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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력에 휘둘리는 중앙은행…통화정책 시계 추 30년 전으로 회귀

중앙은행 총재는 ‘통화의 사제(Monetary Priest)’로 불리곤 했다, 세속의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돈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바람에서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그 바람이 현실화되는 듯했다. 1980년 이후 ‘중앙은행 독립=물가 안정’이 상식으로 자리잡았다. 세속의 권력자들은 적어도 대중 앞에선 중앙은행가의 권능을 존중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통화정책 탈정치화’였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을 드러내놓고 압박한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정상들은 정치인 출신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를 다음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로 선택했다. 터키에서는 중앙은행 총재가 갑작스럽게 교체됐다. 통화정책의 정치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중앙은행의 역사·정치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 의미와 파장을 진단해본다.

존 우드 미 웨이크포레스트대 교수
금융위기 이후에 준칙주의 깨져
양적완화·제로금리 등 비정통 정책

중앙은행·금융시장 영향력보다
일반 시민의 목소리 더 강화될 것

 
“역사적 회귀다.”
 
존 우드

존 우드

존 우드 미국 웨이크포레스트대 교수(경제학·사진)의 진단이다. 그는 중앙SUNDAY와 전화 인터뷰에서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까지 약 30년 동안 중앙은행가들이 누린 독립성은 예외적인 일”이라며 “그 시대가 지났다”고 말했다. 우드는 Fed 경제분석가로 활동한 뒤 학계에 뛰어들어 『영국과 미국의 중앙은행 역사』등을 쓴 대표적인 통화정책 역사가로 꼽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통화정책에 노골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통화정책 역사를 아는 사람에게 트럼프가 별난 사람아 아니다. 대통령이 통화정책을 주문하고 압박한 일은 2차대전 시기부터 1970년대 사이엔 아주 흔한 일이었다. 최근 한 세대(30년) 사이에 트럼프같은 권력자가 드물었을 뿐이다.”
 
누가 트럼프만큼 통화정책에 개입했는가.
“거의 모든 미국 대통령이 통화정책에 개입했다. 좀 더 두드러지게 개입한 대통령을 꼽는다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1953~61년)와 린든 존슨(1963~69년) 등이다. 대통령이나 의원 선거가 다가오면 백악관의 주문이 늘어나곤 했다.”
 
요즘 이코노미스트들은 트럼프 압박을 ‘예전에 없던 일’이라고 한다.
“이코노미스트들이 기억 너머 역사를 잘 알지 못한다. 1980년대 이후 약 30년 동안에는 대통령이 노골적인 압박이나 주문을 하지 않은 척했다. 나는 그 시대를 ‘중앙은행 독립의 시대’가 아니라 ‘독립적인 듯 보인 시대’라고 부른다.”
 
트럼프 이전 미 대통령들도 개입
 
사실 2008년 위기 때까지 약 30년 동안 주요 나라 중앙은행은 독립을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준칙(rule)주의였다. 사전에 정해진 준칙에 따라는 돈 줄을 쥐었다 풀었다하는 방식이다.
 
준칙주의가 충분히 뿌리내리지 못한 듯하다.
“준칙주의의 정치경제적 의미는 통화정책 탈정치화다. 대통령이나 총리의 정치적 주문이 아니라 경제의 흐름에 따라 통화를 긴축하거나 완화하는 방식이다. 준칙주의는 사뭇 정태적이다. 경제 상황이 평온했을 때 가능하다. 위기 탓에 사회적·정치적 갈등이 심해지면 준칙주의가 유지되기 어렵다. 실제 위기가 모든 것을 뒤흔들었다.”
 
2008년 위기를 말하는 것인가.
“그렇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 일본 등이 대형 금융그룹이 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모든 자원을 동원했다. 중앙은행의 통화수단까지 동원했다. 경제가 침체에 빠지면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급증하고 파산자가 늘었다. 통화정책 정치화의 시작이었다. 이후 제로금리 정책과 양적 완화(QE) 등 80년대 이후 한 세대 사이에 경험하지 못한 비정통 정책이 채택됐다. 게다가 요즘엔 국제정치적 사건까지 더해졌다.”
 
국제정치적 사건이란 무엇인가.
“무역전쟁이다. 트럼프가 보호무역주의를 택한 것은 경제논리가 아니라 정치적 셈범이었다. 무역전쟁 등은 중앙은행가들이 최근 20~30년 사이에 경험해보지 못한 변수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최근 한국과 일본 사이에도 비슷한 일이 시작됐다. 일본이 반도체 소재의 수출을 사실상 제한하고 나섰다.
“비슷한 일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국제정치적 리스크도 중앙은행가들에 대한 정치적 압력으로 작용한다. 무역전쟁에 대비해 기준금리를 내리는 것들이다(한국은행은 최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렸다). 중앙은행의 시계 추가 탈정치의 시대에서 정치화의 시대로 회귀하는 듯하다.”
 
통화정책 정치화는 일시적인 현상이지 않을까.
“많은 이코노미스트들이 QE나 제로금리 정책이 단기에 그칠 것으로 봤다. 통화정책 정상화(Back to Normal)가 2016년 즈음부터는 본격화할 것으로 봤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주요 중앙은행이 다시 통화 완화에 나서는 모습을 보고 있다. 경제상황이 좋지 않고 무역전쟁이 이어지면서 정치 권력자들의 압력이 거세지고 있어서다.”
 
경제 활력 위해 돈의 가치 덜 중시
 
평소 우드 교수는 중앙은행을 ‘정치적인 조직’이라고 말해왔다. 이는 그가 Fed의 이코노미스트로 일하면서 본 통화정책 결정과정을 바탕으로 한 말이다.
 
왜 정치적 조직이라고 말했는가.
“17세기 영란은행(BOE)도 당시 주요 세력의 타협의 산물이었다. 영란은행이 너무 먼 이야기라면, 현재 Fed의 연방공개시장정책위원회(FOMC) 구조를 보라. 멤버 12명 가운데 7명이 대통령에 의해 지명된 사람들이다. 구조적으로 대통령의 뜻이 전달될 수밖에 없다. 물론 Fed 초기에 그렇지는 않았다.”
 
언제를 말하는 건가.
“1913년 Fed 설립 이후 35년까지 20여년 간이다. 그때는 Fed 이사들이 재할인율 등을 직접적으로 결정하지는 않았다. 지역 준비은행이 결정한 재할인율을 추인하는 방식이었다. 1935년 은행법 개정 이후 이사들이 FOMC에서 의결권을 갖게 됐다.”
 
정치화 시대 통화정책은 어떻게 결정될까.
“단기적으론 중앙은행가들의 경기 판단에 따라 이뤄질 것이다. 겉으론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돈에 대한 통제’가 크게 바뀔 수 있다.”
 
무슨 뜻인가.
“나는 『민주주의 체제의 통화정책』이란 책에서 앞으로 통화관리가 월가와 중앙은행가들이 아닌 일반시민(public)의 요구에 의해 이뤄지는 시대가 부활한다고 말했다. 이는 통화정책 정치화의 또 다른 표현이다. 중앙은행가들이 독립적일 때 거품과 위기를 막지 못해 국민의 신뢰를 잃어서다. 역사를 보면, 정치화 시대 금리는 낮았다. 경제 활력과 일자리를 위해 돈의 가치가 덜 중시된다.”
 
차기 ECB 총재 라가르드, 정치 DNA 강해
라가르드

라가르드

“성격이 다른 존재다.”
 
존 우드 미국 웨이크포레스트 교수가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사진)를 두고 한 말이다. 라가르드는 올 11월 1일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에 취임한다. 그는 ECB총재 가운데 유일하게 경제학을 공부하지 않았다. 법학과 영어를 주로 공부했다. 이런 라가르드의 ECB 총재 취임을 두고 우드 교수는 “불문율 하나가 깨졌다”고 말했다. 애닐리스 라일스 미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라가르드가 중앙은행가들의 모노 컬처 사회에 뛰어든 이방인”이라고도 평했다.
 
실제 최근까지 각국 중앙은행가들은 이른바 ‘정통 경제학 훈련을 받은 사람’이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글로벌 중앙은행가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우드 교수는 “중국마저도 인민은행 행장을 뽑을 때 중앙은행가 사회에서 인정받고 교유할 수 있는 인물인지 아닌지를 살필 정도”라고 말했다. 실제 라가르드가 IMF 총재로서 활동했지만 “중앙은행가 연찬회 등에서 그의 말을 주목한 사람은 드물었다”고 라일스 교수는 전했다.
 
그런데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정상들이 라가르드를 선택했다. 물가안정을 위한 중앙은행 독립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설계된 ECB 수장에 중앙은행가보다 정치인 유전자(DNA)가 강한 인물을 고른 셈이다. 통화정책 정치화가 ECB에서도 한층 강화될 가능성이 엿보인다. 우드 교수는 “통화정책 정치화가 심했던 1970년대 미 중앙은행가들은 대부분 법률가이거나 시중은행가 출신이었다”며 “반면 중앙은행가들이 독립성을 추구한 1980년 이후엔 거시경제학이나 금융을 공부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존 우드 미국 오하이오대를 졸업한 뒤 퍼듀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시카고와 댈러스, 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에서 이코노미스트로 일하다 워싱턴 Fed 본부에서 수석 분석가로 활동했다. 학계에 진출한 뒤에는 영국 버밍험대와 와튼비즈니스스쿨(유펜)을 거쳐 지금은 노스캐롤라이나에 있는 웨이크포레스트대에서 거시경제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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