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참 고맙다, 내 아들과 싸웠다고 편지 보낸 며느리

기자
송미옥 사진 송미옥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98)
며느리는 남편과 다투고 나면 시어머니인 내게 메일을 보낸다. 며느리의 메일을 받으면 속상하기보다도 고마운 마음이 더 크다. [그림 pixabay]

며느리는 남편과 다투고 나면 시어머니인 내게 메일을 보낸다. 며느리의 메일을 받으면 속상하기보다도 고마운 마음이 더 크다. [그림 pixabay]

 
며칠 전 며느리에게서 메일이 왔다. 며느리는 제 남편과 크게 투덕거리고 나면 화풀이 겸 내게 안부 메일을 보낸다. 오랜만에 보냈으니 오랜만에 터진 전쟁 같다. 사연은 당연히 전쟁 영화 보듯 그려지고 맨날 얻어터지는 쪽은 성질 급한 아들이다. 속상할 것 같지만 이미 내 마음에서 분가한, 엄청 잘 알고 지내는 이웃 젊은 부부로 바뀐 터라 내용이 싱숭생숭하면서도 재밌다.
 
오랜 시간 메일을 주고받으며 느낀 것은 며느리와 내가 아주 친해졌다는 거다. 시간이 갈수록 슬기롭고 멋진 새댁이다. 화가 나서 쓴 메일이지만 읽다 보면 두 사람의 그간의 생활과 부부간의 사랑이 들여다보인다. 성격 급한 남자랑 살아가는 주부로서 많은 걸 희생하고 애쓴다는 걸 알 수 있다.
 
말로 하면 화가 날 일이겠지만 자기 마음을 차곡차곡 꺼내서 글로 쓰다 보면 말미엔 이미 화가 다 글에 녹아 풀어진 것을 느낀다. 친정엄마에게 남편 흉 안 하고 나에게 써 보내는 것이 더 고맙고 예쁘다.
 
또 한 가지, 귀하고 귀한 내 아들 흉을 마구마구 해도 내 마음이 많이 불편하지 않고 제삼자 입장에서 들을 수 있다. 그것은 내가 아이들과의 금전 거래가 없으니 보상심리 같은 게 없어서라는 생각이 든다. 어른들끼리 하는 자식들 뒷이야기에는 ‘내가 해 준 게 얼마나 많은데~’가 불만과 속상함의 기본이 되어있다.
 
 
결혼할 때 집 마련해 주느라 진 빚이 얼만데….
우리가 자금을 안 보태주었으면 일어서지도 못했던 놈이….
손자들 학비도 우리가 다 대주는데, 뭐가 불만인지….
 
많은 부모의 생각은 평생을 뼈가 휘도록 벌어서 자식에게 다 주었으니 투덕거려도 안 되고 못살아도 안 된다는 게 기본이다. 아들이 한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겠다고 통보했을 때, 살아온 환경의 격차와 배움으로도 한참 차이 나는 고급스펙을 가진 여자여서 반대했다. 그러나 자식 이기는 부모 없고 성인인지라 자기네들이 결혼 날짜를 잡았다.
 
우리에게 말하길 두 사람이 만나 결혼을 하겠다고 알리는 자리이니 두 분은 멋진 옷을 차려입고 당일 오셔서 참석만 하면 된다고 했다. 작은 식당에서 가족과 얼굴을 아는 친지 몇 분만 모시는 자리를 마련할 거니까, 화환 한 개라도 갖다놓으면 무효로 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의 문화상 예단이 오고 가는 등 복잡한 상황이 모두 없어져서 시원섭섭했다. 다만 이제까지 낸 부조금을 이런 기회에 돌려받아야 하는 건데 싶어 ‘대략난감’이 아닐 수 없었다.
 
어찌어찌 사정하고 양보하여 여자 집 지인이 운영하는 호텔 한 칸에서 식을 올렸다. 주례 없이 두 사람이 진행하는 이상한 결혼식이었다. 각자 마음을 담은 편지 한 장씩을 읽으며 다짐을 하고 양쪽 부모님이 나와 덕담을 해줬다. 형제가 나와서 음치 노래를 불러 축가를 대신하며 이상한 결혼식을 끝냈다. 요즘은 이런 결혼이 흔하지만, 그 당시엔 흉이 될까 봐 노심초사 전전긍긍했던 시간이다.
 
아들 부부는 양측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고 독립했다. 결혼식도 알아서 준비했고, 단칸방에서 살림을 시작해 원하던 집을 사기까지 함께 차근차근 길을 걸어나갔다. [사진 unsplash]

아들 부부는 양측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고 독립했다. 결혼식도 알아서 준비했고, 단칸방에서 살림을 시작해 원하던 집을 사기까지 함께 차근차근 길을 걸어나갔다. [사진 unsplash]

 
참석한 분들이 모두 두 사람이 만들고 진행한 조촐한 결혼식에 놀라움을 표하며 칭찬과 격려를 크게 해준 잊지 못할 예식이었다. 그래서 아들 결혼 시킬 때 결혼비용, 살 집은 물론 예물도 예단도 없었다. 자기네가 벌어 모은 한도 내에서 단칸방을 얻어 입던 옷 보따리만 싸서 각자의 집에서 떨어져 나갔다. 잘사는 사돈네도, 가난한 나도, 금전적으로 손해 본 것도, 보탠 것도 없으니 자식들을 존중하고 두려워한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젊은이가 가장 밑바닥부터 시작하며 쌓은 미운 정 고운 정의 동지애가 있어서 그런가, 날마다 투덕거리면서도 이번엔 큰 집도 샀다고 하니 잘 사는 것 같다. 빚이 없으니 덩달아 나도 잘산다. 전화를 잘 안 하는 며느리가 아침부터 전화했다. 메일이 오면 가슴이 콩닥콩닥 뛰지만, 폰에 며느리 이름이 뜨면 가슴이 쿵쿵 뛴다.
 
“뭐야~ 이번엔 더 크게 싸운겨?”
“호호호~ 아니에요, 어머니. 지금 출근길인데 아이 아빠랑 중간에서 만나 커피 한잔하기로 해서 가는 길이에요. 제가 며칠 전 보낸 메일에 어머니 너무 마음 아프셨죠? 그래서 오늘 제가 건강에 좋은 석청 꿀 사서 보냈어요. 귀한 거래요. 오래오래 건강하셔서 제 이야기 들어주는 매니저 되어 주셔야지요. 호호호~”
 
아주 친한 젊은 부부, 아들 내외가 멀~리 있다는 것이 요즘 행복순위 손가락에 꼽히는 나날이다.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