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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적 적개심 끼어든 한·일 갈등, 이성의 길 찾아야

빠른 삶, 느린 생각

김우창 삽화 7/27

김우창 삽화 7/27

지난달 19일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는 90회 생일을 맞은 위르겐 하버마스 교수의 기념 강연이 있었다. 강연은 700명 정도를 수용하는 강당에서 열렸는데, 인접한 5개의 강의실에도 중계되어 모두 3000명 정도의 청중이 청강하였다. 놀라운 것은 독일 연방정부의 문화부 장관이나 대통령 등 정치계에서 경의를 표했다는 점이다. 이런 넓은 관심, 그리고 정치인들의 관심은 독일 또는 유럽 문화의 특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 뿌리는 이성의 힘
최근 이윤 경제로 윤리 의식 흔들
민족주의=애국심 선동도 위험수위
이성적 담론의 공간 재구성할 때

‘디 치이트’에 실린 슈타인마이어 연방 대통령의 축사는, 주례사나 축사에서 흔히 보는 바 의례적인 글이라고 할 수 없다. 그는 하버마스 교수를 “독일을 넘어 세계적으로 독자를 확보한 비판적 이성의 목소리”이며 “현대라는 시대의 어두운 수렁을 헤치면서, 인간 해방의 남아있는 요구를 포기하지 않은 계몽가이자 그 실천의 현실 조건을 파헤치는 지식인”이라고 칭송한다. 보다 해방된 사회에 이르는 데에는 민주적인 대화의 심화가 필요하다. 독일이 2차대전의 큰 과오를 깨닫고 얻은 것이 자유민주주의이다. 그리고 독일은 평화의 세계 질서를 수립해나가는 길이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그리하여 좁은 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세계 전체에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90세 하버마스 강연에 독일 정부도 경의
 
‘디 차이트’에는 문예 편집자인 토마스 아쓰호이어의 논평이 실려 있다. 제목은 ‘역사의 언덕 속 이성의 두더지’이다. 이 기이한 제목은 하버마스 교수의 강연에 나오는 마르크스의 표현으로서, 인간 역사의 진보를 추동하는 것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는 인간의 이성 또는 역사의 이성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아쓰호이어의 글에서 제목은 아이러니를 가진 것으로 들리기도 한다. 복잡하기 짝이 없는 현대 사회에서 두더지 이성으로 역사적 발전을 기획할 수 있느냐는 뜻을 암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연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연장에 화재 경보가 울렸다. 그리하여 강연자를 포함하여 청중들이 강연장 밖으로 피해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화재 경보는 잘못된 것으로 판명되고, 중단되었던 강연이 다시 시작될 수 있었다. 아쓰호이어의 글은 이 잘못된 화재 경보에 대한 언급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하여 독자는 이 작은 실수에도 쉽게 대응하지 못하는 철학 이론과 그 이론의 강연자가 어떻게 엄청난 정치 경제 사회의 문제를 이성의 두더지에 의지하여 처리해내겠다는 것인가하는 의문을 가졌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쓰호이어의 해재(解題)는 전체적으로 하버마스 강연에 그대로 맞아들어간다. 시대의 문제들이 엄청나기는 하지만, 실낱 같이 가느다랗다 하여도, 이성의 길 이외에 달리 어떤 길이 있겠는가?
 
하버마스 교수의 강연 제목은 ‘다시 한 번, 도덕과 윤리의 관계에 대하여’이다. 그가 말하는 것은 도덕과 윤리는 상호관계 속에 있으나, 도덕은 다시 한번 우위에 놓여서 마땅하다는 것이다. 강연은 일찍이 어느 철학 회의에서, 미국의 철학자 리처드 로티 교수가 한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로티 교수가 “독일인은 아직도 칸트와 헤겔 사이를 헤메고 있는가”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로티 교수의 말을 상기하는 것은, 이번 강연도 이 두 철학자를 논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철학자에 추가하여, 마르크스가 거론된다.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에서 신(新) 마르크스주의 철학 속에서 이론을 다듬었던 그에게 이것은 자연스럽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강연에서 중심이 있는 것은 칸트이다. 자유민주주의가 크게 자리하고 있는 오늘의 세계에서, 그 가능성을 개발하고 절제하는 데에 칸트의 생각이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버마스 교수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칸트의 자율의 개념이다. 자율은 한편으로 사고와 행동의 주체로서의 개인의 자유를 가리키고, 다른 한편으로 그 주체가 스스로 받아들이는 기율을 말한다. 그 기율은 개인의 선택과 결단에서 나오면서, 절대적으로 준수하고 수행하여야 하는 의무를 명한다. 판단을 내리는 것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도덕적 이성이다. 이 이성은 개인의 스스로에 대한 집착 또는 ‘자애(自愛)’와 함께 그것이 모든 인간에게 두루 해당됨을 인정한다. 그리하여, 자율의 결정은 ‘보편성’을 가진 이성적 판단이 된다. 여기에 대하여, 헤겔은 개인이 사회 집단 속에 있고, 사회의 전체적인 움직임이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 안에서 일정한 삶의 형식과 윤리가 형성된다. 이것은 정치와 법과 제도로 정착하고 법치 국가를 탄생하게 한다. 그러니까 개인의 이성적 판단은 사실상 역사를 움직이는 ‘절대정신’의 통제 하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 경제에 주의를 기울인 마르크스의 관찰로는 이렇게 객관화된 이념이나 제도는 계급적 특권을 옹호하고자 하는 현실 권력의 이데올로기적 표현에 불과할 수 있다.
 
하버마스의 강연은 헤겔과 마르크스의 관찰의 정당성을 인정하면서, 다시 칸트로 돌아간다. 사회적 삶 속에 드러나는 윤리 또는 그 물질적 토대에 의한 왜곡을 탐지해 낼 수 있는 것은 도덕적 이성이다. 다만 이때의 이성은 개인의 주체에서 나오는 것이면서, 공동체 전체에 연결된 것이라야 한다. 하버마스 교수의 저작과 이론의 정점은 그의 저서 『소통 행동의 이론』 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랑크푸르트 강연에서도 중심에 놓여 있는 것은 소통 이론이다. 앞에서 말한바 사회적 윤리나 그 물질적 경제적 기초를 평가할 수 있는 도덕적 이성은 사회 공동체 성원의 소통을 통하여 형성되고 확장된다. “고독한 개인의 이성의 논단이 소통 속에서 사회화된 다수 주체의 공적인 법 제정의 차원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26일 서울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뒤로 일본 제품 불매 포스터가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26일 서울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뒤로 일본 제품 불매 포스터가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여기의 참여자는 사회 성원 모두를 가리킨다. 그것은 불평등한 사회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 전부를 포함한다. 소통 과정 속에서 참여자들은 보다 나은 논리를 따르고, 상대방의 관점의 논리에 동의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자신의 판단이 잘못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도덕적 보편적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자유의지 속에서 이루어진다. 칸트가 주장하듯이 사람은 근본적으로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고 자유로운 존재이다. 여기에 추가되는 하버마스 특유의 주장은 사람은 자유로우면서도, 모든 사람이 자유로울 때까지는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소통 공간에 대한 논의에 추가하여, 하버마스 교수는 문화의 차이에 대하여 언급한다. 소통 공동체는 문화적 차이 그리고 문화적으로 달리 규정되는 가치들을 널리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지방 문화의 차이가 강하다고 할 수 있는 연방국가 독일을 두고 말한 것이기도 하지만, 유럽연합의 경우를 생각한 것이다. 소통의 민주주의는 민족 이기주의, 국가 단위의 경제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유럽 전체의 초국가적 차원에서 확인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세계적 차원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 금융자본주의의 이윤 경제의 팽창, 그리고 그 환경으로서의 세계화는 이성적 도덕 그리고 사회적 윤리 의식을 무력화힌다. 그 외에도 여러 요인으로 하여 이제 국가 단위의 소통 공동체를 구성하던 힘은 일단 소진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성의 두더지’는 계속 역사의 언덕 깊이 파들어 갈 것이다. 하버마스 교수는 칸트의 이성의 힘을 가장 위대한 계몽 철학의 업적으로 확인하는 것으로써 그의 강연을 끝낸다.
  
‘이성의 두더지’ 역사의 언덕 파들어 갈 것
 
국제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는 하버마스 교수의 강연은 그 자체로도 중요한 사건이지만, 여기에서 그것을 되돌아보는 것은 오늘의 우리 현실이 그가 설명하는바 이성의 힘 그리고 이성적 도덕의 힘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버마스 교수의 중요 관심사의 하나는 유럽연합의 정치적, 제도적, 도덕적 단합이다. 역사적으로 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오래 동안 적대적 관계 속에 갈등해 왔으나 2차대전 이후 점진적으로 하나의 평화 연합을 구성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유럽연합이 그 열매의 하나이다. 물론 다시 그 연합에 균열이 생겨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버마스 교수도 “민족주의적 적개심”이 재발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성 또는 이성적 도덕의 담론의 공간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동아시아는 근대에 들어서서, 서로 적대적인 관계에 들어 갔다가 최근에 와서는 비교적 평화적인 관계로 진화해 가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이 과정은, 특히 한일 관계에서, 와해될 수 있다는 느낌을 준다. 민족주의적 적개심이 애국심의 절정이라고 선동하는 경향들이 타나난다. 요구되는 것은 초국가적인 이성을 회복하고 이성적 담론의 공간을 구성해 가는 일이다. 그리하여 동아시아를 평화스러운 삶의 공간으로 확보하고, 세계의 평화 질서에 기여하는 일이다. 그 안에서 나라의 안정과 번영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고려대 명예교수. 서울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미국문명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년 첫 저서 『궁핍한 시대의 시인』 이후 『지상의 척도』 『심미적 이성의 탐구』 『자유와 인간적인 삶』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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