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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가장 많은 지도자가 떠났다...그래서


"감독님, 댓글 보지 마세요".
 
지난 5월28일 창원NC파크. 경기 전, 원정 더그아웃 바로 위에 위치한 좌석까지 내려온 여성팬이 양상문 전 롯데 감독에게 외친 말이다. 답변은 없었다. 청자는 어린이 팬이 건넨 야구공에 사인을 하던 중이었다. 여성팬이 한 말을 들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메시지가 전해졌다고 해도 반응하기 어려웠을 것. 그는 그저 응원을 하던 몇몇 팬을 향해 웃으며 인사를 하고 이내 감독실로 들어갔다.
 
팬심(心)의 영향력은 크다. 자생력이 부족한 야구단은 모기업의 마케팅을 위해 운영되는 게 현실이다. 이슈든, 인물이든 부정적인 여론이 이어지면 구단은 가벼운 문제로 보지 않는다. 인사로 이어지기도 한다.
 
현장에서는 개인 차이가 있다. 경기장에서 느껴지는 기류, 기사나 커뮤니티의 글을 본 선수와 지도자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부정적인 시선과 목소리에 무던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경기력에 지장을 받지 않기 위해 심리 관리를 한다. 
 
다수 야구인은 전문가라는 자부심과 신념이 있다. 다른 분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프로 무대에서 15년 이상 버텨낸 이들이 지도자가 된다. 여론에 자신을 돌아보거나 기분이 변할 순 있다. 그러나 그저 비난을 받는다고 거취와 관련된 선택을 하지는 않는다.
 
양상문 감독은 지난 18일, KIA와의 전반기 마지막 경기를 마친 뒤 구단에 자진사퇴 의사를 전했다고 한다. 롯데는 수용했고, 휴식기 첫 날인 19일 오전 발표했다. 떠난 이가 남긴 말에서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자책이 전해진다. 자신의 사퇴가 팀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도 드러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자진 사퇴를 바라던 일부 팬들의 목소리에 부응한 모양새다.
 
실제로 롯데팬에 신뢰를 잃은 이 상황이 결단을 내리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양 감독은 "사랑하는 팬들에게 송구스럽다"며 "내가 책임을 지는 게 팀을 살리는 길이라 생각했다"고 했다. 그도 한집안의 가장이자 부산 야구의 자존심을 지키려 했던 야구인이다. 그러나 자리 보존에 미련을 버리는 게 롯데와 팬들 위한 길이라고 여긴 것이다. 실체가 자진사퇴 모양새를 갖춘 경질이라도 마찬가지다.

 

양상문 감독은 야구팬을 향한 존중이 컸던 지도자다. 그러나 지난 수년 동안은 짝사랑이었다.
 
LG와 롯데라는 리그 최고의 인기 팀에서 현장과 프런트 수장을 맡았다. 비난을 한 몸에 받았다. LG 사령탑 시절에는 팬들에 사랑을 받는 베테랑 선수들의 출전 기회를 줄이면서까지 리빌딩을 추진했다. 그 탓에 미운털이 박혔다. 2014시즌과 2016시즌에 LG를 포스트시즌에 올려놓으며 얻은 신뢰는 단장이 된 뒤 정성훈과 이별하는 과정에서 다시 잃고 말았다. 롯데 시절에는 참담한 순위와 각 부분 팀 지표가 대변한다.
 
비난을 받는 이유는 있었다. 그렇게 '야구인' 양상문이 야구팬과 공유 아닌 공유, 소통 아닌 소통을 하며 생긴 이미지도 많다. 리빌딩만큼은 맡길 수 있는 지도자, 소통에 능한 리더, 좋은 사람 등이다. 부정적인 인식은 대체로 경기 운용과 선수 기용에 기인한다. 좌우놀이, ⅓이닝 쪼개기 등이다.
 
또 한 가지가 있다. '말이 많다'. 필요 이상으로 인터뷰를 많이 한다는 것이다. 양 감독의 멘트로 기사의 제목이 나오면 속된 말로 '입을 턴다'는 댓글이 가장 윗자리를 차지한다. 항상 말이다.
 
한 명, 한 명의 생각이 모여 공감을 얻고 여론이 됐다. 이유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인터뷰의 빈도와 눈길을 끄는 발언이 많을 수 있다. 이미 굳어진 이미지 탓에 '그런' 식으로 언급되고 각인되는 경향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재조명이 필요하다. 표면으로 드러난 실제와 진정한 의도가 다르다.
 
취재진의 질문에 '모르쇠'로 일관하는 사회 이슈의 주역들을 떠올려보자. 스포츠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답변은 질문을 받은 이의 자율이다. 회피를 하려는 의도로 두루뭉술하게 얘기하더나 침묵으로 일관하는 지도자도 있다.
 
양상문 감독이 '입을 턴다'라는 비아냥을 들은 건 롯데 감독 시절이 아니다. 그 전부터다. 과거로 시간을 돌려보자. 2004-2005년, 첫 번째로 롯데 사령탑을 맡던 시절의 양 감독은 결코 말이 많지 않았다. 대화가 어려운 취재원으로 꼽히기도 했다.  
 
그러나 방송사 해설위원으로 활동을 하고 다시 현장으로 복귀한 뒤에는 달랐다. 선수와 지도자로 구단 내부에만 있던 인물이 산업 전반을 두루 경험하면서 시야가 넓어졌다. 그리고 야구팬과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그가 '취재진의 질문에 반드시 답변을 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거나, 말을 하지 못해 안달이 났을까. 아니다. 취재진이 아닌 야구팬을 향해 최선을 다하려고 했다.
 
연패가 이어진 팀의 감독 브리핑 시간은 대개 분위기가 무겁다. 양 감독은 자신이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먼저 웃어 버린다. "야구를 잘해야 좋은 얘기도 나눌 텐데 미안하다"며 말이다. 그렇게 다른 쪽 뺨도 내밀었다.
 
'말이 많다'는 질타는 단순히 인터뷰 기사가 많아서는 아닐 것이다. 결과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변명이나 합리화를 하려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그의 어조를 듣고 표정을 봤다면 그렇게 판단할 수 없다. 상식적으로 말이다.
 
양 감독은 성적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팬들이 궁금해 하는 것에 대해 사령탑으로서의 입장을 표명하는 게 예의이자 소통이라고 봤다. 무대에서 물러나는 순간에도 '그 자리'에 있는 사람으로서 팬들에게 최소한의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다.
 
나불댄다는 비아냥의 실체는 인터뷰 수나 내용이 아니다. 그저 반감이다. 성적, 경기 운용, 선수 기용 그리고 개인적인 부분까지 꼬투리를 잡혔을 뿐이다. 
 
말이 가장 많다던 야구인이 이제 현장을 떠났다. '입을 턴다'던 이들이 원하는 대로 말이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 위로와 응원을 받는다. '잘 사퇴했다'며 반기는 목소리도 있지만, 대체로 그렇다. 반감이 조금은 줄었다. 이제 객관적으로 볼 때다. 양상문은 어떤 지도자였는가.
 
 
안희수 기자 An.heesoo@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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