아프면 머리에, 무릎이 아프면 무릎에. 쓸데없는 짓이었지만 할머님 할아버님이 무척 좋아했다. 아픈 곳을 청진해주지 않으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질 않았다.
 
"이쪽 무릎이 지난주보다 더 시큰거리네. 한번 자세히 들어봐 주소." 수십 년 묵은 관절통이라 별수 없단 걸 알면서도, 꼭 이렇게 내게 보여주어야 직성이 풀렸다. 나는 청진을 하고 무릎을 어루만져주길 습관처럼 했다. 겨울쯤 되자 모두 입을 모아 나를 칭찬해 주었다. 처음 부임했을 때보다 실력이 훨씬 좋아졌다고. 요새 지어준 약이 참 잘 듣는다고. 실제로 처방은 전혀 바뀐 게 없었지만…
 
십여 년의 시간이 흘렀고, 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되었다. 그 사이 셀 수 없이 많은 환자를 보았다. 나는 이제 옛날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실력이 늘었다. 물론 그만큼 책임도 늘어났다. 작은 진료실에서 환자들과 도란도란하던 시절과는 달라졌다. 십수분이면 생사를 오가는 환자가 눈앞에 줄을 짓는다. 그때는 환자를 토닥이는 게 전부였지만 지금은 병을 찾아 깨부수는 게 내 일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예전만큼 청진기를 쓰지 않는다. 무심하게 클릭 몇 번을 하면 x-ray와 CT가 촬영된다. 훨씬 빠르고 정확한 검사다.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반복해서 들었던 심음과 폐음(음성파일)도 잃어버렸다. 더는 환자의 가슴에, 등에, 배에 청진기를 대보지 않는다. 차가운 금속이 닿으면 환자가 놀랄까 봐, 손으로, 입김으로 미리 청진기를 데워 놓는 일도 하지 않는다.
 
이제 환자들은 나를 보기 위해 두 번 세 번 찾아오지 않는다. 만족한다. 응급실 의사는 안 볼수록 좋은 거니까. 다만 아주 가끔 이렇게 옛날 생각이 나곤 한다.
 
조용수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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