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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선의 컷인] 그들에겐 '꽃길'이었던 수구, 한국 수영에 남긴 교훈

[연합뉴스 제공]

[연합뉴스 제공]

눈시울이 붉었다. 훌쩍이는 소리도 들렸다. 그래도 예상했던 것보다는 침착한 분위기였다.

대회 마지막 경기, 어쩌면 한국 여자 수구 '국가대표'의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경기를 마친 여자 수구대표팀은 피와 땀과 눈물, 그리고 미소 속에서 태극마크를 내려놓았다.

한국 여자 수구대표팀의 2019 국제수영연맹(FINA)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 마지막 경기가 열린 22일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위치한 남부대학교 수구경기장. 관중석은 대체로 비어 있었다. 주말이 아닌 평일인 데다 오전 8시에 열리는 경기라 일반 관중들이 찾아오긴 아무래도 힘든 시간이었던 탓이다. 그래도 여자 수구 마지막 경기를 보기 위해 찾아온 관중들과 광주 시민 서포터즈, 선수들의 가족이 열띤 응원을 펼쳤다. 쿠바를 상대로 1쿼터 시작 30초 만에 선제골을 내주고 연달아 실점하며 금세 점수 차가 크게 벌어졌지만 응원 소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경기 종료 직전 최지민(18·대전가오고)과 권나영(17·충남체고)이 던진 슈팅도 줄줄이 골대를 맞고 나오면서 관중석은 아쉬워하는 탄식으로 가득 찼다. 결과는 0-30 완패. 5전 전패를 당한 한국 여자 수구는 16개 참가팀 중 최하위인 16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누구도 1승을 기대하지 않는 팀, 한 골을 넣으면 다행이었던 한국 여자 수구대표팀의 마지막 경기였다.

경기 이후 선수들은 눈물을 보였다. 펑펑 쏟는 눈물은 아니었다. 입술을 꼭 깨물고 눈시울을 붉힌 채 서로를 다독였다. 선발전부터 대회까지 약 두 달,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급조'된 팀으로 처음 나선 세계선수권대회의 벽은 높았다. 이번 대회 소기의 목표였던 '한 골'을 처음 뽑아낸 에이스 경다슬(18·강원체고)은 "일반인이 축구장에서 리오넬 메시(32·바르셀로나)와 뛰는 것과 같다"는 소감을 남겼다. 세계적인 선수들을 상대로 골을 넣고, 하나가 돼 같이 싸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동시에 얼마나 기뻤는지 알려 주는 한마디의 소감이었다.

여자 수구는 잘 알려진 대로 이번 대회를 위해 만들어진 팀이다. 국내 선수가 없는 탓에 북한과 남북 단일팀을 추진하다 무산돼 대회를 한 달 반 앞둔 5월 말에야 부랴부랴 선발전이 열렸다. 대부분이 경영 선수 출신에 중·고등학생이다. 대표팀 최연장자인 오희지(전남수영연맹)의 나이도 겨우 23살에 불과하다. 그래도 이들은 5전 전패라는 성적 앞에서 고개 숙이지 않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경다슬은 "이보다 더 잘하라고 했어도 못했을 것"이라며 "우리끼리 뭉쳐야 산다고 각오를 다지고 했다"고 씩 웃었다. 김예진(18·창덕여고)은 "다시 시작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좀 더 오래 훈련해서 꼭 1승을 하고 싶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들의 기록은 0-64 기록적인 대패, 5전 전패 등 부정적인 숫자로 남았다. 팀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북한 참가에 기대느라 늑장을 피운 탓에 제대로 팀을 꾸리지 못했다는 비판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맏언니의 책임감으로, 마지막 쿠바전에선 부러진 코뼈에 다시 공을 맞아 코피까지 흘리면서 골문을 지킨 오희지의 투혼이나 대회 기간까지 길어야 두 달인 시간 동안 뼈를 깎는 노력으로 대회를 준비한 선수들의 땀은 이번 대회가 남긴 한국 여자 수구의 유산이다.

여자 수구대표팀이 다시 꾸려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물론 선수들도 '쉽지 않을 것'이란 건 안다. 그래도 두 달 동안 수구에 정이 단단히 든 선수들은 다시 한 번 대표팀이 꾸려지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김예진은 "나는 경영에서 잘하는 선수가 아니었다. 하지만 불행했던 인생에 수구가 '꽃길'이 됐다"고 수구와 만남에 의미를 부여했다. 경다슬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절실했다. 이기적인 삶을 단체를 위한 삶으로 바꿔 준 종목"이라며 "팀이 없어지는데 계속하고 싶다. 비인기 종목이고 이벤트성 팀이었던 건 안다. 그래도 한국인이라면 끝까지 해 봐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수구에 대한 열망을 내비쳤다. 오희지는 "서울, 인천에는 클럽팀이 있더라. 전남에 내려가서 클럽팀을 꾸려 마스터스대회도 나가 보려고 한다. 수구를 키우고 싶다"고 의욕을 보였다. 선수들에게 수구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준 '꽃길'이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이번 대회 여자 수구는 어떤 의미로 남을까. 수구는 한국 수영의 현재를 적나라하게 보여 줬다. 한국 엘리트스포츠는 수많은 스포츠 영웅들을 앞세워 올림픽·월드컵 등 국제 대회에서 놀랄 만한 성적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스포츠의 기본 종목이라 일컫는 육상과 수영에선 여전히 변방이고 불모지다. 전국 1만1636개 초·중·고교 중 수영장이 있는 학교가 불과 85개교에 불과한 현실 속에선 세계수영선수권대회 개최국이란 간판도 무색해진다. 하물며 여자 수구는 대회 유치가 확정된 2013년 7월부터 지금까지 무려 6년의 시간을 연맹 문제로 허송세월한 끝에 결성된 두 달짜리 대표팀이다. 앞으로 이런 대회가 다시 개최된다면, 적어도 연맹의 무능 속에 참가할 팀을 '급조'하는 해프닝은 없어야 한다는 교훈을 남긴 셈이다.
 

광주=김희선 기자 kim.heeseon@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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