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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까지 달래준다는 '엄마 밥'… 그건 굴레가 아닐까

기자
전새벽 사진 전새벽

[더,오래] 전새벽의 시집읽기(39)

맛이 아닌 정을 나누는 ‘집 밥’의 감성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늘었다. 사진은 된장찌개와 차린 소박한 밥상의 모습. [중앙포토]

맛이 아닌 정을 나누는 ‘집 밥’의 감성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늘었다. 사진은 된장찌개와 차린 소박한 밥상의 모습. [중앙포토]

 
야근을 밥 먹듯 아침을 안 먹듯
하며 소화제를 달고 사는 더부룩한 날들
약간의 조증 폐쇄 공포증
혼자 뿐인 넓은 집
냉장고엔 인스턴트 식품
혀 끝에 남은 조미료 맛이
너무 지겨워
그가 간절하게 생각나는 건 바로
어어어어어어 어머니의 된장국
- 다이나믹 듀오, ‘어머니의 된장국’ 부분. (정규 4집『Last Days(2008,지니뮤직)』에 수록)
 
집 떠나 도심에서 외로이 돈 버는 청년은 늘 허기지다. 싸고 편하다는 이유로 자꾸 사 먹는 편의점 도시락, 적은 양도 아닌데 먹어도 배고프다. 그 허기는 한 가지 기억을 불러온다.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상에 대한 기억이다.
 
요즘 청년들은 한 끼를 제대로 챙겨 먹기 힘들다. 편의점 삼각김밥과 라면, 도시락으로 속을 달래다 고향에 돌아가면 엄마가 차려준 따뜻한 밥을 먹는다. 엄마 밥은 '식사'를 넘어 '위로'가 된다. [중앙포토]

요즘 청년들은 한 끼를 제대로 챙겨 먹기 힘들다. 편의점 삼각김밥과 라면, 도시락으로 속을 달래다 고향에 돌아가면 엄마가 차려준 따뜻한 밥을 먹는다. 엄마 밥은 '식사'를 넘어 '위로'가 된다. [중앙포토]

 
매년 명절 쇠러 고향 다녀온 친구들에게 뭐했냐고 물으면 그 답변, 하나같이 이렇다. “엄마 밥 실컷 먹고 왔어.” 그들이 말하는 ‘엄마 밥’과 그냥 밥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 문화적, 사회적, 심리적, 화학적 요인이 만드는 미묘하고도 위대한 차이일 것이다. 위장의 허기뿐 아니라 영혼의 허기까지 달래주는 그것은 이미 밥의 영역을 넘어선 무엇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든다. 그동안 너무 엄마에게 밥이라는 굴레를 씌워온 게 아닐까? 엄마는, 집에 갈 때마다 맛있는 밥 해준다고 애쓰는 엄마는, 사실은 요리하기 싫은 게 아닐까?
 

여성의 언어는 위반의 언어

도마에 칼이 탁탁 부딪히는 소리가 제일 듣기 좋다는 어떤 어머니의 자식들을 않아는 싫어한다. 칼질하면서 어머니가 행복해한다면 오산이다. 칼질하기 전까지 껍데기를 벗기고, 다듬고, 그것들을 사러 갔다 오는 시간이 있었다. 피곤했다. 하기 싫었다. 더러운 흙이 손에 묻었다. 미끈거리는 것이 바닥에 쏟아졌다. 냉장고에서 그릇이 미끄러져 내용물이 쏟아지고 그릇이 깨졌다. 치워야 한다. 행주를 빨았다. 칼에 손이 베였다. 이틀만 닦지 않으면 집안에 먼지가 창궐한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요리사들은 이 과정을 보여주지 않는다. 않아는 어머니가 고등어에 소금을 뿌려 냉장고에 넣어두었다는 노래를 싫어한다. 않아는 생선 아가미에 손 집어넣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어머니가 차린 둥근 밥상이 가장 좋았다는 시 또한 싫어한다. 그동안 우리가 집단적으로 어머니를 속이고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한다. 가사노동이라 불리는 이 삶, 이 착각에 빠지면 누구나 헤어나지 못한다. 어머니 신화의 최면에 빠져 도마에 동식물을 올려놓고 썰어대게 된다. 그러다보면 그릇들이 손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이 면면한 모성신화에 복무하느라 어머니들이 제일 힘들다. 어머니 노릇하느라고. 세세년년 자손을 번창케 하라는 보이지 않는 그분의 명령에 복무하느라고, 남의 입에 들어가는 것을 만드는 데 평생을 받치게 된다. 어머니도 가끔 아니 더 자주 하기 싫어한다.
-김혜순, ‘어머니도 하기 싫어한다’ 전문. 산문시집 『않아는 이렇게 말했다(문학동네, 2016)』에 수록.
 
도마 위에서 칼질을 하는 모습. 어머니는 손끝에 어떤 생각을 담아 요리를 하실까? (이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중앙포토]

도마 위에서 칼질을 하는 모습. 어머니는 손끝에 어떤 생각을 담아 요리를 하실까? (이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중앙포토]

 
1955년에 태어나 1979년에 시인이 된 김혜순은 여성에 관해 쓰는 여성 시인이다. 그는 일찍이 이렇게 쓴 바 있다. “여성의 시 언어는 남성의 시 언어와 다르다. 여성의 언어는 이제까지 밖에서 주어졌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반동으로부터 터져나온다(『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문학동네, 2002)』).”
 
밖에서 주어졌던 정체성이라니, 어쩌면 ‘엄마 밥’이라는 향수도 우리가 어머니라는 여성에게 지웠던 정체성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이어서 이렇게 쓴다. “여성의 언어는 본래적으로 위반의 언어인 것이다”라고. 위의 산문시가 그 위반의 언어다. “그동안 우리가 집단적으로 어머니를 속이고 있었던 건 아닐까”라는 당돌하고 직설적인 물음이 그 위반의 언어다.
 
김혜순은 2017년 『여성, 시하다(문학과지성사)』라는 책을 통해 시와 여성, 그리고 ‘여성의 시’에 대해 진중하게 말한 바 있다. 그는 한사코 위반의 언어를 통해 ‘당대’와 맞선다. 그가 ‘당대’와 맞서는 이유는, ‘당대’가 먼저 폭력을 가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견지에서, 그의 싸움은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게 된다. 그 싸움은 편견과 모독에 오래 시달려온 모든 약자를 위한 싸움이다. 김혜순의 시 앞에 많은 지지자가 집결하는 이유다.
 
‘어머니도 하기 싫어한다’는 종전까지 보아왔던 많은 시와는 그 형식이 사뭇 다르다. 시라는 건 대저 긴 이야기를 짧게 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이 시는 묵묵하게 할 말을 하고, 어렵지 않은 말로 하고, ‘문학’이라기보다는 그저 일기 같은 느낌으로 말한다. 혹시, 이 자유분방한 형식조차 ‘시는 이래야 돼’라는 편견에 맞서는 ‘반동’은 아닐는지.
 

‘않아’는 거절할 줄 아는 주체

위의 산문을 시로 바꾸어 놓는 것은 ‘않아’의 존재다. 그게 뭔지, 필자도 잘 모르겠다. 아마 시인에게 직접 물어보는 게 가장 빠를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이미 시를 통해 다 말했으므로, 그다음 일은 독자의 몫이다. 그러니까 그냥 상상해본다.
 
‘않아’는 어쩌면 거절을 할 줄 아는 강한 주체인지도 모른다. “아니, 나 밥하는 거 좋아하지 않아”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 “아니, 나는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아.”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 명확한 거부 의사를 통해 당당하게 당대와 싸울 수 있는 존재 말이다.
 
전새벽 회사원·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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