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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일본 간첩’ 혐의 벗은 탈북 엘리트…“써먹다 헌신짝 버리듯”

무죄 판결로 본 ‘탈북자 간첩’ 수사의 문제점

북한 선박 청류1호가 지난해 5월16일 중국 단둥 동강지역 해상에서 중국 텐더보트로부터 유류를 몰래 넘겨받는 모습. 이윤걸 박사가 북한 내부 협조자로부터 입수해 정보당국에 제공했다. [사진 이윤걸]

북한 선박 청류1호가 지난해 5월16일 중국 단둥 동강지역 해상에서 중국 텐더보트로부터 유류를 몰래 넘겨받는 모습. 이윤걸 박사가 북한 내부 협조자로부터 입수해 정보당국에 제공했다. [사진 이윤걸]

탈북 엘리트 이윤걸(51) 박사가 간첩혐의를 벗었다. 꼭 일 년 전 ‘아닌 밤중에 홍두깨’ 식으로 압수수색을 당하고 구속된 이 박사는 지난 24일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에게 국가정보원과 검찰이 씌운 혐의는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특히 민감한 대북정보를 일본 측에 넘겼다는 대목은 이 박사를 파렴치범으로 만들었고, 일부 탈북자 그룹에선 그를 ‘대한민국을 배신한 인물’로 낙인찍기도 했다. 대북 정보력 수집·분석 능력이 탁월한 그의 도움을 받아오던 국가 정보기관이나 연구기관 관계자들은 등을 돌렸다.
 

정보사 요원 군사기밀 유출 건에
검찰, 이윤걸 박사 무리하게 엮어
일 무관부 스파이 행위엔 눈 감고
국정원은 탈북 인사 지속적 사찰

지난 1월 구속된 상태에서 치러진 1심 재판에서 이 박사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하지만 반년 만에 열린 항소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일본에 넘겼다는 자료가) 이씨 입장에서는 평소에 다루던 북한 정보에 불과하다”는 게 판결 요지다. 평범한 북한 관련 자료가 어떻게 ‘국가 기밀’로 둔갑했을까. 왜 검찰은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었을까. 대북 정보기관이 침묵하는 이유는 뭘까. 의혹이 가는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이 박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자초지종을 들어봤다.
  
“지난 일 년은 악몽의 연속이었다. 대한민국을 위해 밤낮없이 뛰었는데 이렇게 끝나는구나 하는 절망감이 컸다.”
 
무죄판결을 받은 탈북 박사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

무죄판결을 받은 탈북 박사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

이윤걸 박사는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홀가분함보다 어떻게 이런 사태가 대한민국에서 벌어질 수 있는지 모르겠다는 당혹감이 더 커 보였다. 그는 2005년 입국한 뒤 통일부 등 정부 당국과 국가정보원·국군정보사령부 등 대북 정보기관과 협력해 북한 정보 수집과 분석 등 업무를 해왔다. 통일연구원과 세종연구소 등 유력 연구기관의 객원연구위원을 맡아 공동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국가 정보기관의 주선으로 일본대사관 무관부에 북한 관련 자료와 분석 보고서를 정기적으로 제공하고 연구비도 받았다. 이 모든 과정은 그가 설립한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의 이름으로 이뤄졌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이 모든 행위가 ‘국가 기밀 누설’이자 국가 배신행위로 간주돼 구속기소라는 상황을 맞았다.
  
정보사령부 군사기밀 수사가 발단
 
김원홍 전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장의 아들 김철이 대표로 있는 청봉무역이 북한 인력송출을 합의한 비밀문건. [사진 이윤걸]

김원홍 전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장의 아들 김철이 대표로 있는 청봉무역이 북한 인력송출을 합의한 비밀문건. [사진 이윤걸]

국정원과 검찰의 무리수는 국군정보사령부 전·현직 간부의 군사기밀 빼돌리기 수사 과정에서 비롯됐다. 정보사 공작팀장이던 황모(59)씨는 2013년부터 지난해 1월까지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휴대전화로 촬영하는 수법으로 군사기밀 160여건을 수집해 퇴직한 홍모(67)씨에게 빼돌렸다. 황씨는 그 대가로 홍씨로부터 670여만 원을 챙겼다. 홍씨는 입수한 기밀 중 일부를 일본과 중국 등 주한 외국 공관 무관이나 정보요원에게 돈을 받고 팔아넘긴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두 사람은 지난 24일 재판에서 각각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외국에 파견된 정보관의 인적 사항을 외국 정보기관에 전달한 행위는 정보사뿐 아니라 대한민국에 대한 배신행위”라고 판결했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얘기다.
 
사단은 수사당국이 이윤걸 박사를 비롯한 몇몇 탈북 인사를 이 사건과 엮으면서 생겼다. 정보사 요원 홍씨가 평소 친분이 있던 이 박사의 사무실에 들러 대북 정보자료 가운데 쓸만한 걸 챙겨가고, 때로는 이곳에 있던 컴퓨터를 이용해 정보보고서 작성 작업까지 한 걸 문제 삼은 것이다. 검찰은 사무실 압수수색 과정에서 확보한 컴퓨터와 외장하드에 정보사령부가 생산한 문건 63건이 발견됐고, 홍씨와 이메일을 주고받은 정황 등을 근거로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이 박사는 “북한 내부나 중국 등지에 있는 지인과 정보원으로부터 입수한 북한 내부 동향자료를 정보사 요원이 챙겨가 비밀문건으로 만들었는데, 그 정보를 소지하고 있었다는 이유로 나를 간첩으로 몰아갔으니 어처구니없는 일 아니냐”고 항변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검찰은 이 박사 외에도 탈북 엘리트 그룹의 A씨와 단체장 B씨 등을 기소하려 했으나 뚜렷한 혐의가 잡히지 않자 공소장에 거론하는 수준에 그치기도 했다.
  
‘돈 받고 일본에 기밀을 팔아’ 누명
 
국정원이 이 박사를 수 년 간 감시한 결과를 담은 사진자료. [사진 이윤걸]

국정원이 이 박사를 수 년 간 감시한 결과를 담은 사진자료. [사진 이윤걸]

무엇보다 이 박사가 참을 수 없었던 건 국정원과 검찰이 “일본에 돈을 받고 국가기밀을 팔아넘긴 인물”로 지목한 대목이다. 이 박사는 국군기무사령부 군무원의 소개로 2011년께부터 일본 무관부 측에 북한 관련 정보를 정기적으로 제공하고 이에 대한 용역수행 비용을 받았다. 6년간 일본 무관에게 자문한 경우가 약 140차례이고 첩보 건수로는 약 1000건 정도에 이른다. 그 대가로 받은 돈이 월 100만원 수준이다.
 
일본 측에 제공된 문건은 북한 관련 국내 언론보도나 전문가 분석 등에 이 박사가 운영하는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의 자체 정보와 해설 등을 덧붙인 게 대부분이었다. 특히 문건마다 센터의 영문 명칭을 붙여 ‘NKSIS 정세분석보고서-일본’이라고 명기했다. 군사기밀을 몰래 빼돌려 일본 측에 돈을 받고 팔아넘긴 문건이라면 제공 기관명을 밝히는 건 난센스다. 통일부로부터 관리·감독을 받는 이 센터는 일본 측에 정보제공이나 자문을 해주고 송금받은 금액은 ‘정보서비스’ 등으로 출처를 밝혀 놓았다.
 
대북정보와 관련, 한국과 일본은 2016년 11월 체결한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에 따라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해왔다. 협정이 밝히고 있는 군사비밀은 ‘당사국이 생산하거나 보유한 국가안보 이익상 보호가 필요한 방위 관련 모든 정보’다. 한국의 경우 군사 2급 비밀과 3급 비밀이 교환할 수 있는 정보 수준이다. 국가안보에 매우 중요한 데다 열람도 극히 제한되는 1급 비밀을 제외한 모든 정보가 교환대상이란 얘기다.
 
일본 측과 정보를 주고받은 우리 정보당국 관계자나 일본 측 무관, 정보요원들은 문제 삼지 않고 유독 탈북자 출신인 이 박사만 구속기소라는 조치를 취한데 대해 정보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다. 스파이 행위를 한 것으로 검찰이 공소장에서 지목한 일본 무관 나가시마 토로는 사건이 불거진 이후에도 근무하다 지난 6월 임기를 마치고 출국했다.
 
재판 과정에서 ‘증거’로 제시된 검찰 측 자료를 통해 국정원이 탈북 인사들에 대해 지속적인 사찰과 미행을 한 사실도 드러났다. 국정원은 이 박사가 2017년 3월 14일 나가시마 무관을 만나기 위해 서울 시내의 한 식당에 들어가는 모습을 몰래 촬영했다. 또 2015년 5월에는 다른 일본 측 관계자를 만나는 모습을 담기도 했다. 이 박사 측은 “적어도 4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나에 대한 감시와 미행이 이뤄졌다는 걸 국정원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고 했다. 국정원 측은 “일본 측 인사들을 감시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한다.
  
북한의 민감한 정보 공개에 부담 간 듯
 
북한 김정은 정권이 노출하기를 꺼리는 민감한 내부 정보를 입수해 공개하자 입막음을 하려는 의도라는 탈북자 사회의 목소리도 있다. 실제 이 박사는 지난해 5월 중국 랴오닝성 단둥시 동강지역 해상에서 북한 선박 청류1호가 중국 측 텐더보트로부터 유류를 불법 환적하는 장면이 담긴 사진을 입수해 정부 당국자에게 전달했다. 이 배는 북한 인민무력성 소속 붉은별무역총회사 관할이다. 유엔 대북제재위가 북한의 유류 불법 환적을 본격적으로 문제 삼기 전이다. 김원홍 전 국가안전보위부장이 권력 실세일 때 그의 아들 김철이 대표로 있는 조선청봉무역이 중국 측과 북한 인력의 제3국 송출을 합의한 비밀계약서도 이 박사는 공개했다. 김정은 통치자금이나 일가의 속사정을 담은 정보가 잇따르자 정부 당국이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가 감지됐다고 한다.
 
통상 ‘탈북자 간첩’의 경우 과거 정부에서 공안당국의 강압수사 논란 형태로 불거졌다. 민주와 인권을 표방하는 현 정부에서는 한 엘리트 탈북인사에게 ‘일본 간첩’이란 혐의가 씌워졌다. 공교롭게도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이나 교류, 제재해제에 골몰하는 시점이었다. “수단·방법 안 가리고 대북정보 수집에 내몰더니 이젠 헌신짝 버리듯 한다”는 이윤걸 박사의 호소는 정권에 따라 일렁이는 대한민국 대북 및 외교안보 정책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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