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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전범 기업 고발한 프랑스 소설

그날 비밀

그날 비밀

그날의 비밀
에리크 뷔야르 지음

에리크 뷔야르 『그날의 비밀』
역사의식 살린 공쿠르 수상작

이재룡 옮김
열린책들
 
1933년 2월 20일 독일 베를린 슈프레 강가의 국회 의장 궁전. 귄터 크반트, 구스타프 크루프 등 스물네 명의 독일 산업·금융계 최정점의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바이마르공화국 파울 폰 힌덴부르크 대통령에 의해 총리에 지명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치당의 아돌프 히틀러와 헤르만 괴링 국회 의장을 ‘알현’하기 위해서였다. 괴링은 “경제 활동을 위해서는 견고하고 안정된 체제가 요구된다”며 참석자들에게 거침없이 정치헌금을 요구했다.
 
뇌물과 뒷거래에 이골 난 사업가들로서는 새로울 게 없는 제안이었다. 거액을 헌금한 이들에겐 일상적이고 진부한 모금 활동이었다. 정경유착은 이렇게 스멀스멀 다가와 종국에는 대재앙으로 이어졌다. 호적상의 이름만 듣고는 그들을 잘 모를 수도 있다. 바스프·바이엘·아그파·IG 파르벤·지멘스·알리안츠·텔레풍켄이라면 쉬울까. 스물네 명의 신사들은 이들 대기업의 위임자, 사제들에 불과했다.
 
이런 내용으로 시작하는 『그날의 비밀』은 역사책이 아니다. 나치 정권의 출발과 몰락 사이에 일어났던 일들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꼬집고 할퀸 역사소설이다. 사건들을 드라마 보는 것같이 생생하게 전개한다. 뷔야르가 자신의 작품을 ‘소설’이 아닌 ‘이야기’라고 부르는 이유다.
 
나치 독일에도 정경유착이 있었다. 지금도 건재한 기업들이 나치에 협력했다. 당시 히틀러의 모습. [사진 Bundesarchiv]

나치 독일에도 정경유착이 있었다. 지금도 건재한 기업들이 나치에 협력했다. 당시 히틀러의 모습. [사진 Bundesarchiv]

에드워드 우드 핼리팩스 영국 추밀원 의장이 1937년 11월 히틀러와 만나 ‘민족주의와 인종 차별주의는 비윤리적이라고 생각지 않는다’고 한 일화.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강제합병하기 한 달 전인 1938년 2월 쿠르트 슈슈니크 오스트리아 총리가 베르히테스가덴에서 ‘굴욕적’인 모습으로 히틀러와 회담한 장면. 이어 슈슈니크가 강압을 못 이겨 사퇴하고 나치당원 자이스잉크바르트가 오스트리아 총리에 지명된 사건. 히틀러의 나치 독일군이 엉터리 판처 탱크를 몰고 오스트리아를 접수하려 빈에 입성한 스토리. 파울 요제프 괴벨스 나치 선전장관에 의해 교묘하게 편집된 역사적 현장들. 부헨발트·마우트하우젠·파펜부르크·니츠바일러·다하우·플로센뷔르크·라벤스브뤼크·작센하우젠·아우슈비츠 같은 수많은 강제수용소에서 죄수를 값싸게 빌려와 공장을 가동한 독일 기업들의 이야기.
 
도입부에 나오는 1933년 2월 20일 회합에서 히틀러에게 헌금했던 기업가들도 물론 여기에 거의 다 포함돼 있다. 이들은 나치당원의 금배지가 있던 자리에 자랑스럽게 연방 공로 십자 훈장을 달고 다닌다. 그들은 아직도 건재하며 그들의 재산은 엄청나다.
 
프랑스인 작가 에리크 뷔야르의 이 소설은 시종일관 반나치적이다. 히틀러와 괴링, 괴벨스 등을 다시 한번 엄중히 비판하고, 그들의 조역들로 활동한 기업가들의 가공할 만한 생존본능을 부각했다. 우리로 따지면 반일본제국 소설쯤 될 것이다. 2차대전 중 헐값에 팔려 온 조선인 강제징용의 덕을 봤던 일제 기업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지금 이들에 대한 배상판결을 두고 한·일 간에 전후 최악의 갈등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기도 하다.
 
얼핏 보면 별로 새로울 게 없어 보이는 게 이런 종류의 역사소설의 특징이긴 하다. 그렇다면 150쪽도 채 안 되는 이 짧은 소설이 2017년 프랑스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공쿠르상을 받게 된 동력은 뭘까. 유대인은 물론 인류에게 치명적인 비극을 가한 나치 독일의 서사를 가능케 한 전범 기업들과 조연들을 깊숙이 비춰 보고 그 잔상을 제대로 드러내게 한 공로도 작용했을 것이다. 한나 아렌트가 지적한 ‘악의 평범성’을 새삼 일깨워 준다. 뷔야르가 되씹은 과거사는 지금도 독일에서 그리고 일본에서 반복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제목의 소설이 나올 수 있을까.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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