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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목소리 큰 사람들, 그들은 왜 그럴까?

옳고 그름 아닌 좋고 나쁨으로 사람·사안 판단… 일보다 ‘자기 사람’ 우선주의 경향
사진:ⓒ gettyimagesbank

사진:ⓒ gettyimagesbank


서광원의 인간과 조직 사이(17) 목소리 큰 사람들, 그들은 왜 그럴까?

오래 전 대형 생명보험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임원으로 승진한 사람에 대한 투서가 접수돼 조사해 보니 대학 졸업장이 가짜였다. 혹시나 하고 모든 임직원을 조사해 보니 놀랍게도 대졸자 중 60%가 가짜 졸업증명서로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알고 보니 투서자도 가짜 대졸자였다.
 
흥미로운 건 이들 가짜 대졸자들이 그동안 회사에서 약속이나 한 듯 각 대학 동문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었고, 동문회에서는 물론 사무실에서도 ‘군기’를 가장 강조한 ‘무서운 선배’들이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왜 큰 목소리와 군기로 동문회를 이끌었을까? 꼭 그래야 했을까? 당시 실상을 조사했던 책임자는 “다들 그렇게 해야 정체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가짜 대졸자가 군기 강조하며 조직 주도
진화생태학적 관점에서 큰 목소리는 덩치가 크다는 걸 의미한다. 어디선가 천지를 흔드는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올 때 우리는 그 소리의 주인공을 대단히 덩치가 큰 사람으로 여긴다. 우리만이 아니다. 여름 밤이면 엄청나게 울어대는 개구리들도 덩치가 크다는 걸 입증하기 위해 더 큰 소리를 낸다.
 
 
인간은 뭔가를 더 잘 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잘못이나 약점을 감추기 위해 더 많은 거짓말을 한다. 그들이 그 큰 목소리로 졸업장만 위조했을까? 수많은 마음 위조, 충성 위조, 지시 위조, 윤리 위조를 했을 것이다. 그 조사 책임자가 했던 말이 있다. “이들이 정리되자 몇 년 동안 회사 다니는 게 말 그대로 태평천국이었습니다.”
 
 
어느 곳에나 유난히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영향력이 통한다 싶으면 목소리부터 한 옥타브 올리는 사람들이다. 자기 성질을 이기지 못해 그러는 이들도 있지만, 이들은 대체로 높은 목소리로 이기려 한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꼭 만나게 되는 이들에게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옳고 그름보다 좋고 나쁨으로 사람이나 사안을 바라보고 판단한다. 옳고 그름으로 바라보고 판단한다는 건 시시비비(是是非非), 그러니까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하는 것이다. 사리를 공정하게 하는 것이다. 좋고 나쁨은 다르다. 잣대가 감정적이다. 옳은 것이라도 자신에게 불리하거나 손해가 되면 나쁜 것이다. 그른 일이라도 자신에게 좋으면 좋은 것이다. 한마디로 (나에게) 좋은 게 좋은 것이다.
 
 
약함을 인신공격이란 무기로 보완
당연히 합리적인 근거가 약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이 약함을 인신공격이라는 무기로 보완한다. 사람은 도덕적이어야 하지만, 죄를 지었다고 그 사람의 모든 언행이 다 비도덕적이거나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그들도 옳은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다. 어쩌다 한 번 잘못하거나 실수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목소리 큰 사람들은 상대의 삶에 새겨진 ‘주홍글씨’를 붙잡고 늘어진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그걸 내세워 그들이 하는 말 자체를 믿을 수 없는 것으로, 더 나아가 말할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만든다. 자기에게 (기분) 나쁜 것을 옳지 않은 것으로, 더 나아가 비도덕적인 것으로 호도한다.

 
 
이들은 차분하게 조목조목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어떤 일이든 소리를 높이고 삿대질을 하며 책상을 쳐야 하는 듯하다. 합리적인 근거가 아니라 감정과 몸을 주요 무기로 사용한다.
 
 
항상 이런 태도를 보이니 상당히 일관성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그렇지도 않다. 자신이 잘 보여야 하는 사람에게는 절대 목소리를 높이는 법이 없다. 높은 분들 앞에서 자신의 경쟁자에 대해 은근히 험담할 때는 목소리에 힘을 좀 주기는 하지만 높이지는 않는다. 자충수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이들은 자신에게 소리를 높이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높은 소리=높은 분’인데 그걸 놔두겠는가? 이들은 높은 분들의 이런 성향과 기분을 잘 안다.
 
 
반면 직급이 높아도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거나 대등한 사람들, 그리고 아랫사람들에게는 대단히 일관적이다. 뭔가 걸리적거린다 싶으면 일단 목소리부터 올리고, 상대의 말을 무조건 끊는다. “그래서 뭡니까? OO라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어쩌자는 겁니까?”….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이들이 조자룡 헌 칼 쓰듯 하는 게 또 있다. 입만 열면 자신이 얼마나 회사를 생각하는지, 그리고 회사의 미래를 염려하는지 강조한다. 조직에 대한 자신의 헌신과 충성도를 알리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상대를 반대하거나 누르기 위해 그렇게 한다. 누군가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자고 하면 “그러다 잘못 되면 우리회사의 미래는 어떻게 됩니까? 책임질 수 있습니까?” 이런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자신이 잘 할 수 없는 일을 하려는 경쟁자를 극구 방해한다.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라 그 자신도 모를 텐데, 모두의 관심이 집중된 것이니 편한 대로 갖다 쓴다. ‘편한 대로 갖다 쓴다’고 한 건 그렇게 회사의 미래를 입에 달고 다녀도 구체적인 청사진 하나 없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있어도 남의 것을 가져와서 자기 것처럼 말할 때가 많다. 그들은 구체적인 청사진을 만드느라 골몰하는 시간에 한 사람이라도 더 관계를 늘리는데 집중한다.
 
 
이들의 사고방식은 간단하다. 일을 잘 해서 높은 분의 눈에 띄는 건 투자 대비 효과가 낮다. 무엇보다 시간이 걸린다. 관계를 통해 눈에 띄는 게 훨씬 쉽고 효과적이라는 걸 그들은 잘 안다. 일보다 관계를 중시하기에 이들의 주요 목표는 인맥 넓히기와 ‘자기 편’을 만드는 것이 된다. 갖가지 모임을 찾아다니고 만든다. 앞에서 말한 대학 동문회는 기본이고 각종 동호회에 부지런히 발을 들여 놓고 ‘자기 사람’을 만드는 데 주력한다. 혼자보다는 여럿이 낫다는 걸 잘 알기에 지위를 향한 열망이 누구보다 강하고, 갖은 수를 써 그 지위를 확보한다. 숫자는 힘이니 조직을 움직인다면 모든 일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
 
 
일 잘 하는 사람, 특히 묵묵히 일하는 사람과 이런 사람들은 이 대목에서 본질적인 차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두 유형은 여러 차이점이 있지만, 이런 인간 이해 능력에서 대체로 길이 엇갈리기 시작하고, 시간이 갈수록 차이가 벌어진다.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은 일은 잘 알지 몰라도 의외로 인간(의 본성)을 잘 모른다. 일을 앞세우다 인간을 잃는 일이 빈번하다. 예를 들어 앞에서 말한 옳고 그름이 중요해질 경우 이들은 친한 사이보다 사리분별을 우선한다. 일을 우선하는 것이다. 그게 옳기 때문이고 조직을 위한 길이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자신의 영향력 증대에 관심이 많은 이들은 일보다 인간을 우선한다. ‘사람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기 사람 우선주의’일 뿐 회사가 필요로 하는 사람은 관심이 없다. 이들의 면면을 취재하다 놀란 점 중의 하나는 자기 사람을 만들고 ‘적’을 무너뜨려야 하는 목표를 위해 끊임없이 인간을 공부한다는 점이다. 이뿐인가? 사람을 실제 접촉하면서 경험을 축적한다. 시행착오를 통해 자신만의 노하우를 체득한다. 시행착오를 통한 노하우 습득은 생존의 기본 원리이니 인간 이해 능력이 나날이 발전할 수밖에 없다.
 
 
덕분에 일보다 인간을 더 잘 안다. 어떤 사람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게 뭔지, 일 잘하는 사람을 어떻게 다루어야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게 할지를 안다. 대기업의 경우 부장이나 팀장급에서 이런 특성은 어느 정도 눈에 띄는 차이점에 불과하지만 임원급에서는 자신들의 미래를 좌우하는 경쟁력이 된다. 올라갈수록 사람을 대하는 일이 본업이 되는 까닭이다.
 
 
적을 무너뜨리기 위해 끊임없이 인간 공부 
당연히 양쪽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한데, 그러지 못해 한쪽으로 쏠린 이들의 삶은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점철된다. 일만 아는 사람들은 인간을 모르기에 아쉽게 물러나거나 밀려나는 일이 많다. 인간을 잘 알기에 ‘무난하게’ 임원에 오른 이들은 너무 이용하고 조종하려는 우를 범한다. 자기 이익을 위해 모든 사람을 도구화한다. 그러다 보니 인간 이해 능력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하차한다. 사장이 되더라도 오래 가지 못한다. 자기 위주로 호통만 치는 리더를 누가 좋아하겠는가? 탁월한 리더들은 의외로 목소리가 작다.
 
 
어쨌든 조직을 ‘접수’한 이들은 자신의 스타일대로 조직을 운영한다. 대개 ‘우리는 하나’라는 멋진 구호를 내세워 만장일치를 선호하는 특징이 있다. 만장일치는 모든 사람이 찬성을 통해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멋진 협력 장치로 보이지만 사실은 자신에 반대하는 싹을 잘라내기 위한 용도다. 누가 자기 앞에 막아서는 걸 이상하리만큼 싫어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의견이 나오면 “다들 찬성하는데 왜 너만 그러느냐”고 반대자로 몬다. ‘우리’와 ‘그들’로 나눠 배제시킨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어빙 재니스가 “정확성보다 합의를 더 중시”하는 조직이라고 했던 바로 그런 조직을 만들어 간다. 구성원을 위한 조직이 아니라 조직을 위한 구성원을 만들어간다.
 
 
눈앞에 보이는 선명한 목표를 설정하는 건 당연한 것이다. 목표가 눈앞에 있을수록 결속력이 증대되는 우리 안의 성향을 활용한다. 그 목표는 대개 성과가 아니라 사람이다. 자신에게 반대하거나 경쟁하는 이들이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좋고 나쁨이라는 잣대를 들이대 이들을 없애야 할 악(惡)으로 몬다. 타협이란 있을 수 없다. 어떻게 악과 타협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선명성과 하나된 조직을 강조하고 헌신을 강조한다. 집단과 개인을 일체화시킨 다음 소속감을 요구하며 집단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구성원이 되어야 한다고 외친다. 자신은 절대 희생하지 않으면서 구성원의 희생은 당연시한다. “우리끼리 똘똘 뭉쳐야 한다”며 다른 집단과의 교류를 억제한다. 다른 생각들이 유입되는 걸 막는 것이다. 재니스에 의하면 이런 흐름은 집단 전체가 잘못된 길로 나아가는 집단사고(Groupthink) 조직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이들은 왜 이럴까? 역시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오랫동안 이런 이들을 살펴보다 보니 알게 된 게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개인적으로 만나 보면 ‘으르렁 대는’ 이미지와 달리 상당히 ‘인간적’이다. 의외로 겁도 많다. 보기와는 완전히 딴판이다. 불안감도 더 크고 불안에 예민하다. 삶의 궤적을 따라가 보면, 이런 겁과 불안을 이기기 위해 욱 하는 ‘결기’를 내세운 경험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적이 있다. 생각지 않게 자신감의 원천이 된 이런 해결법을 계속 강화해온 것이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는 이런 방식으로 해결하는 게 좋다는 게 고정관념으로 뿌리내려 있다. 더구나 힘으로 해결하는 게 얼마나 쉽고 편한가? 큰 소리는 웬만한 걸 덮어버릴 수 있다.
 
 
심리학자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과 [넛지]의 공동저자로 유명한 캐스 선스타인 등이 미국 시카고대 로스쿨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어떤 처벌을 내려야 할지 어려운 상황을 주고 형벌을 내려보라 했더니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어떤 이들은 가벼운 처벌을, 다른 이들은 중형을 내렸다. 그들에게 각각 합당한 논거를 제시하라고 했다. 그런 다음 어느 쪽이 더 쉬웠는지 물었다.
 
 
결과는 확실했다. 무거운 처벌을 내린 쪽이 더 쉬웠다고 대답했다.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도 중벌을 호소력 있게 제시할 수 있었다. 반면 낮은 형벌을 주어야 한다고 했던 쪽은 훨씬 어려웠다고 했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는 의식 때문이었을까? 시쳇말로 가혹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말발’이 잘 먹혔다. 조곤조곤 합리적으로 얘기하는 것보다 목소리 높이는 게 쉽고 편하다는 얘기다. 특히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할 때는 더욱 더.
 
 
더구나 우리 인간은 여럿이 있을 때 인기 있는 사람이 되려 하고, 더 나아가 영웅적인 행동을 하려 한다. 지금 죽어가는 환자를 앞에 둔 의사가 있다. 목숨이 경각이니 의사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자신도 잘 모르는 처치법을 선택하거나 어쩔 수 없다면서 포기하는 것. 의사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실험 결과 같은 의사라도 상황에 따라 달랐다. 의사들은 혼자 있을 때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훨씬 용감하게 행동했다. 환자의 생존 가능성이 아무리 작더라도 환자를 포기하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 했다. 필립 컬랜드와 랠프 러너의 연구에 의하면 무능력한 의사로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마치 개인적으로는 인간적인 사람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으르렁대는 사람으로 변하듯이 말이다.
 
 
이런 일반적인 성향에 권력욕이 더해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권력욕은 특정한 사람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침팬지 폴리틱스]를 쓴 동물행동학자 프란스 드 발은 무리를 이룬 집단, 특히 서열체계가 있는 무리를 이루어 사는 영장류 집단에서“권력 추구 자체는 천성적인 게 확실하다”고 했다. 그러니 진화적으로 가장 가까운 침팬지보다 뇌가 최소한 세 배 이상 큰 인간은 말할 것도 없다. “인간은 권력을 행사함으로써 만족을 얻으며 타인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려고 노력한다”고 말한 네덜란드 사회심리학자 마우크 멀더의 말은 이를 정확히 표현한 것이다. 이런 천성에 좀 더 강한 권력욕을 가진 사람에게 목소리 높이기는 자연스럽고 효과적인 수단이다.
 
 
강한 권력욕 가진 사람의 목소리 높이기 
침팬지 사회만이 아니라 인간 사회를 유심히 관찰한 프란스 드발은 이런 이들이 자신에 대해 말할 때 독특한 표현을 쓴다는 걸 발견했다. 이들은 흔히 ‘책임을 지고 있다’ ‘힘겨운 결단을 통해 사람들을 돕고 있다’는 표현을 한다. 돌려 말하면 자신에게 그럴 만한 힘이 있다는 걸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먼 곳의 얘기가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책임이 무겁다는 걸 알고 있다’ ‘어떻게든 여러분이(국민들이) 더 잘 살 수 있도록 돕겠다’ ‘우리 모두의 염원을 담아 시대적 사명을 완수하겠다’…. 자신이 이런 걸 할 만한 지위에 있다는 기본 전제를 깔고 있다. 겸손한 척 자신의 힘과 지위를 강조하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날마다 살아가는 회사에서 이런 이들을 만나는 일이 드물지 않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들과 좋은 사이가 될 수 없는 상황이 많은데, 자칫 잘못하면 당할 수밖에 없는 일이 흔하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다음 회에 알아보자.[계속]
 
 
※ 필자는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이다. 조직과 리더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콘텐트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사자도 굶어 죽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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