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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창가 발언, 하수 중의 하수···지금은 日에 양보해야 이긴다"

 
양삼승 법무법인 화우 고문이 17일 서울 삼성동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양삼승 법무법인 화우 고문이 17일 서울 삼성동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현 한·일 갈등의 촉매제가 된 것은 강제징용 배상 문제다. 노무현 정부가 2005년 만든 ‘한일회담 문서공개 후속대책 관련 민관공동위원회(이하 민관공동위원회)’가 “개인의 청구권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반영됐다”고 발표했는데, 2012년 5월 대법원이 이를 번복하는 판결을 한 데서 불거졌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이 이를 확정하자, 일본 정부는 한국에 대한 일부 품목 수출규제로 맞서며 파장이 커지고 있다.  

[단독]양삼승 전 한·일협정 대책 위원장
2005년 문서 공개 뒤 대책 논의
강제징용 피해자 사적 청구권
한일협정에 반영됐다고 판단

 
그렇다면 노무현 정부의 민간공동위원회는 왜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일까. 또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당시 이해찬 국무총리와 함께 공동위원장을 맡았던 양삼승 법무법인 화우 고문을 17일 만났다. 그는 민관공동위원회에 참여한 10명의 민간위원 중 고(故) 백충현 서울대 명예교수와 함께 법률전문가로 참여한 2인 중 한 명이다. 양 고문은 “대법원의 판결은 존중해야 한다”면서도 “일본 기업의 재산 압류로 가서는 곤란하다. 정부가 조속히 일본 정부와 만나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양삼승 법무법인 화우 고문. 강정현 기자

양삼승 법무법인 화우 고문. 강정현 기자

당시 강제징용 배상에 대해 민관 공동위원회가 내린 결론은 무엇인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배상 문제가 반영된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다만 일본군 위안부, 사할린 한인, 조선인 원폭피해자 문제 등 3개 항은 제외했다." 
 
그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법률이 다루는 범위는 사적 민사부터 정치·외교에 관한 것까지 굉장히 넓다. 이건 외교문서를 갖고 국가 간 조약과 약속을 해석하는 일이었다. 그런 자세로써 합리적으로 접근했을 때 1965년 협정 당시 강제동원된 사람들의 사적 청구권까지 해결된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는 것이 지배적인 생각이었다."  
 
결정 당시 위원회 내에서 갈등은 없었나.  
"이견이나 논쟁은 별로 없었다. 이것은 개인 간 민사 재판을 넘어 국가 간 외교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훨씬 폭넓은 사고를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공동위원장이었던 이해찬 총리의 의견은 어떤 것이었나.  
"당시 이 총리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특별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다만 정부 측에서 제안하면 민간위원들이 검토하면서 의견을 내는 식이었다. 우리가 자체적으로 안을 낸 적은 없다. 이 총리도 대개 정부가 제시하는 안에 대해 말했던 것 같다. 정부 측 안이 합리적이었고, 특별히 격렬하게 반대토론이 있었던 적은 없다." 
양삼승 법무법인 화우 고문. 강정현 기자

양삼승 법무법인 화우 고문. 강정현 기자

 
 양 고문은 민관공동위원회 당시의 활동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구체적 사안이 기억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당시의 분위기나 결정 과정 등에 대해서는 답변을 이어갔다. 하지만 2012년과 2018년 대법원 판결에 대한 의견을 물었을 때는 비교적 말을 아꼈다.  
 
대법원에서는 민간공동위원회의 결정을 사실상 뒤집었는데.  
"미국 대법원을 보자. 거기엔 ‘아미쿠스 쿠리에’라는 제도가 있다. 라틴어로 ‘법정의 친구’라는 뜻인데 판사가 결정을 내리기 전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불러 의견을 물어보는 것이다. 다만 법정에서 공개적으로 한다. 외교 문제도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고려하는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재판을 하는 것이다. 당연히 외교적 파장도 고려해야 한다. ‘나는 판사니까 오로지 법률적인 것만 따진다’는 것은 성숙한 판사의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의 ‘사법 농단’이라는 문제에서는 법원 행정처장이 대통령 비서실장을 따로 만나 의견을 청취했고 재판 과정에 반영했다. 이런 것은 안 된다."  
 
양삼승 법무법인 화우 고문. 강정현 기자

양삼승 법무법인 화우 고문. 강정현 기자

양 고문은 이후에도 강제징용 등의 문제에 관해 관심을 놓지 않았다. 2010년 12월 일본 변호사연합회와 한일 정부의 일제강점기 피해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한·일 양국 정부와 기업이 공동으로 기금을 만들자는 이른바 ‘2+2’ 해법을 제안하기도 했다.  
 
일단 양국 기업의 기금으로 해결하되, 향후 제기될 소송 등의 피해자에 대해선 한국 정부가 책임지는 ‘1+1+α(한국정부)’ 안은 어떻게 보는가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지금으로선 일본 정부가 받을 것 같지 않다. 그것은 나중에 양국 관계가 호전될 때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나  
"외교와 국내에서 투트랙으로 풀어야 한다. 일단 정부는 대놓고 일본 정부와 붙으면 안 되고 외교적으로 풀어야 한다. 1960년대 쿠바 미사일 위기를 생각해보자. 당시 미국과 소련이 당장 핵전쟁이라도 벌일 것처럼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그러면서도 케네디 대통령은 물밑에선 자기 동생을 보내 소련과 교섭하게 했다. 그래서 소련으로부터 쿠바 미사일 기지를 철수하는 것을 얻어내자, 미국은 대신 터키에 있는 미사일 기지를 철수시켰다. 외교란 그런 것이다. 이번엔 우리가 먼저 양보해야 한다. 우리가 10을 손해 보고 일본에는 5 정도 손해 보라고 한 뒤, 수용되면 다음엔 우리가 5를 손해 보고 저쪽에서 10을 손해 보는 식이다. 서로 마음을 누그러뜨리면서 한 단계 한 단계 풀어야 한다. 내부적으론 정부가 피해자들을 찾아가 충분히 보상하고 설득해야 한다. 피해자들은 ‘돈을 원하는 게 아니라 일본의 사과를 받으려는 거다’라면서 대법원 판결을 받은 것으로 강제집행에 나서려고 할 것이다. 그러면 정부는 ‘여러분 마음을 이해한다. 정말 미안하다. 우리도 사과받고 싶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도 이해해줘라. 우리가 일단 먼저 보상해줄 테니 이걸로 마음을 다듬어라. 우리가 반드시 일본 정부와 풀어나가겠다’라고 달래야 한다. 그렇게 해서 국내 문제를 풀어나가면 일본도 우리 측 성의를 보고 노력할 것이다. 그 길밖에는 없다."    
 
일본 강제징용 배상 관련 논란 일지

일본 강제징용 배상 관련 논란 일지

 
정부에선 ‘의병’, ‘죽창가’ 등의 단어를 쓰면서 항일에 나설 것을 독려하고 있다.  
"하수 중의 최하수다. 일부 국민은 통쾌하겠지만, 국정 운영에서 제일 낮은 수다. 그런 방향으로 밀고 나가는 건 실효도 없다."    
 
국민의 자발적인 일본 상품 불매운동도 번지고 있다.  
"기분은 풀릴지 몰라도 실제로 일본에 미치는 경제적 타격은 미미하다. 한국에서 일본 맥주 안 마시고, 유니클로 안 사면 정말 일본 경제가 휘청일까. 일본에서 같은 방법으로 나오면 우리가 받게 될 불이익과 손해가 더 크다."    
 
사법부의 판결과 별도로 행정부가 외교 정책을 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그런 목소리도 곤란하다. 통치권자가 사법부 판결을 무시하고 정책을 펴나가는 것은 굉장한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되고 해외에서도 '민주주의 국가가 맞느냐'라는 반응이 나올 것이다. 또 일본과의 협상은 더 꼬이게 될 것이다."   
 
양삼승 법무법인 화우 고문이 17일 서울 삼성동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양삼승 법무법인 화우 고문이 17일 서울 삼성동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양 고문은 2004년 헌법재판소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심판 때 노 대통령 측 변호인단으로 활동하는 등 노무현 정부와 인연이 깊은 법조인이다. 재판을 준비하며 노무현 대통령과 당시 문재인 민정수석과도 만났다고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만나보니 어땠나  
"노 대통령은 2번 만났다. 처음 변호인으로 선임됐을 때 사저로 불러 저녁으로 짜장면을 한 그릇 주면서 ‘우리 변호사님이니, 저 대통령 좀 더 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라고 말했다. 재판을 마치고 비슷한 자리를 한 번 더 가졌다. 노 전 대통령은 흔히 만나는 고리타분하고 깐깐한 법조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 보기엔 엉뚱한 면이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정치인으로서 판사 내지 법조인의 틀에 갇히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으려고 애쓴 것 같다. 그러니까 대통령까지 했고, 저런 일(민간합동위원회의 결정)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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