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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어도, 배 타도 감세…정부도 손 못쓰는 '근로자 비과세'

세금 이지미. [중앙포토]

세금 이지미. [중앙포토]

물가 따라 비과세 늘리자니 세수 감소, 줄이자니 조세저항 
1996년 3월8일 김영삼 전 대통령이 속한 신한국당은 총선 승리를 위한 15대 공약을 발표했다. 이때 '유리지갑' 월급생활자의 환심을 사기 위한 공약 중 하나가 '근로자 밥값(식대)엔 세금을 걷지 말자는 제도'다. 근로자 식대 비과세 한도는 2004년 매월 5만원에서 10만원(한 끼 당 5000원)으로 올랐다. 하지만, 서울 지역 냉면 가격이 평균 8962원(올해 6월 기준 행정안전부 자료)까지 오르는 동안 비과세 한도는 그대로였다. 다른 근로자 비과세 혜택이 계속해서 늘다보니 이 한도를 늘리지도, 제도를 없애지도 못한 채 남아 있게 된 것이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근로자 비과세 제도 중 상당수가 현실 물가 반영 없이 사실상 방치된 것으로 22일 드러났다. 물가에 맞춰 비과세 한도를 늘리자니 세수 감소가 우려된다. 그렇다고 세제 혜택을 줄이자니 유권자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근로자들의 조세 저항이 걱정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교원 연구활동비 비과세 한도 28년째 20만원  
근로자 비과세 한도가 가장 오랫동안 변하지 않은 항목은 자가운전보조금이다. 근로자가 자기 차량을 이용해 출장 등을 갈 때 회사가 지급하는 이 보조금의 비과세 한도는 36년 전인 1983년 20만원으로 정해졌지만, 올해 들어 물가가 3.5배 늘어나는 동안에도 한도는 그대로였다. 이 밖에도 교원·연구원의 연구활동비(1991년), 선원 승선수당(1999년), 벽지수당(2008년) 등도 모두 물가와 상관없이 비과세 한도 20만원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비과세 한도 늘리면 소득 늘어 내수엔 긍정적 
비과세 한도를 물가에 맞춰 올리면 근로자가 소비에 활용할 수 있는 가처분소득(총소득-세금·사회보험료 등 비소비지출)이 늘어 내수 경기에 긍정적인 효과는 있다. 이 때문에 전국경제인연합회·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단체들은 이 비과세 한도를 현실에 맞게 한도를 높이자고 주장한다. 근로자 비과세 한도뿐만 아니라 소득세 등 국세를 신용카드로 납부할 때 붙는 수수료 0.8%에 대해서도 면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홍성일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팀장은 "신용카드 결제자에게만 납세 수수료를 붙이는 것은 현금과 신용카드 결제를 차별하는 것"이라며 "내수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근로자의 가처분소득을 늘리는 방향으로 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근로자 실효세율 낮고 면세자 너무 많아…"비과세 줄여나가야" 
정부는 반면 비과세 항목을 점차 줄여나가자는 입장이다. 이미 근로소득의 실효세율(법정세율에서 면세조치 등을 뺀 실제 세금 부담률)이 낮아 비과세 항목·한도를 더 늘리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국회예산정책처의 '2018년 조세수첩'에 따르면 국내 근로소득자의 실효세율은 평균 5.2%(2016년 소득 기준)로 근로소득 이외 사업·배당·이자 등으로 돈을 버는 종합소득자의 실효세율(14.6%)에 크게 못 미친다. 근로소득자 1774만명 중 774만2000명(43.6%)이 면세를 받고 있지만, 종합소득자는 587만5000명 중 74만2000명(12.6%)만 면세자에 해당한다. 그동안 근로자에게 선심성으로 제공된 비과세 항목을 줄여 근로자 실효세율을 자영업자 등 다른 소득자와 비슷하게 맞춰야 조세 형평성이 보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그러나 여론 반발을 우려해 이 같은 입장을 정책화하는 데는 주저하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올해 초 신용카드 소득공제 축소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가 정치권 반발로 무산된 적이 있다"며 "'비과세 다이어트'는 원칙대로 제도화 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다"고 귀띔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여론의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세제 포퓰리즘'을 줄이는 데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비과세 혜택은 예외적인 부문에서만 부여해야 한다"며 "면세 비율이 높은 근로자의 비과세 제도들은 대폭 줄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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