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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미국, 6년 전엔 “한국에 베팅” 이번엔 “한ㆍ일이 해결”

러시아 군용기의 독도 영공 침범과 관련한 한·러 국장급 실무협의가 25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렸다. 이날 협의를 마친 니콜라이 마르첸코 주한 러시아 공군 무관(왼쪽)과 세르게이 발라지기토프 해군 무관이 청사 로비에 있는 이순신 장군 흉상 앞을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러시아 군용기의 독도 영공 침범과 관련한 한·러 국장급 실무협의가 25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렸다. 이날 협의를 마친 니콜라이 마르첸코 주한 러시아 공군 무관(왼쪽)과 세르게이 발라지기토프 해군 무관이 청사 로비에 있는 이순신 장군 흉상 앞을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3일 오전 러시아와 중국의 군용기 다섯 대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과 일본방공식별구역(JADIZ)을 1시간 반 가량 휘젓고 다녔다. 러시아 공중조기경보통제기(A-50)는 독도 영공(영토로부터 12해리ㆍ약 22㎞ 내)을 침입하기까지 했다. 이는 중ㆍ러의 첫 합동 비행훈련이었다고 한다. 두 강대국의 ‘비행 시위’를 놓고 최근 한·일 갈등이 안보 분야까지 확산할 조짐을 보이자, 동북아 지역 내 한ㆍ미ㆍ일 공조까지 시험해 보는 계산된 시위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방공식별구역(ADIZ)이 뭐길래, 동북아 하늘길 신경전
2013년 중국 'CADIZ' 일방 선포에 한·미·일 동시 반발
당시 방한 美부통령 "한국에 베팅"…KADIZ 확대 지지
최근 '중·러 비행 시위' 당일 방한한 볼턴, 사실상 침묵

'하늘의 완충지대' 방공식별구역, 미국 질서 도전하는 중·러 

 
방공식별구역(ADIZ·Air Defense Identification Zone)은 안보상 목적으로 영공 바깥 하늘의 일정 지역에 설정하는 공간인데, 미국이 냉전 시기 처음 도입했다. 전투기나 핵 미사일이 영공으로 진입하기 전 비행 물체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한 일종의 군사적 완충지대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 때인 1950년 법제화가 됐고 이후 미국의 우방국인 한국, 일본, 캐나다 등 28개국으로 확산됐다. 한국은 1951년 3월 22일 태평양사령부가 동북아 지역 방어를 위해 도입했다. 군용항공기 운용법(2007년 제정)상 “국가 안보 목적상 항공기의 식별(identification), 위치확인(location), 통제(control)가 요구되는 일정 지역의 공역(空域)”이라고 정의한다. 미국 법의 정의를 차용했다.
 
23일 독도 영공을 침범했던 러시아 조기경보통제기 A-50. [연합뉴스]

23일 독도 영공을 침범했던 러시아 조기경보통제기 A-50. [연합뉴스]

 
ADIZ는 협약이나 조약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중국이나 러시아가 KADIZ나 JADIZ를 무단진입해도 국제법상으로 문제를 삼기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지난 23일 사례처럼 KADIZ 내로 진입한 군용기는 언제든 영공까지 침입할 수 있어, 무단진입을 결코 예사로 볼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동북아 지역에서 ADIZ는 한ㆍ미ㆍ일과 중ㆍ러의 물리적 충돌 가능성까지 있는 세력 경쟁의 장이 돼 가고 있어 더욱 민감하다. 미국이 남중국해 등 바다에서 ‘항행의 자유’ 시위를 한다면, 중국과 러시아는 하늘에서 ‘비행의 자유’ 시위로 맞불을 놓는데 ADIZ 무단진입을 활용하고 있다
 
특히 중국이 2013년 방공식별구역(CADIZ)을 일방적으로 선포한 이후 자주 갈등이 돼 왔다. 중국의 일방 선포는 '1차 ADIZ 대전'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한국, 일본, 미국의 반발을 샀다. 당시 한미, 한일 관계도 최근과 닮은 듯 다른 점이 많다. 
 

2013년과 2019년, 닮은 듯 다른 'ADIZ 대전'

 
 23일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무단 진입했던 중국 H-6 전략폭격기 [연합뉴스]

23일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무단 진입했던 중국 H-6 전략폭격기 [연합뉴스]

 
2013년 11월 23일, 중국 정부는 동중국해에 CADIZ를 설정한다고 일방적으로 공표했다. 문제는 여기에 중·일이 영유권 분쟁 중인 센카구열도(尖閣列島, 혹은 댜오위댜오·釣魚島)와 한국 측 이어도가 포함됐다는 것이었다. 미국은 즉각 비판 성명을 내고 사흘 뒤 B-52 폭격기 두 대를 CADIZ에 출격시켰다. 일본 정부도 우려를 나타냈다. 당시 “급속도로 부상하던 중국이 드디어 야심을 드러냈다”는 우려가 쏟아졌다. 
 
한국은 이에 맞서 12월 8일 이어도를 포함하는 확장된 KADIZ를 선포했다. 60여 년 만의 KADIZ 재설정이었다. 자칫 '하늘 영토 확장'으로 주변 강대국의 반발을 살 수 있는 상황이었다. 미국이 곧바로 지지를 공표했다. 12월 10일(현지시간) 미 국무부 대변인은 “한국의 KADIZ는 주변국과 사전 조율을 통해 책임 있게 정한 것”이라며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한국은 KADIZ 선포 직전 방한했던 조 바이든 미 부통령에게도 이와 관련한 사전 협의를 했다. 12월 초 아시아 연쇄순방길에 오른 바이든 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미국은 한국에 계속 베팅하겠다”는 말을 했다. 당시 급속도로 부상하는 중국에 대해 미국의 경계심이 높아지고 있었지만, 박근혜 정부는 그해 6월 한·중 정상회담으로 중국과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추진하는 등 출범 초기 친중 정책을 폈다. 바이든은 이 자리에서 “미국에 반하는 베팅은 좋은 베팅이 아니다”는 말을 했는데, 당시 이 말이 경고성 멘트 아니냐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를 찾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발언을 듣고 있다. 변선구 기자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를 찾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발언을 듣고 있다. 변선구 기자

 
 이에 반해 2019년 11월 23일 벌어진 중·러 군용기 사태를 대하는 미국의 초기 반응은 미지근했다. 도발 당일 방한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KADIZ, JADIZ 무단비행은 물론 동맹국인 한국의 영공이 뚫린 점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비판 메시지를 내지 않은 채 한국을 떠났다. 24일 정의용 안보실장을 면담한 자리에서도 “앞으로 유사한 상황에 대해 양국이 긴밀히 협의해 나가자”는 말만 했다. 면담 이후 청와대가 공개한 발언 요지가 그랬다. 23일(현지시간) 나온 미국의 공식 입장도 국가명을 밝히지 않은 채 "중국과 러시아 항공기의 영공(air space) 침범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대응을 지지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두고 중·러가 한·일 간 첨예한 독도 주변을 일부러 노렸다는 말이 나왔다. 미국으로서는 적극 발언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2013년과 2019년에도 한·일 관계는 악화한 상태였다. 공통점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다. 2013년에는 아베 2기 내각이 출범한 해로, 그해 초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을 비롯한 일본 각료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한일 관계는 크게 경색됐다. 
 
그러나 한국이 12월 8일 KADIZ 확대를 선포한 다음 날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한국 정부에서 비공식적인 통지를 받았다. 자위대와 한국군 사이에 사전 통보의 틀이 작동되고 있다”고 말했다. 사전협의를 거쳤기 때문에 반대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된다. 윤덕민 당시 국립외교원장은“여러 가지 상황이 잘 맞아떨어진 것도 있지만, 한국 정부가 일본 등 주변국에 사전 설명을 할 수 있는 물밑 채널이 살아 있었던 영향도 크다”고 설명했다.
 
러·중 군용기 KADIZ 진입과 러시아의 독도영공침범 러·중 군용기 KADIZ 진입과 러시아의 독도영공침범 그래픽 이미지.

러·중 군용기 KADIZ 진입과 러시아의 독도영공침범 러·중 군용기 KADIZ 진입과 러시아의 독도영공침범 그래픽 이미지.

 
반면 일본은 이번엔 독도 영공 문제를 이슈화하며 한국 때리기의 소재로 이용했다. “우리 영토에서 이러면 안 된다”며 독도의 분쟁지역화를 노리는 듯한 움직임을 다시 보여줬다. 2013년과는 달리 독도 문제가 전면에 등장한 것도 있겠지만 그 속내엔 한국을 공격할 수 있다면 동원 가능한 모든 재료를 동원한다는 일본 정부의 의도가 깔려 있다. 한국을 안보우려국으로 몰고 가려는 전략의 연장선이다.
 
한·일 갈등이 끝없이 악화되면서 미국이 나설 법 한데도 미국은 이번엔 소극적이었다. 볼턴 보좌관은 강경화 외교장관을 만나 “한ㆍ일 양국의 문제 해결을 지지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한·일 간 선해결이 우선이라는 입장으로 의도적인 중립을 지키려는 모습이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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