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8시간 주운 폐지값 7000원···78세 "그래도 이게 우리 노부부 생명줄"

15일 김모(78)씨가 폐지가 가득 실린 손수레를 힘겹게 끌고 인사동길을 지나가고 있다. 윤상언 기자

15일 김모(78)씨가 폐지가 가득 실린 손수레를 힘겹게 끌고 인사동길을 지나가고 있다. 윤상언 기자

“폐지를 주워도 하루에 2만원도 못 버는데 이래서 살겠어요?”  
 
15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종로구 한 상가 주차장에서 만난 김모(78)씨는 버려진 박스를 줍다 일어나 씁쓸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직 아침인데도 햇빛이 무척 뜨거웠다. 햇빛에 그을린 까만 얼굴, 깊은 주름…. 모자를 벗자 주름사이로 땀이 흘러내리자 셔츠 소매로 땀을 문질렀다. 이날은 라면 상자, 작은 종이 상자, 패스트푸드점 종이컵, 신문지 등 다양한 종류의 폐지를 비교적 많이 건졌다. 운수 좋은 날이었다. 
 
그는 박스를 손수레에 실었다. 가슴팍까지 쌓였다. 깡마른 몸집의 노인은 자기 몸집의 두 배가 넘는 손수레를 끌고 나섰다. 인도가 좁아서 차도로 들어섰다. 편도 1차선 좁은 도로였다. 몇 발짝 떼니 뒤에서 승용차가 경적을 울렸다. 그렇다고 비켜줄 방법도 없다. 차가 중앙선을 넘어 추월한다. 옆에서 봐도 아찔하다. 새벽에는 특히 위험하다. 좁은 골목길 어둠 속에서 오토바이가 튀어나와 부딪힐 뻔한 적이 한두 번 아니다. 김씨는 거의 매일 이런 식으로 안국역 사거리 일대 상가를 훑는다. 
 
김씨는 이날 새벽 5시 30분에 서울 관악구 신림동 집을 나섰다. 종로구 탑골공원까지 버스로 한 시간 걸린다. 그나마 해가 빨리 뜨는 여름은 일찍 움직일 수 있다. 인근 고물상에 세워둔 손수레를 끌고 인사동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점심도 거른 채 오후 2시까지 돌아다닌다. 약 150㎏의 폐지가 모인다. 고물상으로 돌아와 저울에 손수레를 올린된다. 이렇게 해서 김씨는 7000원을 받았다. 어떤 때는 이것도 벌지 못한다.  
 
점심은 거르거나 탑골공원 인근 무료급식소에서 해결한다. 점심 식사 후 탑골공원 주변을 돌며 폐지를 더 모으기도 한다. 김씨는 “지난해부터 상자 가격이 1㎏당 70원대에서 40원까지 내려 벌이가 크게 줄었다”면서 “이른 새벽부터 폐지를 주워도 하루 2만원도 벌지 못한다. 밥값도 나오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상자는 1㎏에 40원, 신문지는 70원이다. 
15일 서울 종로구의 한 상가에서 김모(78)씨가 폐지를 줍고 있다. 윤상언 기자

15일 서울 종로구의 한 상가에서 김모(78)씨가 폐지를 줍고 있다. 윤상언 기자

 
"할아버지 주말에도 일 하시나요."(기자)
"하루도 거르지 않아."(김씨)
기자가 깜짝 놀라 다시 물었다. 김씨는 "하루라도 쉬게 되면 폐지를 내놓는 상인이 싫어한다. 폐지가 쌓이니까"라고 말한다. 주말에 쉬는 때가 많지 않다. 그가 폐지를 줍기 시작한지 20년 넘었다. 네댓 개의 건물 관리자를 ‘단골’로 만들어 놓은 덕분에 다른 폐지 수거상과 구역 다툼이 거의 생기지 않는다.
 
김씨는 아내와 단둘이 살고 있다. 아들 셋은 따로 산다. 일요일마다 큰아들이 와서 용돈을 주려고 하지만 받지 않는다. 손자가 대학에 진학해 아들의 씀씀이가 커진 것을 알기 때문이다. 김씨와 아내 앞으로 기초연금이 매달 20만원씩 나오지만 월세 내기도 벅차다. 그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폐지를 모으는 이유다. 기자가 "기초연금을 포함해서 얼마 정도 버세요"라고 물었더니 "많으면 70만원이지만, 평소에는 50만~60만원 정도"라고 답했다. 언제까지 폐지를 주울 것이냐는 질문에 퉁명스럽게 "먹고 살아야할 거 아닌가. 죽기 전까지 폐지는 계속 주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처럼 폐지를 줍는 노인은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지난해 발표한 ‘폐지수집 노인 실태에 관한 기초연구’에 따르면 폐지를 줍는 65세 이상 노인은 약 6만 6000명으로, 100명당 1명(2017년 인구 기준·0.9%)꼴이다.
 
이들이 처한 상황은 열악하다. 수입은 시간당 평균 2200원에 불과하다. 최저임금의 약 4분의 1 수준이다.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도 71%다.
서울 중구청 공무원들이 관내 폐지를 수거하는 노인들에게 지원할 안전손수레를 옮기고 있다. [사진 중구청]

서울 중구청 공무원들이 관내 폐지를 수거하는 노인들에게 지원할 안전손수레를 옮기고 있다. [사진 중구청]

 
폐지 수거 노인을 위해 우리 사회는 뭘 해고 있을까. 변변한 지원책이 없다시피하다. 최근 서울의 일부 구청에서 손수레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거의 유일한 지원책이다. 최근 중구청은 폐지를 수거하는 노인 33명에게 ‘안전손수레’를 무상 지원했다. 기존 손수레보다 무게가 4분의 1가량 가볍다. 브레이크가 있고 LED(발광다이오드) 경광등ㆍ전자 경고벨 등이 달렸다. 서울 송파구도 지난해 12월 77명의 폐지 노인에게 안전 손수레를 지급했다.
 
안전손수레는 교통사고를 줄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폐지 수거 중 노인이 차에 부딪혀 사망하는 사례가 매년 발생하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서울에서만 3년간(2016~2018년) 18명이 숨졌다.
 
폐지를 주우면 경제적인 보상을 주는 법안도 발의됐다. 이명수 자유한국당 의원은 폐지를 수거해서 파는 금액만큼 수거보상금을 지원하는 내용의 ‘재활용품수거노인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지난 3일 발의했다. 이 의원은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노인들은 환경보호와 자원재활용에 기여한 공적 근로를 인정받을 수 있다”면서 “이들의 안정된 생을 하도록 지원해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안전한 환경을 조성해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 법안의 궁극적 목표”라고 설명했다.
 
윤상언 기자 youn.sangun@joongang.co.kr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