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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마밑 '요괴의 성'에 깜짝 … 집으로 119 출동한 사연

기자
박헌정 사진 박헌정
[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39)
'윙' 소리 대신 '붕' 소리가 나는 커다란 말벌도 무섭지만 금방 쑥 커버린 말벌집 또한 만화에 나오는 요괴의 성처럼 느껴져 약간 오싹했다. 사진을 찍어놓고 보니 뱀 대가리처럼 보이기도 했다. [사진 박헌정]

'윙' 소리 대신 '붕' 소리가 나는 커다란 말벌도 무섭지만 금방 쑥 커버린 말벌집 또한 만화에 나오는 요괴의 성처럼 느껴져 약간 오싹했다. 사진을 찍어놓고 보니 뱀 대가리처럼 보이기도 했다. [사진 박헌정]

 
단독주택으로 이사 온 지 넉 달째다. 단독에 살면 일이 엄청 많다는 말을 누누이 들었던 터라 바짝 긴장했다가 점점 익숙해지면서 건방진 생각도 좀 들었다. ‘게으른 사람들… 이 정도도 움직이지 않고 어떻게 살아?’ 아, 그런데 점점 현실이 만만찮게 다가온다. 계절이 바뀔수록 더 그렇다.
 
요즘 내가 몰두하는 건 해충들과의 싸움이다. 집 안팎에 단속하고 정리해야 할 일도 많지만 더워질수록 날아다니는 벌, 모기, 파리와의 접전이 치열해진다. 며칠 전에는 생전 처음 119에 전화했다. 아내가 처마 밑에 말벌집이 있다고 해서 봤더니 만화에 나오는 요괴의 성 같은 벌집이 벌써 두루마리 화장지 크기로 붙어 있다.
 
수시로 오가는 곳인데 왜 못 봤을까? 두꺼운 옷 입고 비닐백 같은 거로 잽싸게 콱! 틀어막을까 하다가 아무래도 내 자신감만큼 몸이 빨리 반응하지 못할 것 같았다. 검색해보니 말벌집은 아무리 작은 것도 119에 연락해야 한단다. 고맙게도 대원 세 분이 와서 방호복으로 갈아입고 순식간에 제거해주었다. 말벌집은 금방 크게 자라니 작을 때 처리해야 한단다. 그 후로 말벌 두 마리가 더 날아왔다. 집도 가족도 없어져 황당했을 텐데 한 놈은 전기채로 잡았지만, 또 한 놈은 아주 잽싸다. 몇 합 겨루다 물릴까 봐 겁이 나서 피했더니 다른 곳으로 갔나 보다.
 
단독주택의 모기가 아파트 모기보다 더 크거나 집요한 건 아니다. 다만 숫자가 많다. 아파트에선 한두 마리씩 잡으면 되었지만 여기선 하룻밤에 수십 마리씩 잡아도 또 그만큼 나타난다. [사진 Pixabay]

단독주택의 모기가 아파트 모기보다 더 크거나 집요한 건 아니다. 다만 숫자가 많다. 아파트에선 한두 마리씩 잡으면 되었지만 여기선 하룻밤에 수십 마리씩 잡아도 또 그만큼 나타난다. [사진 Pixabay]

 
그다음은 모기다. 전에 살던 아파트에는 오래된 나무가 많아 봄부터 모기가 극성이었는데 여기 모기들은 그렇게 독하지 않은 것 같았다. “이놈들이 서울보다 순진하네. 물 줄도 몰라.”하고 코웃음 쳤더니, 이런, 아직 시즌이 아니었다. 아파트보다 온도가 낮아서 그런지 본격 여름 되어서야 앵앵거리기 시작한다. 곰팡이인 줄 알았던 처마 밑의 새카만 것들이 자세히 살펴보니 전부 새끼 모기였다. 그중에 '밥벌이' 가능해진 놈부터 문 열 때마다 방 안으로 들어오는가 보다.
 
처음에는 전기 해충퇴치기를 사다 걸었는데 애꿎은 하루살이들만 하루 먼저 죽길래 전기 모기채를 들고 본격적인 소탕에 나섰지만 이놈들이 피해서 높은 곳으로 도망가 붙는다. 그때는 에프킬라를 독하게 뿌리면 후두두 떨어져 내린다. 요즘에는 새끼건 큰놈이건 초저녁 시간에 빼곡히 붙어 자고 있을 때 기습해서 약을 뿌린다. 그렇게 압도적인 힘으로 근거지를 소탕한 후 모기향까지 피우는데 그 연기마저 뚫고 한두 놈씩 들어와 나를 노리는 걸 보면서 생명의 절대성을 실감한다. 그리고 그 절대성을 전기 충격으로 소멸시킨다.
 
평소에 날개 접고 벽에 붙어 자는 모기를 가만히 쳐다보면 세상에 이렇게 약한 게 있을까 싶다. 그런데 새벽에 귓전에서 윙윙거리는 소리는 얼마나 독하고 공포스러운가. 게다가 이미 피를 먹고 새까맣게 차오른 놈들은 참 탐욕스러워 보인다. 모기의 침 속에 있는 마취물질 때문에 가렵다는데, 가렵지만 않다면 이렇게 극단적인 대립까지는 없을 것 같다. 참을 수 있는 작은 가려움 때문에 상대의 생명을 끊어야 하는 고단한 마찰… 결국 모기장을 설치함으로써 살생을 줄이게 되었다.
 
결국은 잡기보다 피하기를 택했다. 모기장을 설치하고 나선 적어도 잘 때만큼은 편안해졌다. [사진 박헌정]

결국은 잡기보다 피하기를 택했다. 모기장을 설치하고 나선 적어도 잘 때만큼은 편안해졌다. [사진 박헌정]

 
그리고 파리다. 언젠가 쓰레기봉투 안에 생선 뼈가 있었는지 평소에는 나타나지 않던 길고양이가 밤새 쓰레기를 헤쳐놓았다. 꺼내 먹으면서 마당에 얼마나 치댔던지, 물청소까지 했는데도 퍼런빛으로 반짝거리는 똥파리들이 몰려들어 윙윙대고 강아지는 거기서 파리를 쫓느라고 혼자 막춤을 춘다.
 
이 녀석이 전주에 와서 처음 사귄 동물 친구는 똥파리다. 아침마다 마당에 나가 똥을 누면 파리 떼가 들러붙으니, 이 녀석이 먹여 살리는 셈이다. 아파트에 가끔 나타나는 파리는 작고 까만 놈들인데, 재래식 변소를 쓰던 시절에 함께 뛰놀던 정통 똥파리를 만나니 너무 오랜만이라 그런지 반갑기보다 영 낯설다. 초록빛 몸통이 금속성으로 느껴져 마치 기계장치 내장된 초소형 드론 같다.
 
인간과 날 것들의 싸움은 애초부터 부질없다. 아무리 상대가 미약하고 이쪽의 무기가 좋다고 해도 방법은 속임수와 유인뿐이니, 속지 않고 날아가거나 높이 붙어버리면 방법이 없다. 2차원이 어떻게 3차원을 당할까.
 
아파트에 가끔 나타나던 파리는 까맣고 작은 것이었는데 마당에는 어린 시절 봤던 구릿빛 파리가 나타난다. 개똥에 앉아 있곤 하는 일명 ‘똥파리’, 파리채나 전기 모기채로 잡으려고 해도 엄청 날쌔다. [사진 Pixabay]

아파트에 가끔 나타나던 파리는 까맣고 작은 것이었는데 마당에는 어린 시절 봤던 구릿빛 파리가 나타난다. 개똥에 앉아 있곤 하는 일명 ‘똥파리’, 파리채나 전기 모기채로 잡으려고 해도 엄청 날쌔다. [사진 Pixabay]

 
가장 불가사의한 것은 거미다. 하루 이틀만 신경 쓰지 않아도 거미줄이 구석은 물론이고 어떤 때는 사람 지나다니는 길목에까지, 그것도 꼭 얼굴 높이에 처져 있다. 얼굴에 거미줄 붙었을 때의 찝찝함이란… 도대체 그 작은 몸 어디에서 그렇게 끝없이 줄이 나올까. 그래도 가끔 모기나 파리가 걸려있을 때는 같은 편 같은 느낌도 좀 든다.
 
마당에 풀 나오고, 잎 떨어지고, 마루에 먼지 쌓이고, 화초 물 줘야 하고, 골목 쓸어야 하고… 자잘한 일이 많은데 해충까지 극성이다. 그러니 마당이나 화단에 꾸물꾸물 기어 다니는 것들만 봐도 상대적으로 예쁘고, 쥐 없는 것만 해도 고맙다. 위로받는 것도 있다. 손가락만 한 고추가 매달리고, 어설프게 꽂은 상추 모종이 쑥쑥 나와서 삼겹살 굽기 바쁘다. 땅에 붙어살다 보니 장맛비도 새롭게 보인다. 이슬비, 가랑비, 여우비… 말로만 듣던 것인데 이제 알 것 같다.
 
이런 것 따져보면 사람만 편히 살겠다는 욕심도 좀 과한 것 같다. 거미줄, 벌집, 흡혈… 놈들에게는 몸을 쉬게 할 집과 양식, 절실한 생명의 조건들이다. 선만 넘어오지 않으면 적당히 같이 살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박헌정 수필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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