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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의 시선] “난들 왜 그런 생각 안했겠나”…DJ의 일침

이정민 논설위원

이정민 논설위원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다시 읽어봤다. 툭 건드리면 폭발할 듯 위태롭던 상황을 해결한 지도자에게서 지혜라도 빌리고 싶은 심정에서다. 1998년. 역사 교과서 왜곡과 독도 망언을 쏟아낸 일본 정치권과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는 YS(김영삼 대통령)의 대치로 긴장이 팽팽하던 때였다. 설상가상, 도쿄 납치사건의 피해자인 DJ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일본 조야엔 냉기류가 돌았다. 이 와중에 열린 정상회담. 한 배석 인사의 회상이다.
 

‘천황’ 호칭, 일본문화 개방한 DJ
“나라 책임진 사람은 깨어있어야”

▶DJ=“나는 과거사를 얘기하려고 온 게 아니다. 미래를 논의하기 위해 온 것이다. 한·일의 젊은이들이 희망찬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지혜를 모으자고 온 것이다. 25년 전 납치사건으로 인해 고통을 받았지만, 나의 불행했던 과거는 내가 대통령이 됨으로써 모두 보상받았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책임을 묻지 않을 것이다.”
 
긴장이 풀리고 화색이 돌았다. 오부치 총리는 “형님으로 모시겠다”며 찬사를 보냈다고 한다. 이날 채택된 공동 선언 2항은 “오부치 총리는 일본이 과거 한때 식민지 지배로 인해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줬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했다”고 돼 있다.
 
일본 총리가 식민통치에 대해 직접 사죄하고 이를 외교문서에 담은, 획기적인 회담이었지만 DJ는 국내 여론의 반발에 시달렸다. 금기시돼온 ‘천황’ 용어를 사용하고 굳게 닫혀있던 일본 대중문화의 빗장을 풀었기 때문이다. 문화예술계의 반대 집회에 이어 여당에서도 “일본의 문화 식민지가 될 것”이란 반대가 거셌다. “탈당하겠다”고 배수진을 친 중진 의원도 있었다. 당시 청와대 공보수석이던 박지원 의원은 “참모들 대부분이 ‘국민들의 반일 감정도 생각하셔야 한다’고 만류했지만 DJ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오히려 반대하는 참모들을 이렇게 설득했다고 한다.
 
“난들 왜 그런 생각을 안 했겠나. 그러나 외교란 상대국 국민들의 마음을 사야 하는 것이다. 나를 ‘대통령’으로 부르니까 외국에서도 ‘대통령’이라고 부르듯이 일본 국민들이 모두 ‘천황’이라고 부르는데 굳이 우리만 ‘일왕’으로 불러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2000년동안 중국 문화권에 있으면서도 동화되지 않고 독창적인 문화를 재창조해낸 우리가 문화 식민지가 될 것이란 주장이야말로 식민사관이다.” DJ의 예측대로 일본문화 개방은 한류가 전 세계로 확산되는 토대가 됐다. 양국 내왕객이 한해 1000만명에 이를 만큼 ‘절친 국가’가 됐다. 당시 국정상황실장이던 장성민 전 의원은 “지도자의 미래를 보는 통찰력과 확고한 역사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라고 했다.
 
일제하 강제 징용노동자 배상을 둘러싼 갈등이 악화일로다.정부는 법원 판결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로 8개월 동안 무대응·무대화·무협상으로 일관하다 결국 일본의 ‘경제 침탈’이라는 화(禍)를 촉발하고 말았다.외교적 사안을 경제 보복으로 맞받아친 아베 정부의 치졸함과 속 좁음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의 외교 무능과 전략 부재가 면죄부를 받을 순 없다.
 
일본의 경제 보복이 시작된 이후 한달 가까이 정부·여당은 외교적 해법 보다 ‘죽창가’ ‘배 12척’ ‘국채보상운동’ ‘헤이그 밀사’ 같이 반일 감정을 자극하는 ‘불쏘시개’ 생산에 힘을 쏟고 있는 인상이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은 친일파 프레임과 결합되면서 더욱 달아오르고 있다. 얻는 것도 있을 것이다. 여행 중단과 불매운동이 일본 경제에 생채기를 입힐 것이고 아베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질 지 모른다.
 
그러나 아베 정부뿐 아니라 일본 국민들까지 모조리 적으로 돌리는 무차별 대일 공세가 가져올 부메랑을 어찌할 것인가. 징후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 외교관 출신으로 우동 가게를 운영하는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는 ‘주간조선’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의 조치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전 세대, 전 계층에서 나타나는등 한국을 보는 일본 사회의 시각이 바뀌고 있는 분위기”라며 “과거 한·일 충돌 때는 일본이 한국을 배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던 친한파, 지한파들마저 돌아서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 나라 국민의 마음을 사는게 외교”라고 했던 DJ가 지금 이 모습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 있기에 소개한다. “뒤에 오는 이들은 내가 왜 4대국 정상외교에 심혈을 기울였는지 제발 살펴봤으면 좋겠다. 우리에게 외교는 명줄이나 다름없다. 정치는 실수하더라도 고치면 되지만 외교의 실패는 돌이킬 수 없다. (중략)나라를 책임진 사람들이나 외교관은 어느 누구보다 깨어 있어야 한다.”(『김대중자서전 2』)
 
이정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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