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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조건없이 보석해야"…전직 판사는 왜 카톡을 돌렸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2일 보석으로 풀려나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는 모습. 오종택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2일 보석으로 풀려나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는 모습. 오종택 기자

서울서부지방법원 수석부장판사를 지낸 이병로 변호사(연수원 16기)가 최근 동료 법조인들에게 장문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법원이 지난 22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직권보석하며 세가지 조건(주거지 제한·사건 관계자 접촉 금지·보증금 3억원)을 붙인 결정이 위법이라는 내용이었다.
   
이 변호사는 메시지에서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여러 제한을 달아 보석을 하는 것은 그릇됐다"며 "형사소송법 제93조 구속 취소의 법 규정을 어기는 위법한 조치로 보인다"고 적었다. 
 
당시 양 전 대법원장은 1심 구속 기한(6개월) 만료를 20여일 앞두고 있었다.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조건을 붙이지 않고 양 전 대법원장을 석방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 변호사는 28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양 전 대법원장을 개인적으로 알지도 않고 함께 근무한 적도 없다"며 "법조인으로서 피고인의 권리를 제한하는 법원의 결정이 우려돼 글을 작성한 것"이라 말했다.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자택. 법원은 양 전 대법원장의 보석을 허가하며 주거지를 자택으로 제한하는 결정을 내렸다. [중앙포토]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자택. 법원은 양 전 대법원장의 보석을 허가하며 주거지를 자택으로 제한하는 결정을 내렸다. [중앙포토]

양 전 대법원장 보석 두고 엇갈리는 법조계

양 전 대법원장의 보석 이후 전·현직 판사와 변호사들 사이에서 보석 조건을 두고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이병로 변호사 입장에 공감하는 측에선 "법원이 여론의 눈치를 보며 재판이 길어져 풀어줘야 할 피고인에게 과도한 제한을 걸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반대하는 측에선 "사안의 중대성과 공정한 재판을 위해 조건을 붙이는 게 맞다"며 "양 전 대법원장 측의 재판 지연 전략이 문제"라 반박한다. 
 
부장판사 출신인 도진기 변호사(연수원 26기)는 "양 전 대법원장 관련 결정은 재판부에서 상당한 고심을 한 것 같다"며 "사건 자체의 중대함과 증거인멸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내린 판단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도 "보석 조건이 없는 상황에선 양 전 대법원장의 증거 인멸 가능성이 높다"며 "아직 증인 신문을 단 1%밖에 하지못해 정상적인 재판 진행도 어려운 상황"이라 지적했다.
 
하지만 양 전 대법원장은 22일 법원의 보석 결정 이후 변호인단에게 "보석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결과"라며 따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고 한다. 
 

양 전 대법원장 "보석조건 납득 안돼" 

설령 구치소에서 20여일을 더 머물더라도 구속 기한 만료를 앞두고 조건을 붙인 보석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변호인단이 70여분 동안 "재판부의 결정이 항상 원칙과 부합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며 "추후 재판에서 보석 조건 변경을 건의하겠다"고 양 전 대법원장을 설득해 이번 결정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4일 오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자신의 공판에 출석하고 있는 모습. 왼쪽은 그의 변호인 중 한명인 이상원 변호사. [뉴스1]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4일 오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자신의 공판에 출석하고 있는 모습. 왼쪽은 그의 변호인 중 한명인 이상원 변호사. [뉴스1]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피고인이 법원 결정을 최대한 존중하고자 노력하는 것도 중요한 재판 원칙"이라고 말했다. 변호인단은 양 전 대법원장이 법원의 결정을 불복할 경우 악화할 여론도 고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판사 출신인 이현곤 변호사(연수원 29기)는 "내가 변호인이었다면 법원의 결정을 거부했을 것"이라며 "양 전 대법원장이 구속기한 대부분을 채운 상태에서 법원이 가택연금 수준으로 보석을 해주는 것은 원칙과 어긋난다"고 말했다. 
 
양홍석 변호사는 "법원이 보석 조건으로 피고인에게 사건 관계자(증인) 접촉을 금지한 것은 방어권을 지나치게 제한한 측면이 있다"며 "흉악범 등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피고인의 증인 접촉권은 보장해주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검찰이 언제든 증인을 접촉할 수 있는 상황에서 피고인의 접촉만 제한하는 건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한 현직 판사는 "양 전 대법원장의 보석 시기에 대해선 비판할 수 있다"면서도 "양 전 대법원장 재판에선 증언이 가장 중요한데 만약 피고인의 증언 회유 가능성이 있다면 보석 조건을 붙이는 것은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도 지난 22일 논평을 내고 "양 전 대법원장이 향후 출석할 증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며 "법원은 보석 조건이 준수되는지 엄정히 관리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17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전 대통령이 17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MB 보석 때도 같은 논란 

전직 고위 공직자의 보석 조건을 두고 논란이 됐던 것이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 3월 서울고등법원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항소심 구속만료 기한을 한달여 앞두고 가택연금 수준의 보석 결정을 내렸을 때도 똑같은 논쟁이 이어졌다. 
 
당시 고등법원은 이례적으로 다섯 페이지에 달하는 보도자료를 내며 이 전 대통령의 보석조건을 자세히 설명했다. 당시 법조계에선 "법원이 지나치게 여론을 의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형사소송법상 보석은 예외적 사유(증거인멸·도주·흉악범)가 아니라면 허가돼야 하는데 법원이 이 전 대통령에게 시혜를 베풀듯 보석 결정을 설명한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이 석방된 뒤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 법정에서 일부 진술을 번복하자 검찰은 지난 1일 항소심 재판부에 "이 전 대통령 측이 보석 조건을 어기고 사건 관계자를 접촉하고 있다"는 의견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형사법 전문가인 김정철 변호사(법무법인 우리)는 "피고인의 범죄 혐의가 중대할지라도 형사소송법의 핵심은 절차를 지키는 데 있다"며 "적법한 절차 내에서 사건의 실체를 밝히고 재판을 하는 것이 법적 원칙에 맞다"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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