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현장에서] '숲 못 보고 나무만’ 따지는 일본의 좁쌀 플레이

 "지금까지 그런 설명을 전혀 해오지도 않았고, 한번도 우리가 그런 걸 말씀드린 적도 없다. 언론에 대해서도 말씀드린 적이 없다."
 

아베 총리가 불지른 '부품 제3국 유출' 의혹
세코 경제산업상 "우리가 얘기한 적은 없다"
'철회 요청'했나 안했나 집착해 의사록 찾아
"의사록에 철회 두글자는 없다" 말꼬리 싸움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경제산업상이 16일 각의(우리의 국무회의)가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12일 양국 실무 회의에서 이번 조치의 계기가 된 '한국 측의 부적절한 사안'이 북한 등 제3국으로의 부정 수출이 아니라고 설명했다는데…"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세코는 ‘한국 측의 부적절한 사안’에 대해 "한국으로부터 제3국으로의 구체적인 수출 안건을 염두에 둔 게 아니다"라며 이렇게 답했다. 
세코 히로시게 일본 경제산업상

세코 히로시게 일본 경제산업상

 
그의 말대로 그동안 경제산업상 등 정부의 책임자가 공개적으로 마이크를 잡고 "이번 조치는 한국으로 수출된 물품이 북한 등 제3국으로 부정 수출돼 취해진 조치"라고 명시적으로 밝힌 적은 물론 없다.
 
하지만 숱한 이들이 공공연하게 이 문제를 언급하며 불을 질렀다.
 
특히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측근 중의 측근'인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자민당 간사장 대행은 지난 4일 BS 후지 프라임 뉴스에 출연해 "(화학물질의) 행선지를 알 수 없는 듯한 사안이 발견됐기 때문에, 이런 것에 대해 (안보상) 조치를 취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최측근인 하기우다 고이치 자민당 간사장 대행이 4일 BS후지 프라임뉴스에 출연해 한국 수출 규제와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BS후지 화면 캡처]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최측근인 하기우다 고이치 자민당 간사장 대행이 4일 BS후지 프라임뉴스에 출연해 한국 수출 규제와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BS후지 화면 캡처]

 
아베 총리 본인도 7일 후지TV에서 "한국은 (대북) 제재를 잘 지키고 있다고, (전략물자 통제 체제인)바세나르 체제 상의 무역관리를 확실히 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국가 사이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게 명확한데, 무역관리 규정도 제대로 안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불쑥 대북 제재 문제를 꺼냈다.
 
한국에 대한 일본 정부의 대응 강도가 날로 세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9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기자회견 모습. [EPA=연합뉴스]

한국에 대한 일본 정부의 대응 강도가 날로 세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9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기자회견 모습. [EPA=연합뉴스]

일본 언론들은 '여당 간부' 등의 말을 인용해 비슷한 뉘앙스의 보도를 쏟아냈다. 이런 마당에 세코 경제산업상이 '우린 (정부는) 안 했다'고 주장하는 건 "숲은 보지 않고 나무에만 현미경을 들이대는 일본식 사고이자 형식 논리"(도쿄의 한국 소식통)라는 지적이 나온다.
 
진흙탕 감정 싸움, 초등학생보다 못한 말싸움으로 번졌던 12일 양국의 실무회의도 마찬가지 사례다.
 
한국이 일본에 실무단을 파견했다면 이번 수출규제 조치에 항의하러 오는 게 당연한데도 일본은 '철회 요구를 했느냐 안 했느냐'는 문제로 의사록까지 찾아가며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물고 늘어졌다.  
 
12일 도쿄에서 열린 일본 정부의 한국 수출 규제 강화 조치와 관련한 양국 과장급 첫 실무회의. (오른쪽 사진 앞부터) 한국측 대표 산업통상자원부의 전찬수 무역안보과장·한철희 동북아 통상과장, (왼쪽 사진 앞부터)일본 측 대표인 이가리 가쓰로(猪狩克郞) 안전보장무역관리과장·이와마쓰 준(岩松潤) 무역관리과장. [연합뉴스]

12일 도쿄에서 열린 일본 정부의 한국 수출 규제 강화 조치와 관련한 양국 과장급 첫 실무회의. (오른쪽 사진 앞부터) 한국측 대표 산업통상자원부의 전찬수 무역안보과장·한철희 동북아 통상과장, (왼쪽 사진 앞부터)일본 측 대표인 이가리 가쓰로(猪狩克郞) 안전보장무역관리과장·이와마쓰 준(岩松潤) 무역관리과장. [연합뉴스]

당초 일본 측이 회의 직후 브리핑에서 "한국 측으로부터 이번 조치에 대한 항의나 철회 요구가 없었다"고 말한 게 발단이었다.
 
다음날 한국 대표단이 하네다 공항에서 "일본 측에 유감의 뜻을 표명했고, 이번 조치에 대한 원상회복을 요청했다"고 하자 일본 측은 부랴부랴 의사록을 확인한 뒤 기자회견까지 했다. 
 
회견에선 “한국 측으로부터의 (항의) 의견은 있었지만, 의사록에서 '철회'라는 두 글자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에 대한 홀대’ 논란이 벌어진 12일 실무 회의 당시의 여러 장면에 대해선 일본 내에서도 “좀 심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민방인 TBS의 와이드뉴스쇼에 출연한 전직 경제산업성 고위 관료는 "문재인 정권과는 별도로 한국의 일반 국민을 자극할 필요는 없었다"며 "아무리 ‘쿨 비즈’(여름에 권장되는 간편한 옷차림 근무)라고 하더라도 일본 측 참석자들은 재킷 정도는 갖춰 입는 편이 나았다"고 지적했다.  
 
어떻게 한국을 홀대할지에만 집착하다 결국 자국민들에게도 핀잔을 당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번 조치를 야기한 원인이라는 ‘한국 측의 부적절한 사안’이 무엇인지에 대해 일본 정부가 계속 입을 다물고 있는 것도 문제다.  
 
문제 해결을 위해선 그 문제가 무엇인지를 먼저 밝히고 머리를 맞대는 게 상식이지만 일본 측은 분명한 이유 없이 설명을 거부하고 있다.
 
아베 정권에 호의적인 요미우리 신문도 3일자 사설에서 "(일본 측 주장의) 설득력을 위해서라도 (규제 강화 대상인 3개 품목의) 심사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부적절한 사안이 무엇인지) 정중하게 설명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