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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유 曰] 대학을 함부로 대하는 나라

양영유 교육전문기자 중앙콘텐트랩

양영유 교육전문기자 중앙콘텐트랩

“역대 어느 정부도 이런 적은 없었다. 입시·등록금·강사법 등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다. 정유라 사태 이후 10년치 중간·기말고사 답안지까지 보관하라고 한다. 보고서의 글자 크기와 표지 색까지 지정한다. 온라인 강의도 20%를 못 넘긴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런 깨알 규제가 세상에 어디 있나.”
 

‘사학=비리’ 프레임으로 대중 분노 자극
손발 묶어 놓고 어떻게 인재 키우라 하나

대학 총장들을 인터뷰하며 들은 하소연이다. 직설적인 표현도 많았지만 지면에는 실을 수 없었다. 대학의 욕구불만증은 심각했다. 또 절박했다. 원하는 건 딱 한 가지. 제발 책임질 테니 자율을 달라는 것이었다. “안 되는 것만 빼고 다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negative regulations), 왜 안 하나요. 교육부가 할 일이 없어질까 그러는 게 아닐까요. 손발이 꽁꽁 묶인 상태에선 한국판 뱁슨칼리지나 애리조나주립대(ASU)가 절대 나올 수 없어요.”
 
총장들이 예로 든 뱁슨칼리지는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사립대다. 1919년 창업과 경영, 앙트레프레너쉽(기업가 정신) 교육을 표방하며 설립해 MIT대와 하버드대의 틈새를 파고들었다. 졸업생 창업비율이 17%로 스탠퍼드대 13%, 하버드대 7%보다 높다. 비결은 자유분방한 실용 커리큘럼. 교육 당국은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는다. 스타트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까닭이다.
 
세계적인 혁신 대학 아이콘이 된 ASU는 어떤가. 온·오프라인 경계를 허물었다. 인공지능(AI)이 학생 개개인의 소질과 잠재력에 맞춰 수학·생물학 등 기초과목을 가르친다. ‘개별 학습(personalized learning)’과 ‘맞춤형 학습(adaptive learning)’이 동시에 이뤄진다. 수월성과 평등 교육의 하모니다. 역시 공무원이 넘성거린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우리는 어떤가. 전공 하나, 커리큘럼 하나까지도 정부 도장을 받아야 한다. ‘간섭왕’ 교육부는 그것도 모자라 ‘사학=비리’ 프레임까지 가동했다. 종기 하나 났다고 페트(PET, 양전자단층촬영) 검사하며 온몸을 훑는 꼴이다. 종합감사 대상 대학 16곳도 묘하다. 다분히 정치적이다. 연세대를 넣더니 고려대도 넣었다. 부자(父子) 이사장·총장 대학을 넣더니 모자(母子) 이사장·총장 대학, 부부(夫婦) 이사장·총장 대학으로 범위를 넓혔다. ‘사학→세습→족벌→적폐’ 프레임의 퍼즐이다.
 
물론 폐쇄적 세습 운영으로 엉망이 된 대학도 있다. 교사 부부가 목욕탕을 운영해 번 돈으로 설립해 학교를 비리 온상으로 만들었다 폐교된 서남대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 썩은 대학은 마땅히 추방해야 한다. 그렇지만 대중의 분노 심리를 이용한 망신주기 감사는 경계해야 한다. 자사고 대못질이 성에 안 차자 고등교육의 80%를 책임진 사립대까지 주무르려 한다는 오해를 살 우려가 있다. 감사 대상을 일주일 전에 기습 통보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오만의 극치다. 1호 감사가 진행 중인 연세대에선 정체도 모호한 시민감사단을 포함한 수십 명이 “이거 내놔라, 저거 내놔라”하고 있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절규가 들린다. 이런 데 진을 다 빼고 인재는 언제 키우나. 대학을 너무 함부로 대한다. 그러니 대학이 정권의 장난감이냐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3년 전 노요리 료지(野依良治, 2001년 노벨화학상 수상) 나고야대 교수를 만났을 때 이런 말을 들었다. “과거 산업혁명과 비교하면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사회 변혁 속도는 10배 빠르고, 규모는 300배 크고, 그 임팩트는 3000배에 달한다. 대학이 변화의 핵심이다.”
 
4차 혁명시대의 국가 경쟁력은 곧 대학 경쟁력이라는 의미였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AI”라는데 대학들은 컴퓨터공학과 정원도 못 늘리고 있다. 차라리 교육부를 AI에게 맡기면 어떨까. 참 무덥고 답답한 여름이다.
 
양영유 교육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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