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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라드 칼럼] 왜 북한에는 국가 대표자가 세 명이나 있을까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최근 북한은 국가 대표자가 세 명인 나라가 됐다. 북한은 4월11일에 개최한 최고인민회의 14기 1차 회의에서 개정된 헌법 전문을 지난 11일 공개했다. 개정 헌법 100조에 따르면 “(북한의) 국무위원회 위원장은 국가를 대표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영도자”이다. 개정 헌법은 국무위원장이 ‘국가를 대표한다’는 문구를 추가함으로써 사실상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국가 대표자임을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김 위원장은 ‘국가 대표자’라는 지위를 다른 두 사람과 공유한다. 개정 헌법에서는 여전히 김일성 주석을 ‘영원한 지도자’로 추대한다. 북한에서 그가 지극히 존경받는 인물인 만큼 이 지위는 바뀔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김일성·김정은에 최용해까지 대표
‘정상 국가’와는 여전히 거리 먼 곳

망자(亡者)가 국가 대표자일 경우 실무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국제 외교에서는 파견국 대사(大使)가 주재국 국가 원수에게 신임장을 제출하는 관례가 있다. 대한민국의 경우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신임장을 전달받고 대사와 환담을 한다. 영국에서는 여왕이 대사를 버킹엄 궁에 초대해 차 마시는 시간을 갖는다. 그러나 죽은 사람이 국가 대표자라면 이런 행사를 할 수가 없다. 개정 전 북한 헌법에서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김일성의 대리인으로 임명해 외교 업무를 대행하도록 했다. 그때부터 북한에는 ‘영원한 국가 대표자’와 ‘지상 대표자’가 공존했다.
 
1998년부터 이 지상 대표자 역할을 김영남 전 외교부장이 수행했다. 필자도 평양으로 파견됐을 때 그에게 신임장을 전달했다. 그는 매우 정중하게 나를 환영했다. 이제 최용해 상임위원장이 그 역할을 이어받았다. 개정 헌법에 따르면 최 상임위원장이 국가 대표로서 다른 나라 사신의 신임장을 접수한다.
 
헌법 개정으로 김정은 위원장은 헌법상으로도 국가 대표자가 됐다. ‘영원한 지도자’ 김일성도 국가 대표자이고 최용해 상임위원장도 의전을 담당하는 국가 대표자인데, 김정은 위원장에게도 국가 대표자의 지위를 부여하는 이번 헌법 개정이 무엇을 의미할까. 북한이 이런 절차를 밟은 이유를 세 가지 정도로 추측해 본다.
 
첫째, 김정은 위원장의 지위 강화다. 북한에서 김 위원장의 직함이 계속 상승하고 있다. 이 같은 지위 확대는 다른 권력층 인사가 김 위원장의 권력을 위협하지 않도록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
 
둘째, 외교상의 난처한 상황 방지다. 북한은 의전을 중요시한다. 문제는 김 위원장이 기존 직함만으로는 국가 대표자로서의 대우를 받을 수 없으며, 트럼프 대통령이나 시진핑 주석 같은 다른 나라의 수장을 대면할 때 그들보다 낮은 위치에 놓이게 된다는 점이다. 김 위원장이 손님 자격으로 다른 나라를 방문할 경우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중립적인 외교 무대에서는 여타 국가수장보다 낮은 위치에 서는 상황을 감수해야 한다. 게다가 다른 국가수장이 북한을 방문하면 북한 역시 의전에 맞춰 국가 대표자인 김영남 전 상임위원장을 내세워야 했다. 이런 의례는 김정은 위원장의 공식적인 지위가 다소 떨어진다는 사실을 부각한다. 개정된 헌법에 따라 김정은 위원장은 6월에 방북한 시진핑 주석을 동등한 자격으로 대면할 수 있었다.
 
셋째, ‘정상 국가화’ 에 대한 의지 반영이다. 국가 대표자 역할과 군 통수권자 역할의 결합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의 공식적인 역할은 다른 국가수반과 비교할 때 큰 차이가 생기지 않게 됐다. 그러나 기존의 국가 대표자 2인은 그대로 유지한 채 김정은 위원장의 지위만 격상시킨 헌법 개정은 결과적으로 정상 국가와는 한층 동떨어지는 역효과를 낳았다. 국가 대표자를 세 명이나 가진 나라는 없다. 국가 대표자가 세 명인 현재의 북한을 김일성이 볼 수 있다면 아마도 자신이 한때 출석하던 교회에서 들은 삼위일체 교리를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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