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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폭력의 세기

이동현 산업1팀 차장

이동현 산업1팀 차장

폭력(violence)은 광범위한 개념이다. 개인 간의 물리적 충돌에서부터 전쟁 같은 국가적 충돌, 자유의지에 반하는 행동을 강요하거나, 불이익을 줘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 역시 폭력에 속한다.
 
폭력은 흔히 인간의 이성에 벗어나거나 동물적인 것으로 치부되기 쉽지만 일찍이 거대한 폭력을 경험했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1906~1975)는 다른 견해를 피력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제노사이드(인종학살)를 겪었던 아렌트는 권력은 민주적 절차를 거친 다중의 의지이며 폭력은 이에 반하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폭력을 행사하는 과정은 늘 외교적(혹은 대화적) 해결 방법을 모색하다가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하는 것처럼 포장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는 게 아렌트의 주장이다. 거칠게 말하면 가장 이성적인 방법으로 폭력을 선택하며, 늘 수단은 목적을 압도하지만 그 목적을 달성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폭력은 늘 파괴적인 탓이다.
 
최근 한·일 갈등을 둘러싼 논쟁을 보면서 모두가 극단적이고 폭력적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토착왜구론’에서 극단적인 여론에 편승하려는 포퓰리즘이 보이고, ‘정부 책임론’에선 눈앞의 적과 싸우기보다 내부 비판에 열을 올리는 무신경이 보인다.
 
무역전쟁은 전쟁이고 폭력이다. 승자와 패자는 갈릴 수밖에 없다. 극단의 처방은 또 다른 폭력일 뿐이고, 결코 승리의 답이 되지 못한다. 아렌트는 『폭력의 세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법과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폭력적 수단을 제안하는 자들과 비폭력적 개혁을 제안하는 자들 사이의 논쟁은 환자의 약물치료에 맞서 외과수술의 상대적 장점을 주장하는 의사들의 토론처럼 불길하게 들린다. 병세가 심각할수록 외과의사가 최후의 처방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이동현 산업1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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