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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장수' 추경 2주 남았는데···의원님들이 야속합니다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에 정지 표시판이 놓여져 있다. 지난 19일 6월 임시국회 기간이 끝나서 추가경정예산(추경)안 처리는 일단 무산됐다. [뉴스1]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에 정지 표시판이 놓여져 있다. 지난 19일 6월 임시국회 기간이 끝나서 추가경정예산(추경)안 처리는 일단 무산됐다. [뉴스1]

 
꼭 석 달 이틀 전입니다. 태어난 지 하루 만에 서울 여의도로 왔어요. 이곳에서 숨죽인 지 어느덧 94일이 지났네요. 우량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작은 몸집도 아니라 답답해요. 저, 6조7000억원 짜리거든요. 맞아요. 사람들은 저를 ‘추경이’라고 부릅니다. 제 갑갑한 사정 한 번 들어보실래요.
 
탄생은 그럴싸했습니다. 정부세종청사 국무회의실에서 4월 24일 처음 빛을 봤어요. 누가 만들었냐고요? 말하자면 복잡한데…. 손수 모습을 빚은 건 기획재정부 공무원들입니다. 산고(産苦)를 거친 기재부 국장님이 국무총리 의결 이튿날 절 국회 사무처 의안과에 데려다줬어요. 그때부터 “빨리 처리되긴 힘들 것”이란 귀띔을 듣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늦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다들 기억하시죠. 올봄 미세먼지 때문에 힘들었던 거. 출근길 한 치 앞이 안 보였던 3월 어느 날, 문재인 대통령께서 “필요하다면 추경을 긴급 편성하라”고 제 이름을 부르셨대요. 이쯤에서 말씀드리는 제 풀네임은 ‘2019년도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입니다. 올해 예산안을 시행한 지 두 달 만에 예산 추가를 논하신 건데, 시작부터 야당에선 ‘땜질식 예산 편성’,‘총선용 정치 추경’이라는 비난이 나왔죠. 패스트트랙 사태로 한창 국회가 싸움터였던 때라 더 암울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주재하며 추경 필요성을 강조했다. 왼쪽부터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낙연 국무총리, 문 대통령,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이인영 원내대표, 이제민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주재하며 추경 필요성을 강조했다. 왼쪽부터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낙연 국무총리, 문 대통령,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이인영 원내대표, 이제민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연합뉴스]

 
그런데 왜 불길한 해석은 틀리는 법이 없을까요. 그때부터 본격 ‘땜질’이 시작됐습니다. 4월 강원도에 산불이 나자 정부는 제 컨셉을 ‘재해·재난용 추경’으로 잡아줬어요. 미세먼지 대책에 산불 지원, 포항 지진피해 지원을 덧붙인 것까진 그래도 참을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죠. 지금 제 모습 좀 보세요. 일자리 사업, 경기 부양용 민생 대책, 성장률 대책은 물론이고 일반 예산 소요 대책까지 모조리 쓸어 담아 ‘누더기 추경이’란 별명까지 얻게 됐잖아요. 어휴.
 
더 끔찍한 건 제가 ‘국회 장수 추경이’ 1등 기록을 갈아치울 태세라는 겁니다. 19년 전(2000년) 김대중 정부 때 107일 표류한 추경이가 지금까지 제일 오래 기다린 기록이래요. 세상에… 2주만 지나면 저 기록 깨요. 그 안에 어떻게든 여야가 합의를 봤으면 좋겠는데 그간 행태를 보니 어림없겠습니다. 한국당이 ‘독소 예산’, 사전 선거운동용’을 운운하더니 최근엔 ‘경제청문회’, ‘국정조사’도 모자라 ‘정경두 해임안’까지 들이밀며 맞바꾸자고 하더군요. 
 
자유한국당 '재해 및 건전재정 추경 긴급토론회'가 지난 6월 국회에서 열렸다. 나경원 원내대표(가운데)가 회의에 참석하며 김광림 최고위원과 악수하고 있다. 오른쪽은 정양석 원내수석부대표. 변선구 기자

자유한국당 '재해 및 건전재정 추경 긴급토론회'가 지난 6월 국회에서 열렸다. 나경원 원내대표(가운데)가 회의에 참석하며 김광림 최고위원과 악수하고 있다. 오른쪽은 정양석 원내수석부대표. 변선구 기자

 
야속하긴 민주당도 마찬가집니다. 국회를 떠돌다 들어보니 사정을 잘 아는 어떤 의원님은 “지도부가 협상 요령과 의지가 없다. 무조건 외골수 통과를 고집할 게 아니라 야당과 서로 주고받는 딜(거래)을 시도해야 한다”고 개탄하시더라고요. 실은 대통령이 절 강조하며 부르는 말씀도 자꾸 반복되니 저도 슬슬 식상해지더군요. 야당이 ‘깜깜이 예산’이라며 계속 “구체적 내역을 달라”는데 민주당은 왜 계속 저를 베일에 쌓아 두는지도 모르겠어요. 혹시 신비주의?
 
이달 초 일본이 경제 보복을 시작하면서 전 또 몸집을 불리게 됐어요. 3000억원을 더할지, 8000억원을 더할지, 2700억원을 추가할지를 두고 들쑥날쑥 말이 많았죠. 사실 재작년 슈퍼 추경(11조원)과 지난해 미니 추경(3조8000억원)에 비하면 제 체급(약 7조원)은 중간쯤 됩니다. 지난 3월 국제통화기금(IMF)이 권고했던 추경 규모는 9조원이래요. 좀 더 커져도 되겠다고요? 글쎄요. 제 조달비용의 절반 이상(3조6000억원)을 적자 국채 발행으로 충당하는 걸요. 현 정부 들어 처음 있는 일입니다.
 
지난 18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기재부, 국세청, 관세청, 통계청, 조달청 직원들이 회의장 밖에서 TV로 기관장들의 답변을 지켜보고 있다. 이날 추경안 처리는 끝내 무산됐다. [연합뉴스]

지난 18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기재부, 국세청, 관세청, 통계청, 조달청 직원들이 회의장 밖에서 TV로 기관장들의 답변을 지켜보고 있다. 이날 추경안 처리는 끝내 무산됐다. [연합뉴스]

 
요즘 정부와 여당에서는 자꾸 절 두고 “타이밍을 놓쳤다”고 해요. 7월 말이 되니 날씨도 덥고, 정신이 혼미해지긴 하네요. 이렇게 끌다간 내년도 예산안 제출(9월 3일)이 임박해 아예 국회 귀신으로 사라져버릴지도 모르겠네요. 처리 시한만 갱신하는 의원님들, 제 말 들리시나요? 내년엔 부디 기억해주세요. 추경이는 선거 해결사도, 만병통치약도 아니라는 걸.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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