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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7주면 60만원”…법 개정 미적대는 사이 불법낙태 계속

낙태 헌법불합치 그후

임신 8주 된 태아의 초음파 사진. 2017년 기준 낙태 건수는 약 5만 건으로 추정된다. [중앙포토]

임신 8주 된 태아의 초음파 사진. 2017년 기준 낙태 건수는 약 5만 건으로 추정된다. [중앙포토]

“7주 5일이네요. 남편만 같이 오시면 오늘 저녁 바로 가능해요.”
 

“총선 표 의식, 나서는 의원 없어”
정부도 토론회 한번 안 열어
낙태 부르는 게 값, 현금 요구
수술 부작용 생겨도 하소연 못해

지난 24일 서울 강남구 A산부인과. 낙태(인공임신중절) 수술이 가능한지 묻는 기자에게 병원 측은 이렇게 안내했다. 병원 직원은 결혼 여부, 마지막 생리 시작일, 성관계 날짜 등을 물은 뒤 임신 주수를 계산했다. 그는 “보호자 동의를 꼭 받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부작용이 생길까 봐 걱정된다”고 말하자 “병원 생긴지 10년 넘었지만 사고 난 적이 한 번도 없다”라고 안심시켰다.
 
23일 경기도 성남시 B산부인과에서 만난 의사는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라면서도 낙태하려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는 “임신 기간이 길어질수록 수술이 위험해지고 비용이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의사 진료 후 따로 기자를 상담실로 안내한 간호사는 “수술비를 60(만원)으로 해드린다”며 “영양제는 5만원, 10만원짜리가 있다”고 했다. 염증이 생기지 말라고 쓰는 유착방지제에 10만원이 추가로 붙는다고 했다. 임신 주수가 올라가면 전(前)처치에 10만원 정도 더 든단다. 간호사는 “계좌 이체가 안 되고 무조건 현금”이라며 “수술 기록은 안 남는다”고 말했다.


검찰, 임신 12주내 낙태 기소유예 지침
 
지난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7대2의 의견으로 낙태죄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뉴스1]

지난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7대2의 의견으로 낙태죄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뉴스1]

지난 4월 헌법재판소가 낙태를 헌법불합치라고 결정한지 100일이 넘었지만 낙태가 더 공공연해지고 음성적인 형태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헌재는 낙태한 여성과 의사를 처벌하는 형법 조항을 헌법 불합치라고 결정했고, 2020년 12월까지 법을 개정하도록 주문했다.  
 
달라진 점이라고는 검찰이 지난달 낙태 사건 처리 기준을 만든 점이다. 임신 기간 12주 이내 낙태한 피의자는 재판에 넘기지 않는 기소유예 처분하고, 임신 12~22주는 기소 중지하기로 했다. 처벌을 유보한 것이다.
 
중앙일보가 지난 23~24일 서울·경기의 산부인과 20곳을 무작위로 골라 방문하거나 전화를 걸어 낙태 수술 가능 여부를 물었더니 13곳이 “가능하다”고 답했다. 2곳은 “원장 진료 후 할 수 있다” “일단 와보라”며 방문 상담을 유도했다. “안 한다”라고 잘라 말한 곳은 5곳이었다. 부르는 게 값이고,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는 핑계로 현금 결제를 요구했다. 당일치기 수술을 할 정도로 낙태 여성의 안전성 같은 것은 뒷전으로 밀려있다.
 
법 개정 시한까지 남은 시간은 1년 5개월이다. 그때까지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은 여전히 몰래 낙태가 가능한 병원을 찾아다녀야 한다. 병원에서 얼마를 제시하더라도, 수술 부작용이 생기더라도 홀로 감당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2월 공개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7년 국내 낙태 건수는 연간 4만9764건으로 추정된다. 대부분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탓에 실제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낙태(인공임신중절) 추정치, 낙태 결심한 이유,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낙태(인공임신중절) 추정치, 낙태 결심한 이유,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성 경험 있는 여성 중 10.3%, 임신한 적 있는 여성 중 19.9%가 낙태를 경험했다. 낙태 수술을 받은 여성 8.5%는 자궁천공·자궁유착증·습관성 유산·불임 등 후유증을 경험했다. 하지만 이 중 43.8%만 치료를 받았다. 또 54.6%는 죄책감·우울·불안·자살충동 등 정신적 후유증을 겪었지만 이 중 14.8%만 치료 받았다. 어디 드러내놓고 말할 수가 없어서였다.
 
의사도 위험을 감수하는건 마찬가지다. 김동석 산부인과의사회장은 “법이 여전히 살아있는 상황이라 의사 입장에선 위험 부담이 크다. 수면 아래서 암암리에 이뤄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40대 산부인과 전문의는 “좋아서 (낙태 수술을) 하는 의사가 어디 있겠느냐. 자칫 처벌을 받을 수 있지만, 원치 않는 임신한 여성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한다”라고 털어놨다.
 
정부는 조용하다. 보건복지부·법무부·여성가족부는 “법 개정 작업을 준비 중”이라는 입장이다. 이제껏 제대로 된 토론회 한번 열지 않았다. 손문금 복지부 출산정책과장은 “그간 헌재 결정문을 분석하고, 의료계·법조계·여성계를 차례로 만나 의견을 수렴했다. 쟁점이 워낙 많아 시간이 상당히 걸린다”라고 설명했다.
 
국회도 묵묵부답이다. 지난 4월 헌재 결정 직후 이정미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낙태죄 폐지’ 법안 외에 별다른 입법 움직임이 없다. 이 의원 법안은 상임위에 묶여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국회 파행이 이어져 제대로 된 논의를 시작하지 못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종교계 반발을 의식해 총대 메려는 의원이 없다”라며 “섣불리 나섰다 불씨를 건드리는 꼴이 될까 봐 눈치 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 “여성 보호 위해 개정 서둘러야” 
 
전문가들은 건강권 보호를 위해 법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동식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입법 공백 동안 낙태는 여전히 여성과 의사 간 문제로 남게 된다”라며 “건강보험을 적용해 취약계층 여성을 보호하고, 부작용 관리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낙태가 합법화된 나라에서도 우리나라처럼 ‘당일 낙태’가 가능한 나라는 없다. 대부분 상담·숙려(熟慮·곰곰이 생각하거나 궁리함) 제도를 두고 있고, 저소득층·청소년은 건강보험으로 지원한다.
 
이에스더·황수연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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