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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직장, 스트레스와 괴롭힘에 대하여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재작년 건강검진에서 유독 한 종목의 수치가 좋지 않았다. 재검에서도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라는 황당한 진단이 나왔다. 그 무렵 한 의대 교수에게 이 얘기를 하면서 “스트레스 때문에…”라고 했다가 통박만 당했다. 그의 요지는 이거였다. “죄다 스트레스 때문에 병났다는데 스트레스가 발병의 원인이라는 증거는 없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폭음·폭식 등 건강을 해치는 방식으로 관리하면 질병으로 이어지고, 관리를 잘 하면 오히려 건강해진다.”
 

직장 내 스트레스 근원은 인간관계
괴롭힘 금지법으로 폭력·폭언 줄 듯
상호감시적 대응책 고려하는 기업
스트레스와 불안 높일 수 있어 우려

문제는 스트레스가 아니라 ‘스트레스 관리’라는 거였다. 그러면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 이게 요즘 내가 꽂혀 있는 어젠다이다. ‘17년간 병석에 누워 83세 장수를 이루는 나라’. 통계청 생명표에 나타난 우리나라 장수의 현실은 이렇다. 평소 스트레스와 건강관리만 잘 하면 병석에 누워있는 기간을 확 줄일 수 있다는 걸 우리가 너무 소홀히 했던 건 아닐까.
 
올해 서울의대와 ‘건강사회문화캠페인’을 함께 하면서, 우선 직장인 건강관리문화를 만들기 위해 국회세미나(4월)를 열고 ‘기업건강경영실태조사’(7월6일자 중앙SUNDAY 1,4~5면)를 하는 등 동분서주하는 것도 이 어젠다를 풀어나가는 내 나름의 방식이다. 사람들이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는 직장이 직원들의 건강관리에 책임이 있다는 메시지를 확산하고, 직장들은 어떻게 직원의 건강관리를 책임지는지 방법론을 찾아보고 싶은 거다.
 
이번 ‘기업건강경영실태조사’결과를 분석하면서 눈에 띄는 대목이 있었다. 직장인 건강관리에서 가장 필요한 부문을 묻는 질문에 8개 선택항목 중 ‘직장 내 스트레스와 우울증 관리’라는 답변이 노사 공히 1위를 했다는 것. 또 ‘가치 있는 삶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노측 응답자에서 2위, 사측 응답자에선 3위를 차지한 것이다. 지난해 일반국민을 대상으로 한 사전조사에서 ‘과도한 업무 개선’이 1위를 한 것과 달랐다.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직장 안에서 바라보는 직장 내 건강문제에선 물리적 환경보다 정신적 문제가 더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선데이 칼럼 7/20

선데이 칼럼 7/20

현대인 스트레스의 원천이 된 직장 문제를 우린 모두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세계적으로도 대응에 나서고 있다. 올해 국제노동기구(ILO) 100주년 선언에선 ‘일의 세계에서 폭력과 괴롭힘의 근절’ 협약·권고를 채택했다. 국제보건기구(WHO)는 번아웃 증후군을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만성적 직장 스트레스 증후군’으로 정의하고, 의학적으로 인정된 질병에 공식 등록했다. 이번 주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도 이런 맥락에서 우리사회가 나름대로 관리에 들어간  것이라고 본다.
 
‘괴롭힘’ 혹은 ‘갑질’. 직장 내 스트레스와 트라우마의 근원은 업무보다 인간관계에서 나온다. 한데 이 인간관계의 스트레스는 관리가 어렵다. 물론 ‘직장 내 갑질’ 행위들 중 단순한 무례함 정도는 그저 ‘거친 인간관계’ 혹은 ‘월급에 포함된 정신노동’ 정도로 도 닦는 셈치고 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직장엔 야심가들이 파당을 지어 줄 서지 않는 자들을 배제하고 왕따 시키는 갑질, 무뢰배 같은 상사들의 폭력처럼 영혼을 파괴하고 생업을 위협하는 ‘범죄’들도 존재한다. 이건 사내 권력관계에서 이루어지면서 도처에서 훅훅 들어오다 보니 평소 관리도 힘들고, 퇴로를 찾을 길이 없는 경우도 많다. 직장들은 이런 참을 수 없는 것들을 참으라고 했었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론 이번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거는 기대가 크다.
 
그런데 인사 전문가 등 여러 사람 얘기를 듣다보니 산업일선에서 돌아가는 분위기는 뭔가 심상치 않다. 한 예로 자칫하면 안전사고로 이어지는 중후장대 산업 현장의 팀장·부장들은 지금 떨고 있단다. 현장에선 폭력이나 욕설로 군기를 잡고, 퇴근 후엔 술로 풀어주던 방식이 이젠 통하지 않는데 무엇으로 현장을 장악하느냐는 것이다. 더구나 회사 경영진들은 생산성·경쟁력은 유지하면서 직원 불만이 나오지 않도록 하라며 남의 일처럼 본다는 것이다. 이러니 현장 책임자만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크다고 했다. 그런가하면 법 시행 전부터 사내의 ‘문제적 상사’를 응징하자며 비행을 모으는 단톡방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도 나온다.
 
인사 관계자들은 괴롭힘 분쟁 대응방안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업무능력이 떨어져서 질책 당한 것을 괴롭힘으로 주장하는 것에 대응하기 위해 이젠 직원과의 대화 상황을 매 단계별로 기록으로 남기도록 한다거나, 동료들에 대해 주관식으로 기술하는 다면평가를 의무화해 평소 ‘문제적 직원’ 히스토리를 남겨 분류하는 등의 방안이 고려되는 모양이다.
 
배제·왕따·폭력 없는 일터를 만들자는 법에 대응하는 방안들이 ‘배제의 시스템화’쪽으로 달려가는 건 아닌지. 또 동료 모두 감시자가 되는 조직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는지. 폭력·욕설 같은 물리적 괴롭힘은 없어지고 긴장과 불안 같은 정신적 문제가 더 커지는 것은 아닐지. 우려되는 대목이 많다. 이미 직장인들은 물리적 환경보다 정신적 아픔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괴롭힘 금지법 이후가 외적 괴롭힘에서 내적 괴롭힘으로 이행되지 않도록, 기업도 정부도 육체적·정신적 건강이 관리되는 일터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고민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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