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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의 시시각각] 한·일 간 국가 충돌 피할 수 있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에 대처하기 위해 지난주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가 만난 자리에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돋보였다. 그는 “저 자신이 한·일회담 반대 투쟁을 한 사람이다. 이번 사태는 일본 정부의 잘못이지만 우리도 반일 감정에 호소하거나 민족주의로 대응하지 말고, 일본이 방향을 전환할 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했다. 그가 제시한 방안은 “전문성과 권위있는 특사를 일본에 파견, 현안 해결에 물꼬를 트고 정상회담을 추진하라” “강제징용 배상은 일단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지급하고, 일본 정부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식을 검토하라”였다. 어떻게 보면 상식적인 발상인데 대통령의 참모라는 사람이 입만 열면 ‘죽창가’나 외치고 제 맘에 안 드는 정당한 의견 제시를 친일파로 낙인찍는 이상한 권력 풍토가 되다 보니 손 대표의 발언이 특별하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손학규의 상식이 돋보이는 이유
특사교환 → 정상회담으로 풀어야
정부 ‘징용배상금’ 선지급 검토를

7·18 청와대 회동이 한·일 양국 정부에 ‘외교적 해결 노력’을 촉구하는 공동 발표문을 도출한 것도 잘되었다. 이로써 문재인 대통령은 종족 간 패싸움 방식을 선동하는 일부 집권세력의 유혹에서 벗어나 국가원수의 시야에서 호혜평등, 상호주의 원칙에 입각해 쿨하게 접근할 명분을 얻게 되었다. 일본 같은 일당 지배체제에선 보기 어려운 자유경쟁 정당체제의 초당적 결의가 나온 만큼 문 대통령은 이를 소중한 정치 자원으로 잘 활용해야 한다.
 
특사교환 외교→정상회담 개최는 적대성 국가 간에 단교(斷交)나 전쟁을 피하면서 우호관계를 맺는 효과적 수순임이 경험적으로 입증됐다. 가까이는 2018년 남북관계가 그랬다. 좀 멀리는 1961년 김종필·스기 특사교환을 거쳐 박정희·이케다 한·일 정상회담을 한 선례가 있다. 61년 정상회담은 단교 상태에 있던 한국과 일본을 수교(修交)협상 열차에 태운 출발역이었다. 62년 김종필·오히라 청구권 협상 타결(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이라는 중간 정거장을 거쳐 65년 6월 22일 국교 정상화의 종착역으로 이어졌다.
 
한국이 이때 받은 청구권 자금 5억 달러를 포항제철(1억3000만 달러 투입)을 비롯해 경부고속도로, 소양강댐 등 경제건설의 밑천으로 삼아 문 대통령이 요새 국제사회에서 자랑스럽게 말하곤 하는 “식민지와의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에서 불과 70여 년 만에 세계 11위의 경제 대국”(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5월 7일자 기고문)이 된 것이다. 박정희 시대의 피와 땀과 눈물의 스토리가 없었다면 지금 정권의 자랑도 없었으리라. 수교 협상 때 ‘매국노’ ‘제2의 이완용’ 소리를 들어가며 밀사, 위험한 담판, 대학생들을 상대로 한 공개 설득, 해외 유랑을 점철했던 김종필은 훗날 “청구권 자금은 민족의 혈채(血債)였다. 5억5000만 달러를 받은 필리핀과 인도네시아·미얀마처럼 배상금을 국민 개인에게 나눠주거나, 리조트 같은 소비시설을 건설하는 데 써버렸다면 국가경제의 도약 기회는 날아갔을 것”(『김종필 증언록』)이라고 회고했다.
 
경제성장으로 재정 규모가 비약적으로 커졌을 때 비로소 한국 정부는 다음 수순으로 1975년,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강제징용자를 포함해 식민지 시대 개별 피해자들의 신고를 받아 보상을 했다. 청와대 회동에서 손학규 대표가 거론한 ‘2018년 대법원 판결에 따라 징용 피해자들에게 우리 정부가 먼저 배상금을 지급한 뒤 일본 정부와 외교 협상을 벌인다’는 ‘선 지급 후 구상권’ 제안은 국가 간 협정과 국내적 역사를 두루 감안한 콜럼버스의 달걀 같은 것이다.
 
한국이 일본에 보낼 특사로는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다 신뢰하는 경제인이 적합할 듯하다. 그 뒤 아베가 비슷한 레벨의 특사를 한국에 파견해 핵심 쟁점을 타결하고 양자 정상회담을 여는 것이다. 1961년의 경우 특사교환에서 정상회담까지 걸린 시간은 18일이었다. 한·일 간 국가 충돌을 피할 수 있는 시간은 여전히 남아 있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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