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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의 문화난장] ‘귀신폭탄’ 비격진천뢰, 그 찬란한 슬픔

박정호 논설위원

박정호 논설위원

크기는 볼링공만 했다. 평균 지름 19.1㎝, 높이 18.1㎝다. 무게는 평균 17㎏이 넘었다. 볼링공과 달리 사람의 손으로 던질 수 없는 중량이다. 때문에 멀리 보내려면 기기의 힘을 빌려야 했다. 포신(砲身)에 넣은 폭약을 터뜨려 적진으로 날려 보냈다. 그 화포를 완구(碗口)라 했다. 요즘의 박격포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임진왜란 발명 시한폭탄
실물 16점 처음 한 곳에
당대 최고의 첨단병기
대량 생산체제 못 갖춰

핵심은 포탄이다. 커다란 곡선을 이루며 날아가 적군에 막대한 타격을 입혔다. 무쇠 탄환 안에 화약과 삼각뿔 쇳조각을 넣고, 화약 심지를 짧고 길게 만들어 폭탄이 터지는 시간을 조절했다. 갑자기 성 안에 떨어진 둥근 물건, 적군 병사들은 “저게 뭐지?” 순간 당황했다. 그 사이 쇳조각이 사방팔방으로 날아갔고, 우왕좌왕하던 적병 20~30명이 바람에 날리듯 쓰러졌다. 정확히 427년 전, 1592년 발발한 임진왜란 때 위용을 떨친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의 가공할 파워다.
 
비격진천뢰-. 천둥 같은 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폭탄이다. 탄환 한가운데 대나무통(竹筒)을 세우고, 그 둘레에 심지를 짧게는 10번, 길게는 15번 감으며 폭발 시간을 정밀하게 맞췄다. 이를테면 시한폭탄의 맏형쯤 된다. 경주성·진주성·행주산성 등 많은 전장에 사용됐다. 조선 산하를 무주공산처럼 유린했던 왜군도 생전 보지 못한 첨단무기에 두 손 두 발을 들었다.
 
조선시대 비밀병기인 비격진천뢰 안팎을 3D 이미지로 구현한 모습. 폭탄 내부 대나무통에 화약 심지를 감아 폭발 시점을 조절했다. [사진 국립진주박물관]

조선시대 비밀병기인 비격진천뢰 안팎을 3D 이미지로 구현한 모습. 폭탄 내부 대나무통에 화약 심지를 감아 폭발 시점을 조절했다. [사진 국립진주박물관]

비격진천뢰는 ‘귀신폭탄’이라 불렸다. 실제 기록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임진왜란의 과오를 거울 삼은 유성룡의 『징비록』을 보면 “땅에 떨어졌다가 한참 있다 폭발하는 것인데, 왜군들이 가장 두려워했다. 귀신이 한 짓이라 생각했다”라고, 당시 왜군의 활약을 미화한 일본의 『정한위략』에도 “폭발 소리가 천지를 진동시키고, 쇳조각이 별처럼 부서졌다. 우리 군대는 놀랍게만 여겼다”라고 나온다. 한국 기록문화의 꽃인 『조선왕조실록』, 경북 안동 주변 의병활동을 적은 『향병일기』, 조선의 화약무기를 설명한 『화포식언해』 등 문헌 10여 종에도 관련 항목이 등장한다.
 
기록은 나름 풍부하지만 실물은 많지 않은 비격진천뢰가 요즘 새롭게 빛을 보고 있다. 지난해 10월 전북 고창 조선시대 무기고 주변에서 형태가 온전한 비격진천뢰 11점이 무더기로 출토됐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품(보물 860호) 등 기존 5점을 보태 총 16점을 되찾게 됐다. 지난주 국립진주박물관에서 이들 16점과 비격진천뢰를 발사한 완구 3점을 한자리에 처음 모은 특별전(내달 25일까지)이 개막했다.
 
진주박물관에서 직접 마주한 비격진천뢰는 각별한 기운을 뿜어냈다. 박물관 측은 ‘귀신폭탄’의 과학적 원리도 밝혀냈다. 컴퓨터 단층촬영(CT), 감마선 투과 촬영을 시도했다. 무쇠 껍질에 많은 기공을 내 쉽게 폭발하게 주조했고, 폭탄 뚜껑은 단단하게 본체는 무르게 만들어 쇳조각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효과를 극대화했다는 점을 알아냈다. 16m 대형 스크린에 6개 프로젝트를 쏘며 옛 전투 장면도 실감 나게 재연했다. 마치 SF 단편영화를 보는 듯했다. 21세기 디지털 미디어환경과 함께 호흡하려는 지방박물관의 기획이 눈에 띄었다.
 
이번 특별전을 보는 마음은 두 갈래로 갈린다. 절체절명 전란 속에서도 중국·일본에 없는 최첨단 비밀병기를 발명한 조선인의 순발력·창의성에 박수를 치게 된다. 이름 석 자밖에 전하지 않는 화포장(火砲匠) 이장손이 숱한 시행착오 끝에 당대 최고의 무기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그것 하나론 역부족이었다. 서양 무기를 개량한 조총을 앞세운 왜군 앞에 활과 화살로 무장한 조선군은 전쟁 초반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이순신의 거북선과 지략으로 7년 전쟁에 마침표를 찍었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이 땅을 내준 조선 지도층의 무능과 실정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진주박물관 허일권 학예사의 한마디가 가시처럼 박힌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한·일 관계가 험악한 시점에 전시가 열렸네요. 임란 무렵 문헌을 살펴보면 비격진천뢰의 성능에 감탄하면서도 수량이 부족하다는 하소연이 많았습니다. 여기저기서 빨리 보내달라는 요청이 잇따랐죠.” 체계적 생산체제가 없었고, 부품·재료가 달렸던 것이다. 일면 요즘의 한·일 경제기상도를 닮았다. 그럼에도 이번 전시의 가치는 남다르다. 위기를 헤쳐가는 선조의 슬기를 곱씹게 한다. 궁즉통(窮則通), 극단의 상황도 언제든 기회로 돌릴 수 있다.
 
박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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