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마오가 아낀 덩화 “정면 강한 미군, 갈라쳐서 포위해 섬멸”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587> 

평안북도 창성군 동창면은 느릅나무(楡)가 많았다. 첩첩산중에 유난히 울창한 지역이 있었다. 지나가던 시인이 대유동(大楡洞)이라 이름 붙였지만, 다들 느릅나무골이라 불렀다. 식민지 시절 금맥이 발견되면서 외지인들이 몰려왔다. “조선 제2의 금광 대유동”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금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풍광이 수려했던 느릅나무골에 귀신 콧구멍 같은 동굴들만 남았다. 훗날 중국 지원군 수뇌부가 전쟁 지휘부를 차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한국군·유엔군 상황 파악 끝내고
펑더화이에게 저지 대책 보고
국·공 내전 때 ‘마오의 그림자’ 청푸
“매복했다가 목을 졸라 버리면 돼”

서른 살 청푸, 거침없이 작전계획 보고
 
국·공전쟁 말기 해방군 시절의 청푸. 청푸는 사진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사진 김명호]

국·공전쟁 말기 해방군 시절의 청푸. 청푸는 사진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사진 김명호]

1950년 10월 25일 새벽 6시 대유동, 중국 지원군 총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팽덕회)가 지휘관들을 소집했다. 사령부 성립 선포와 함께 첫 번째 작전회의를 열었다. 작전실 주임 청푸(成普·성보)가 한반도 지도를 펼쳤다. 서른 번째 생일 갓 지난 청푸의 보고는 거침이 없었다. “남한군과 유엔 연합군이 여러 경로로 북진 중이다. 고양동을 점령한 6사단 선발대의 목적지는 초산으로 단정해도 된다. 영원에 도달한 8사단은 희천에서 방향을 틀었다. 돼지고기로 유명한 강계 근처에 와 있다. 1사단은 영변을 통과했다. 창성으로 향하고 있다. 영국군 27여단은 안주를 거쳐 신의주 방향으로 진군 중이다. 미국 기병 1사단과 보병 1사단이 24·25사단과 함께 평양에 집결했다. 미 해병 1사단과 보병 7사단은 원산에 상륙했다.”
 
한동안 작전지도와 청푸를 주시하던 펑더화이가 입을 열었다. “대책도 말해 봐라.” 청푸는 운산에서 온정에 이르는 지역을 지목했다. “저들의 중점 공략지역이다. 이 일대에 매복해 있다가 어주옌허우(扼住咽喉·액주인후), 목을 졸라 버리면 된다.” 펑더화이는 흡족했다. 청푸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엉덩이는 주석 몫이다. 상하지 않게 잘 간수해라.” 지휘관과 참모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이유가 있었다.
 
청푸는 1937년, 18세 생일날 항일전쟁 발발 소식 접하자 고향을 등졌다.  
 
6개월간 굶기를 밥 먹듯 하며 중공의 항일근거지 옌안(延安)까지 걸어갔다. 항일군정대학에 입학해 두각을 나타냈다. 어찌나 총명했던지 교장 린뱌오(林彪·임표)가 애지중지했다. 어린 나이에 조직과 작전 부서 거치며 온갖 별꼴을 다 겪었다. 항일전쟁 막바지엔 총참모부 작전실에 근무하며 전쟁이 뭔지를 터득했다. 일본 패망 후 국·공내전이 터졌다. 옌안을 포기한 마오쩌둥이 벽촌 전전하며 전쟁을 지휘할 때 청푸는 마오의 그림자였다. 마오는 청푸의 의견 듣기를 좋아했다. 거침없는 얘기 들을 때마다 기특하다며 엉덩이 두드려주곤 했다. 이런 우스갯소리가 퍼졌다. “청푸의 엉덩이는 주석이 맡아놨다. 부인될 사람이 걱정이다. 결혼할 때까지 남아날지 모르겠다.” 펑더화이나 저우언라이(周恩來·주은래)도 청푸를 칭찬할 때 어깨만 쓸어주며 웃었다.
 
펑더화이의 눈길이 덩화(鄧華·등화)를 향했다. “너는 장기전에 익숙한 지휘관이다. 전쟁 초기 동북변방군 사령관이었다. 압록강 건너 단둥(丹東)에 상주하며 전황을 파악했을 줄 안다. 미국 참전 예측하며 미군 전략 연구에 몰두했다고 들었다. 의견을 말해라.”
  
마오, 6·25초 덩화 불러 “싸울 준비하라”
 
덩화는 전쟁 시작부터 끝나는 날까지 한반도를 떠나지 않았다. 펑더화이 대신 사령관직을 수행하고 정전회담에도 지원군 측 대표로 참여했다. 훗날 개국 상장(우리의 대장격) 계급을 받았다. 1950년 가을 대유동. [사진 김명호]

덩화는 전쟁 시작부터 끝나는 날까지 한반도를 떠나지 않았다. 펑더화이 대신 사령관직을 수행하고 정전회담에도 지원군 측 대표로 참여했다. 훗날 개국 상장(우리의 대장격) 계급을 받았다. 1950년 가을 대유동. [사진 김명호]

덩화는 마오쩌둥의 애장(愛將)이었다. 지원군 총사령관에 펑더화이를 선정하기 전부터 덩화를 부사령관으로 내정했다고 한다. 6월 25일, 북의 남침이 시작했을 때 13병단 사령관 덩화는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에 있었다. 7월 19일, 병단사령부 작전실에서 한반도 지도 보며 이 생각 저 생각하던 중 마오의 급전을 받았다. “변방이 위험하다. 급히 상경해라.” 덩화를 만난 마오쩌둥은 본론부터 꺼냈다. “트루먼은 조선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네가 할 일이 생겼다. 동북 변방을 보위하며 미국과 싸울 준비 해라. 겪어 보지 못한 큰 전쟁이 될지 모른다. 원자탄이 떨어지면 수류탄으로 대응해라. 약점 움켜쥐고 바짝 붙어서 패배를 안겨라. 미국을 종이호랑이라고 무시하는 것은 전략일 뿐이다. 전술적으로 절대 무시해선 안 된다. 미국은 진짜 호랑이다.”
 
중국 지원군은 탄약 운송에 한국 부녀자들을 많이 징발했다. [사진 김명호]

중국 지원군은 탄약 운송에 한국 부녀자들을 많이 징발했다. [사진 김명호]

평소 덩화는 펑더화이를 어려워했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미군은 세계 최강이다. 화력이 상상을 초월한다. 대담한 침투전술을 쓰자. 약점 발견하면 옆구리와 등을 살짝 건드리다 심장을 후려갈기자. 후방과 연락을 단절시킨 후, 분할해서 포위하고 섬멸하자. 미군은 정면 방어에 능하다. 조직도 꼼꼼하다. 정면 공격은 승산이 없다. 밝은 대낮에는 잠복하고, 어두울 때 공격하자.”
 
듣기만 하던 펑더화이가 탁자를 한 차례 내리쳤다. “내 성격 잘 알리라 믿는다. 긴장할 필요 없다. 각자 장점과 풍부한 경험을 맘껏 발휘해라. 명령에 토 달지 말고 무조건 복종해라. 거역하면 누구건 용서하지 않겠다.”
 
펑더화이는 지휘부를 발표했다. “나는 중앙군사위원회가 정한 지원군 사령관 겸 정치위원이다. 덩화를 제1부사령관 겸 부정치위원에 임명한다.” 이어서 훙쉐즈(洪學智·홍학지)와 한센추(韓先楚·한선초)의 부사령관 임명도 발표했다. 북한과의 협조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끝으로 한마디 했다. “김일성 동지와 의논했다. 박일우 동지에게 부사령관과 부정치위원 직을 맡긴다. 우리 당 위원회 부서기도 겸임한다. 모두 마오 주석의 뜻이다.”
 
지원군의 진짜 지휘관은 마오쩌둥이었다. 부사령관들과 박일우 할 것 없이 회의 직전 마오의 전문을 받았다. 자신들이 할 일을 알고 있었다. <계속>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