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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공급망 지역화가 대세…한·일, 갈등 탓 혜택 못 누려

로드리그

로드리그

한국과 일본 사이 반도체 소재·장비 그리고 완제품의 흐름은 거대한 해류와 같았다. 누구도 흐름을 막거나 거스를 수 없을 듯했다. 그런데 일본의 소재 수출 규제 이후 흐름에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두 나라 갈등이 동북아 지역의 현상이지만, 글로벌 공급망(Global Supply Chain) 측면에서도 큰 파장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 중앙SUNDAY가 지리경제학의 대표학자인 장 폴 로드리그(사진) 미국 호프스트라대 교수에게 서둘러 전화를 건 이유다. 그는 글로벌 공급망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국제정치적 갈등을 10여년 전부터 경고해왔다.
 

지리경제학자 미 로드리그 교수
기업들 가까운 곳서 원자재 수입
생산서 인도까지 4~5일권 선호

트럼프 무역전쟁이 방아쇠 당겨
생산기지 자국·주변국으로 이동

기술 격차 줄고 부품 조달 다변화
일본의 수출 규제 장기화 안 될 것

한·일 사이 공급망도 국제정치적 갈등 탓에 위협받기 시작했다.
“지리경제학자인 내가 보기에 한국과 중국, 일본 경제는 아주 가깝고 구조적으로 서로 의존하고 있다. 반면 세 나라 민족주의가 각각 다르다. 문화적 동질감보다 갈등의 기억이 더욱 뚜렷한 곳이다. 그 바람에 최근 추세인 글로벌 공급망의 지역화가 낳을 혜택을 누리지 못할 듯하다.”
 
지역화란 무슨 뜻인가.
“글로벌 공급망은 1980년대 본격적으로 구성되기 시작했다. 기업들이 조금이라도 싼 노동력과 원자재를 조달하려는 과정에서 등장했다. 90년대 중반 이후 글로벌 공급망이 거의 완성됐다. 비용 절감이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엔진이었다. 하지만 요즘 상황이 바뀌었다.”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
“글로벌 공급망이 파편화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지역화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생산기지를 자국이나 주변국가로 이동시키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이 30여년 만에 쪼개지기 시작한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과 패권전쟁 탓인가.
“트럼프의 등장이 중요한 분수령이었다. 이전까지 글로벌 공급망을 위협하는 리스크 가운데 정치적인 요소는 그다지 주목받지 않았다. 다양한 장치들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로드리그 교수가 말한 ‘다양한 장치’란 자유무역지대 또는 규제프리존 등이다. 기업들은 중국이나 동유럽 등의 자유무역지대 등에 생산기지를 설치했다. 해당 국가의 법규나 정치적 상황이 바뀌어도 영향을 적게 받을 수 있어서다. 그런데 트럼프 등장 이후 상황이 돌변했다.
  
첨단산업일수록 지역화 빠를 전망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어떻게 바뀌었는가.
“세계 최대 시장을 가진 미국이 중국과 패권경쟁을 본격화했다. 애플 등 미국 기업이 중국에서 만들어 미국에 들여오는 제품에 25%씩 관세를 매겼다. 기업들이 글로벌 공급망을 짤 때 예측하지 못한 일이다. 당시 기업들은 자유무역주의가 지속될 것으로 봤다. 보호무역주의는 바보들이나 하는 일로 여겼다.” 
 
기업들이 저비용의 매력을 포기하기 쉽지 않을 텐데.
“정보기술(IT) 분야에서는 값싼 노동력이나 원자재 매력보다 기술력이 더 중요하다. 요즘 IT기업은 첨단 기술을 갖고 있는 인재를 잡기 위해 많은 돈을 들일 준비가 돼 있다. 게다가 인공지능(AI) 활용 등으로 생산 과정의 자동화가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값싼 노동력이 기업에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기술적 변화 때문에 미국 기업들이 생산기지를 북미지역에 설치하기 시작했다. 글로벌 공급망의 지역화다. 첨단산업일수록 지역화가 빠르게 이뤄질 전망이다.”
 
아까 공급망의 지역화 혜택이라고 했는데, 무슨 말인가.
“요즘 기업들은 소재나 중간재, 완제품의 생산과 인도가 4~5일 사이에 끝날 수 있는 지리적 영역을 선호한다. 미국 기업이 중국 생산기지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 달 정도 잡아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한·중·일 세 나라는 공급망을 지역화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세 나라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기는 했지만 지금은 제자리 걸음이다.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민족주의가 고조되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최근 중국인들은 그동안 드러내지 못했던 존재감을 과시하고 싶어한다. 일본은 (재무장 등) 전략적 목표를 추진하고 있다. 한반도는 남북으로 분단돼 있다.”
 
남북 분단도 공급망 지역화에 변수로 작용한다는 말인가.
“지리 경제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남북 분단은 동북아시아 지역 갈등의 방아쇠가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선 기업이 한·중·일을 하나의 공급망으로 묶기 어렵다. 특히 여기 미국에서 보기에 한·중·일 세 나라 기업들은 정부의 대외정책을 반대할 자유가 없어 보인다.”
 
좀 색다른 지적이다. 기업인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말인가.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에 일본 기업인들이 침묵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한국 기업인들도 국가의 전략적 목표에 맞춰 행동하는 듯하다. 나 같은 서양인의 눈에 좀 낯설다. 기업의 이익이 정부의 대외정책과 충돌할 때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게 지역통합을 위해 필요하다. 트럼프가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을 무력화시키려고 할 때 미국 기업인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로드리그 교수와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글로벌 공급망의 파편화를 개별 기업이 어떻게 대응할지로 이어졌다.
  
기업인, 정부 정책에 목소리 내야
 
기업들이 소재나 중간재 수출 규제나 관세부과 등 보호무역주의를 어떻게 타고 넘어야 할까.
“단기적인 충격은 피할 수 없다. 1~2년간 비용이 늘어나고 생산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최근까지 기업은 글로벌 공급망을 믿고 재고 물량을 최소화했다. 재고 확보에 들어가는 돈을 절약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제는 국제 갈등이 공급망을 위협할 수 있어 기업이 재고를 많이 확보하려고 한다. 사실 최근 국제정치적 갈등 때문에 늘어나는 비용은 글로벌 공급망 이면에 은폐돼  있었다. 이제 숨은 비용이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중기(3~5년)적으로 기업이 어떻게 해야 할까.
“공급망이 글로벌화하면서 국가 간 기술 격차도 줄었다. 요즘 중국 기업이 웬만한 것은 다 만들고 있지 않는가(웃음). 80년대 이전까지는 부품 조달의 다변화가 말처럼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가능해졌다. 일본처럼 기술 우위를 자랑하는 나라도 수출 규제 등을 장기간 유지하기 어려워 보이는 이유다. 물론 산업마다 사정이 조금씩 다를 수는 있다.”
 
미 기업 84% 글로벌 공급망 교란 대비 못 해
“미국 기업 16%만이 글로벌 공급망 교란에 대비했을 뿐이다.”
 
미국 공급망연구소(SCI) 소장인 폴 디트먼 테네시대 교수(경영학)가 중앙SUNDAY와 전화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중국을 겨냥해 무역전쟁을 시작한 2018년 초 조사결과다. 그는 “트럼프가 선거 유세 기간부터 보호관세 부과를 공언했다”며 “하지만 기업 경영자들은 글로벌 공급망(Global Supply Chain)을 자연의 일부처럼 여겼다”고 지적했다. 공급망이 자연 생태계처럼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작동할 것으로 봤다는 얘기다.
 
디트먼 교수는 “특히 경영자들은 국제정치적 갈등을 중시하지 않았다”며 “대신 경제적이고 기술적인 불안 요인만을 대비하는 데 치중했다”고 했다. 자사 제품의 수요 감소나 원자재 가격 변동, 정보기술(IT) 네트워크 오작동 등을 관리하는 데 치중했다는 얘기다. 디트먼 교수는 “무역전쟁 등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아주 탄탄한 구조가 아닌 게 드러났다”며 “기업 경영자들이 세계화 이전만큼이나 다양한 비상계획을 세우고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만큼 기업의 투자 공격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장 폴 로드리그 1967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태어났다. 부모도 캐나다인이지만 프랑스계다. 그의 대표적인 저작 『세계 경제공간: 선진 경제와 세계화』를 프랑스어로 먼저 쓸 정도다. 1994년 몬트리올대학에서 지리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교통을 중심으로 경제 공간을 분석한다. 요즘은 글로벌 공급망 분석에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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