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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흥의 과학 판도라상자] 경제 보복과 과학기술의 독립

김기흥 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

김기흥 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

“스티브 잡스, 인공지능, 창업….” 학생들을 면담하다 보면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레퍼토리가 있다. 모두 스티브 잡스가 되고 싶고, 창업해서 큰돈을 벌고 인공지능을 공부하고 싶다는 것이다. 가끔은 자신만의 특정한 분야를 연구하고 싶다는 색다른 열정을 가진 학생을 만나고 싶어질 때가 있다. 최근 유행에 따라 특정 전공영역을 선택하는 쏠림현상은 대부분 이공계 대학에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학생들이 정신없이 연구에 매달리고 있는 실험실을 방문할 때마다 나의 우려는 그저 기우가 되면서 안도한다. 삼복의 폭염에도 묵묵히 실험에 매달리는 연구자들의 모습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현대 과학에서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중요한 잣대는 실험조건의 최적화 여부이다. 연구 주제에 따라 연구자들은 실험장비를 조립하고 세밀하게 균형을 잡고 조율하면서 최상의 실험조건을 만든다.
 
지금 일본의 일방적인 무역보복으로 인해 이슈의 중심에 있는 반도체도 이러한 연구 최적화의 대표 영역이다. 1960년대 이후 일본이 패권을 쥐고 있던 반도체 산업에 본격적으로 한국이 뛰어든 것은 1983년 삼성이 반도체 산업에 참여를 선언하면서부터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불과 10년 만에 한국은 세계 1위의 시장점유율을 성취했다. 물론 엄청난 성공 뒤에는 1985년 정부가 총 600억을 반도체 연구에 투입한 것과 같은 획기적인 지원과 기업의 과감한 투자가 있었다. 하지만 눈부신 성공의 중요한 비결은 제조공정을 안정화하고 최적화시킬 수 있었던 이른바 “라인 엔지니어”라 불리는 공학자들의 역할에 있다. 대부분 대학원에서 석사 이상의 교육을 받은 이들은 빠른 시간 안에 전체 반도체 공정을 효율적으로 작동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과학판도라상자 사진

과학판도라상자 사진

반도체 생산과정은 고도로 정밀하고 정교한 과정이다. 장비 설치와 작동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돌발 상황을 조절·통제할 수 있는 공학자들의 ‘능력’은 필수적이다. 일본의 수출 규제 품목 중의 하나인 고순도 불산(플루오린화수소)은 그 대표적 사례이다. 불산은 무색의 유독성 물질로 2012년 구미에서 유출되면서 5명의 노동자가 희생될 정도로 인간에게는 치명적인 위험물질이다. 또한 독성이 높다는 것은 다른 물질과의 화학적 반응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산의 풍부한 반응성으로 인해 반도체 생산에서 실리콘 기판(웨이퍼) 표면의 산화물 찌꺼기를 제거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현재 일본이 독점하고 있는 고순도 불산 생산을 국내에서 대체할 수 있다고 해도 문제는 간단히 해결되지 않는다. 엔지니어들은 미세조정을 통해 새로운 불산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전체 공정을 안정화해야 한다. 국산 고순도 불산의 대체 가능성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은 순도를 결정하는 기술력과 더불어 전체공정에 한 치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는 완벽한 미세조정에 달려있다.
 
일본의 갑작스럽고 일방적인 수출 규제는 한국의 기술체계를 흔들 수 있는 도발 행위이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이들은 기술 개발이 장기적인 방안이라 강조한다. 기술 개발은 반드시 그 기술을 최적화시킬 수 있는 엔지니어의 역할이 중요하다. 25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의 기술력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각자의 영역에서 한 우물을 팔 수 있는 저력과 내공을 갖도록 기초·응용과학의 다양성 확보가 중요하다. 과학기술의 다양성 확보는 다음에 밀어닥칠 수 있는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줄 열쇠가 될 것이다.
 
김기흥 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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